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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라이프 : 글리치
박새봄 외 지음 / 멜라이트 / 2026년 3월
평점 :
삶의 균열에서 발견한 또 다른 우주의 가능성
이 책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틈'을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시선으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단순히 기이한 현상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균열 속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희망을 길어 올리는지에 주목한다.
1. 선의라는 이름의 정교한 동기
작가는 미스터리나 스릴러 장르에서 흔히 요구되는 '악의적 동기' 대신, 타인을 돕고자 하는 '선의'에 집중한다. 이는 효율과 이익을 따지는 현실 세계의 논리로는 쉬이 이해되지 않는 일종의 '오류'처럼 보이지만, 책은 그것이 가장 강력한 행동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사실 선의는 사람들이 이처럼 쉽게 이해하지 않기에 더 기묘하고 정교한 개념이다. (중략) 그들의 작전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상실을 가정했다. 그들의 동기는 상실을 회복하고자 하는 상상력에서 우러난다." (p. 179)
2. 평행선 위의 위로
책 속 '평행선 서점'이라는 설정은 우리가 가지 못한 길, 혹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회한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다른 우주에서는 우리가 여전히 함께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비록 증명할 수 없더라도 현재의 슬픔을 덜어주는 힘이 있다.
"또 하나의 우주에서는 우리가 놓친 기회, 잃어버린 사람을 다시 만났을 수도 있다. 그것이 확실하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나는 그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약간은 덜 슬퍼진다." (p. 180)
3. 용기가 여는 새로운 문
작가는 과거의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를 통해, 삶의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용기야말로 굳게 닫힌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임을 강조한다.
"그 용기는 굳게 닫힌 어떤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고, 먼저 용기 낸 누군가가 그 문 너머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게 희망을 건네고 싶었다." (p. 042)
4. 삶이라는 쉼표
폭력과 사랑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이승의 삶 속에서,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쉼표' 역할을 자처한다. 각 에피소드는 현실의 흐름을 뒤집어놓는 과감한 상상력을 발휘하면서도, 끝까지 캐릭터들의 인간미를 잃지 않는다.
『어나더 라이프 : 글리치』는 네 명의 작가가 보여주는 각기 다른 색채의 서사를 통해, 우리 삶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오류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묻는다. "딱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미리 혼자 겁먹고 주저앉아 그 모든 가능성을 지워버리는 건 너무 아깝지 않은가(p. 042)"라는 문장처럼, 책은 독자로 하여금 내일의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