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예찬 - 정원으로의 여행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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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를 쓴 한병철이 새로운 저서를 냈다. 땅을 향한 갈망과 사랑을 담은 책 <땅의 예찬 : 정원으로의 여행>이다. 저자는 땅을 예찬한다. 땅과 더 가까이하고 싶어 정원을 가꾸고, 세 번의 봄을 함께 했다. 그의 사랑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세세하게 흩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표지는 땅을 떠오르게 해준다. 세밀한 삽화로 그려진 꽃과 잎은 처음부터 이곳에 머문 듯하다. 타자를 의식하지 않는 시선으로 자신의 흔적을 조용히 땅에다 새긴다. 책 곳곳에는 이러한 땅을 담으려 한 저자와 출판사의 노력이 돋보인다. ‘겨울여행’에서 시작되는 첫 장은 아네모네, 동백, 옥잠화 등의 꽃말로 차례로 이어진다. 또한 독일의 화가인 이사벨라 그레서가 그린 24컷의 삽화가 세심하게 공백을 채운다. 글과 함께 음미하다 보면 꽃향기가 풍기는 듯하다.



저자는 ’모니터보다 정원이 더 많은 세계를 담고 있다‘며 정원을 예찬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게 해준다. 2장인 <타자의 시간>에는 그의 생각이 잘 깃들어있다.


"빗물받이 통에서 떨어지는 물의 얼음장 같은 차가움이 몸속 깊이 파고든다. 하지만 거기서 느끼는 고통은 좋은 것,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그 고통이 내게, 오늘날 잘 조율된 디지털 세계에서 점점 더 잃어가고 있는 현실감, 몸의 느낌을 되돌려준다."


디지털 사회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정원은 낯선 세계다. 두 공간은 서로 상극이다. 속도와 완벽함이 강조되는 디지털 분야에 정원의 느린 면모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몇 번의 클릭으로 완벽한 작업이 이루어지는 전자와 다르다. 정원은 굉장히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결코 완벽한 통제를 꿈꿀 수 없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결과물이 우리가 기대하는 아름다움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의 생각대로 풀어나갈 수 없는 것. 땅은 우리에게 잃었던 감각과 함께 겸손함을 가르쳐준다. 


또한 <땅의 예찬>을 읽다 보면 계절이 느껴진다. 저자의 시간은 겨울을 지나 봄과 여름을 거쳐 늦가을까지 흘러간다. 우리는 함께 정원을 거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의 내밀한 이야기는 편안하게 땅과 정원을 음미하게 도와준다. 때로는 경청하고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만의 언어를 새긴다. 문장의 독특함은 우리가 다른 듯 같은 시간에 머물고 있음을 실감하게 해준다. 마치 일기를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세계는 모든 것을 태우는 산불에 이어 대홍수에 잠긴 듯하다. 인간은 지구를 손상시키고 있다. 이제 그들은 그런 잔인함과 반이성에 대한 벌을 받는다. 오늘날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땅의 찬가'가 필요하다. 우리는 땅을 보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파괴로 몰락할 것이다."


그의 예찬에는 땅에 대한 탄식이 담겨있다. 세 번의 봄과 겨울은 사람에 대한 회의와 걱정으로 이어졌다. 땅과 멀어진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착취하는 것을 넘어 자연을 착취했다. 더 이상 우리 곁에서 땅과 꽃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저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며 꿈꿀 뿐, 막상 흙바닥을 걸으며 신발에 묻은 흙을 불편해한다. 어쩌면 우리는 편리함과 익숙함에 빠져 정말 소중한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자는 정원을 가꾸면서 디지털 세계에서 잃었던 감각과 시간을 일깨웠다. 한때 우리 또한 지녔을지도 모를 것들이다.


그리고 이제 봄이 찾아왔다. 날짜로 말하는 봄이 아닌, 진짜 봄이다. 보도블록 사이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어느덧 산수유가 아파트 화단을 장식했다. 긴 시간을 인내하던 그늘 속 눈이 녹아내렸다. 꿀벌이 부지런히 날아다닌다. 삭막했던 땅이 초록으로 가득 찼다. 이렇게 많은 색이 숨어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우리가 땅의 변화를 느끼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좋은 시간이다. 지금이라도 한 번쯤 발걸음을 늦춰보자. 땅을 음미하고 조그만 것들에 시선을 돌려보라 권하고 싶다. <땅의 예찬>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느꼈던 이 소중한 감각을, 당신 또한 느꼈으면 한다. 혹시 아는가? 우리만의 예찬을 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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