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사기 - 우석훈의 국가발 사기 감시 프로젝트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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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는 다음 뜻으로 쓰인다. 나쁜 꾀로 남을 속인다는 의미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영상매체를 보면 사기가 긍정적으로 쓰일 때도 있었다. 사기를 통해 부정한 정치인을 끌어내린 영화 <검사외전>, 공권력과 사기의 협업을 그린 드라마 <투깝스> 등이다. 오죽하면 착한 사기라는 말도 나왔다. 불법적이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결과론이 우선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우석훈의 저서인 <국가의 사기>를 접했을 때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나 역시 내심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사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동안 실망을 거듭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국가를 믿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까. 


<국가의 사기>는 최순실 사태에서 비롯된 격변을 언급하며 냉소적으로 글을 시작한다. 저자의 문장은 강렬하고 잘못의 비판에 있어 굳이 날을 숨기지 않는다. 저자 개인의 정치 이념을 넘어 우리 국민 대부분이 느껴왔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분노를 되짚어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경계할 것을 촉구한다. ‘왜 개인은 속는가?’로 시작되는 목차는 국가의 실패, 장기 불황, 신용 계급사회, 4대강, 관트리피케이션 등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이를 소위 경제계의 핵심정보를 소유한 0.1%라 불리는 이들이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개개인을 탓하는 게 아닌, 현실이 이렇다는 점을 요목조목 짚어준다. 


경제학자나 경제 전문가는 ‘고수익’을 이론적이든, 경험적이든,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P49 


경제 활동에서 모두가 아는 정보는 아무 정보도 아니다. 남들도 아는 것, 자기만 아는 것, 이 양극단의 정보는 정보가 아니라 그냥 ‘노이즈’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자기만 아는 것은 혼자만 속는 경우다. 모두가 아는 것도 혼자 속는 경우다. 

p50 


돈에 대한 절실함은 우리 대부분의 공통된 현상이다. 돈이 적은 사람은 돈이 필요하고, 돈이 많은 사람 또한 돈이 더 필요하다. 보유한 돈의 총량에 따라 계급화가 이루어지고, 돈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우리를 아찔하게 만든다. 최소한의 돈만으로도 의식주에 불편함이 없는 사회였다면 이런 일도 줄었을 것이다. 허나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 청년층의 실업률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예쁜 케이크를 사먹는 것 정도의 행위를 사치라 부르며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2015년 기준으로 796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단계에 기대서 일확천금을 꿈꾼다. 등록되지 않은 불법 다단계까지 포함하면 더 많아질 것이다. 이게 바로 국민소득 3만불을 돌파했다는 나라의 현실이다. 


국가는 알코올, 도박, 마약, 게임을 4대 중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것을 자제하라고 공익광고도 한다. 주식은 이런 것과 많이 다른가? 차이는 딱 하나다. 모든 정권은 자신이 집권하는 동안에 주식이 활황이 되고, 지수가 올라가기를 바란다. 

P62


그 절실함을 빌미로 정부는 우리에게 주식을 권한다. 어린이에게 주식을 사주는 것을 경제교육이라 생각하고, 곳곳에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라 홍보한다. 나 또한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주식투자를 배운 적이 있다. 친구들은 소액이나마 돈을 투자해서 이득을 보거나 잃고는 했다. 정부가 주식의 중독성과 판타지를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재차 권유하는 이유는 하나다. 코스피를 높여 수치로나마 주가종합지수가 성장하기를 바라니까. 그 과정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우리 스스로가 조심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책은 냉소적인 시선으로 눈에 보이는 것 이의의 것을 보여준다. 


‘마이크로 크레딧’이라고 부르는 저소득자에 대한 신용대출 같은 것을 지역 시민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스스로 잉태시킬 정도로 한국의 시민사회가 큰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한국은 풀뿌리 지역자치도 약하고 시민사회도 스스로 자신의 영역을 가질 정도로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 

p79 


‘교육 퍼스트’가 아니라 ‘신용 퍼스트’, 지금 경제구조에서는 교육보다 신용이 더 중요하다. 좋은 대학 나온다고 좋은 신용등급 받는 게 아니고, 신용불량으로 가는 길은 학력, 경력, 이런 거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자녀 학교성적보다 자녀 신용평가를 먼저 챙기는 것이 좋은 부모가 해주어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p98 


인권, 여성, 환경, 이런 사회적 의제에는 관련된 시민단체도 많고, 회원으로 참여하는 시민의 범위도 포괄적이며 다양하다. 그렇지만 경제, 특히 생활경제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서는 시민단체도 별로 없고, 이상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p147 


그러나 국가가 사기를 주도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 개개인이 국가의 조직적인 사기극에 대응하기는 정말 어렵다. 움직일 수 있는 재력과 인력의 단위가 다르며,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밟는 법, 숨기는 법에 대해 누구보다 익숙한 이들이다. 최순실 사태만 봐도 그렇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를 모르고 속아왔는가. 저자는 우리에게 앎으로써 속지 말 것을 권한다. 그리고 행동하기를 권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경제에 대한 시민들의 무관심이 팽배했다. 금융사고 등의 몇몇 경우에 한해 보상을 위한 움직임이 있을 뿐, 이를 넘어선 경제정책에 대한 목소리는 정말 작다. 그렇게 경제 관료들은 폐쇄적으로 바뀌고, 1997년의 IMF나 2006년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처럼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움직이곤 한다. 지금 이러한 분위기는 한국 전체로 팽배했다. 송인서적 부도로 인한 출판사들의 연쇄 부도, 포항지진 이후의 내진설계 강화 또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매번 사건이 터지고 난 직후에야 후회한다.  


침묵이 길어지면, 사기꾼들이 다시 돌아오게 된다. 

p371


어쩌면 왜 이렇게까지 나서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 수가 있다. 국가라는 거대권력에 맞서는 것보다, 거기에 순응하여 길을 찾는 게 더 쉬워 보인다. 게다가 우리 대부분의 삶은 생각 이상으로 퍽퍽하고 힘겹다. 절망적인 현실로 인해 많이 무력화된 우리다. 그러나 이건 우리 이후의 세대를 생각할 것도 없이, 당장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맞닥트릴 현실이다.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속았는지를 알고 변화하기 시작한다면 조금씩 바뀌리라 믿는다. 작가의 냉소적인 시선 안에는 인간적인 안타까움이 감춰져 있다. 그 대상은 저자 본인도 포함된다. 우리가 더 이상 속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이나마 희망이 보인다. 지난 2월 27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징역 구형이 이뤄졌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이렇듯 우리는 지금 변화의 물결 한가운데에 놓여있다.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저자의 글을 빌어 말하고 싶다. “이 구조를 지금 바꾸면, 한국 경제에도 다른 길이 열릴 것이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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