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20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5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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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번째 《토지》를 읽으며
8월의 긴 여름도 어느덧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뜨거웠던 한낮의 열기가 조금씩 누그러지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가을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치열했던 여름의 끝에서, 나 역시 오래도록 함께했던 《토지》의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토지》에는 약 60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고 한다. 모두 박경리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들이다. 그러나 스무 권의 책을 읽는 동안 그들은 더 이상 소설 속 인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한 세대가 가고 또 다른 세대가 태어나 어느덧 3대의 삶이 이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의 생을 곁에서 바라본 것만 같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지나 그토록 바라던 해방에 이르기까지. 《토지》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통해 우리 민족의 한과 정을 담아낸다.
나라를 빼앗기고 고향을 등져야 했던 평사리 사람들의 삶은 곧 그 시대를 살아낸 우리 민중의 삶이기도 했다. 같은 비극 앞에서도 누군가는 악인이 되었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었다. 조준구와 그의 처, 임이네, 김두수처럼 욕망을 좇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시대의 폭풍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도 있었다.
나라 밖에서는 길상이, 안에서는 서희가 사람들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홍이와 환국, 강쇠와 몽치…. 세대를 거듭해 태어난 자녀들은 부모의 삶과 뜻을 이어받아 독립운동과 나랏일에 힘을 보탰다. 비록 나라의 주권은 빼앗겼지만 언젠가는 다시 우리의 땅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토록 참혹한 시대에도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대로 사랑할 수 없었던 시대였기에 그들의 사랑은 더욱 애틋하게 다가왔다.
길상을 마음에 품었지만 서희와 길상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접고 기생이 된 봉순이. 봉순을 사랑하면서도 양반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지지 못했던 지식인 이상현.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양현은 서희의 양녀가 되어 의과대학까지 졸업하지만, 자신의 출생 때문에 마음껏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지 못한다.
백정의 손자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 술집의 악사가 된 영광,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의 아이마저 떠나보내야 했던 유인실, 그리고 조선인인 그녀를 사랑했던 일본인 오가타까지.

사랑했지만 함께할 수 없었던 사람들. 시대와 신분, 민족과 출생이라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조건 때문에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이들의 사랑이 마지막 권에 이르러 더욱 아프게 남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이야기는 결국 20권에서 막을 내린다.
남은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끝내 사랑을 이루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박경리는 그 이후의 삶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그러나 악인의 최후에 대해서만큼은 단호하다. 우개동을 끝으로 이어지는 비참한 최후를 보며, 민족을 배신한 자는 육체든 영혼이든 끝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작가의 굳은 의지를 느꼈다. 어쩌면 그것은 해방 이후 친일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를 향한 질책처럼 읽히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해방.

“만세! 우리나라 만세!”
《토지》의 긴 이야기는 그 외침과 함께 끝난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기다렸던 순간이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원했던 결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그 이후의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독립을 이루었지만 그것으로 역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해방 이후에도 수많은 비극과 갈등을 지나야 했고, 그 역사의 연장선 위에 지금의 우리가 서 있다.
그래서 마지막 책장을 덮은 뒤 내 안에는 하나의 질문이 오래 남았다.
그토록 원했던 독립을 이루었으니,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역사는 흐른다.

사람은 떠나고 또 다른 사람이 태어나 그 자리를 살아간다.
《토지》는 끝났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계속된다.
스무 달 동안 한 권씩 책장을 넘기며 수많은 사람의 탄생과 죽음, 사랑과 이별, 욕망과 좌절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토지》가 내게 남긴 것은 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박경리가 남긴 그 물음은 마지막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내 안에서 울릴 것 같다.

* 이 글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서평단을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스무 달 동안 《토지》와 함께할 수 있도록 책을 제공해주신 #다산책방 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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