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 탐구 생활 - 완벽주의와 자기의심에 대하여
사월날씨 지음, 이지선 북디자이너 / 왼쪽주머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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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 탐구생활. 

 

표지가 멋졌다. 빨간색은 수치심과 가까운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표현한색일까?

어떤 의미로 선택한 색인진 모르겠지만 굉장히 책과 잘 어울리는 컬러라고 느껴졌다. 

 

눈에 띄는 점은 한가지 더 있었다. 보통은 표지에 제목, 저자, 출판사의 성명만 있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 책은 독특하게도 책 본문의 일부를 그대로 꺼내와 표지에 입혔는데 이러한 구성이 나에겐 굉장히 인상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일부러 열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종이를 넘기고 보이는 활자들을, 모두가 보는 곳에, 붉은 감정 위에 대놓고 꺼내보이는 모습이 나에겐 어떠한 종류의 용기나 결심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책 디자인 하시는 분이 의도하신건진 모르겠지만 정말 책 내용이랑 잘 어울렸다. 그래서 더 집중하며 읽곤 했다.

 


마트료시카. 하나의 목각 인형 안에 크기가 차례로 작아지는 인형이 끝없이 들어있는 러시아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

 

저자는, 이 마트료시카를 열어본다는건 마음을 열어본다는 뜻과 같다고 한다.

'모임이 취소 되었으면 좋겠어.'

이 마트료시카를 열어보면 더 작은 마트료시카가 있다.

'그 모임은 어딘가 불편해.'

한번 더 열어보면

'뭐가 불편한데?' 

뭐가 그런지 왜 불편한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계속 열다보면 그 안에는 제일 작은 마지막 마트료시카가 있다. 

'나는 그들과 어울리지 못해. 나는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

마지막장에서 이렇게 쓰여있는 일이 바로 수치심을 가진 사람의 내면이라고.

 

나에겐 저자가 말하는 마트료시카를 열어본다는 행위가 꽤 어려운일이었다. 왜냐하면 예전의 나는 그것이 나에게 그다지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지 않았고, 일일히 생각하는 것이 귀찮았고,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고, 괜시리 작은 것 하나에 예민해지는 내가 별로인것처럼 느껴져서.

 

어렸을 때부터 내 생각이나 내 행동에 의문이 자주 들었음에도 무언가에 겁을 먹은 나는 일부러 생각하기를 회피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이런 행동을 본능이 되도록 만든 나를, 내 인생 최대의 나쁜 습관으로 여길정도로 매우 후회하고 있다. 

 

여러번 반복된 나의 회피는 여러겹으로 쌓인 수치심과 죽이 잘 맞았다. 그것은 결과적으론 스스로를 믿지 못하도록 매순간 자신을 의심하게 하는, 내가 나를 해하는 악순환을 만들었으니까.  


[나를 꾸밈으로써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응하는 방식을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고자 한다.]

 

요즘 사회적 용어로 페르소나라고 부르는 것.

 

완벽한 자신을 연기하기 위해 애쓰는 그 심정에 공감이 갔다. 

한편으로는 위로를 받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은 내 자신에게 많이 반성했다.

대부분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 방향을 좋은 쪽으로 끌고 가던데, 나는 이 페르소나라는 가면이 매우 해괴하고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의 나는 노력해서 얻는 성공, 노력해서 얻는 실패 그 사이에서 새로운 경로를 개척했다. 그것은 바로 노력하지 않아서 얻는 실패. 

노력해서 얻어낸 완벽은 성공이었고, 노력했는데도 이뤄내지 못한 완벽은 실패였다.

'완벽하려고 했고, 완벽하고 싶어했고, 그래서 최선을 다했는데, 실패했다'라는 사실.

이럴수가.

나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럴 수 없다라는 우월감이라도 있었던건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린 나는 그런 사실을 직면할때마다 굉장한 수치심을 느낀 것 같다.

 

그 수치심이 너무도 싫었던 걸까. 어느순간부터 바보짓을 골라했다.

멍청한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일부러 멍청한 아이처럼 행동했고, 틀리기 싫은 문제는 일부러 틀렸다. 열심히 했는데 칭찬을 못받을까봐 그 노력이 무색해질까봐 일부러 혼날만한 짓을해 혼났다. 내 의견대로 갔다가 실패하는 것이 싫어서 남의 의견 따라갔다가 역시 내가 맞잖아 뿌듯하면서 동시에 후회한 적도 많았다. 

상대의 기분이 상할것을 알고 그렇게 하면 안되는 실수인 걸 알지만 그럼에도 홧김에 그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과,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모르는 실수로 상대의 감정이 상한 것.

둘 중에서 나는 후자에 더 굉장한 수치심과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 창피한건지 내 의도대로 흐르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은건지 구분 할 수 없었다. 진짜 이상했다.

 

아직도 이 회피성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떼어내려고 노력은 하는 중이다. 이건 노력을하든 최선을 했든 어쨌든 반드시 무조건 떼어내야 하는 나쁜 버릇이었으니까.

 

'나는 (모든곳에서) 특별하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나는 (나에게) 특별하지만 (세상에) 특별하지 않고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불가능함을 인정할 수 있다면,'

'나를 외부의 시선과 기준으로 평가하는 한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내게 자유가 없다는 사실을 깊이 실감할 수 있다면.'

 

23페이지 한 단락의 모든 문구가 유독 기억에 남았다.

 


(내가 한번 더 감탄했던 책 배를 덮은 디자인)

책의 내용도 구성과 디자인도 모두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읽다가 너무 생각이 많아져서 읽고 쉬고 읽고 쉬고 했지만 어쨌든 밑줄쳐가며 두고두고 읽을만한 책. 자꾸 매일 어딘가로 숨고 싶거나 자신만의 완벽주의로 고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특히나 더 추천하고 싶다.

 

 

[본 도서는 제공받았으며, 솔직한 서평을 목표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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