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9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4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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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9권 (5부 4권) │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필사단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열아홉 달이 되었다. 아침과 저녁, 하루의 끝과 시작을 책과 함께하며 가장 마음에 남는 문장을 필사해 왔다. 계절은 여러 번 바뀌었고, 긴 여정도 이제 마지막 한 권만을 남겨두고 있다.

1권에서 만났던 평사리 사람들은 어느새 3세대를 지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박경리《토지》에는 이름이 언급되는 인물만도 약 600~700명에 이른다고 한다. 평사리의 지주부터 소작농, 독립운동가, 일본인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삶이 서로 얽히고 스쳐 간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모두 허구의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그들은 더 이상 소설 속 사람이 아니다. 숨 쉬고 사랑하며, 절망하고 희망하는 우리의 조상들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토지를 읽는 일은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시간을 함께 걸어가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번 권에서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인물은 양현과 영광이었다. 서희의 양녀로 자란 양현은 윤국과의 혼인을 거절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 의사가 되려는 양현에게는 '기생의 사생아'라는 꼬리표가, 영광에게는 '백정의 손자'라는 낙인이 평생을 따라다닌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뛰어난 두 사람이었지만, 시대의 편견은 사랑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사랑하면서도 끝내 함께하지 못한 두 사람. 그 공허함을 하룻밤의 방황으로 달래려는 영광의 모습은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사람을 갈라놓은 것은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시대의 잔인함이었다.

반대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민족을 배신한 이들의 최후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친일파가 되어 권력을 휘두르던 우개동은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몰락하고, 일본의 밀정이 되어 독립운동가들을 죽음으로 내몰던 배설자 역시 독사 같은 삶의 끝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보다 안도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는 사실은 씁쓸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남겼다. 결국 삶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의 선택을 향해 흘러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무엇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장면은 홍이의 딸 상의였다. 학교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던 그녀는 일본인 사감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당히 맞선다.

"처벌하십시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한 소녀가 품었던 분노와 존엄, 그리고 시대를 향한 저항이 모두 담겨 있었다. 책을 덮은 뒤에도 그 목소리가 오래도록 귓가를 맴돌았다.


《토지》는 수백 명의 인물이 밀물처럼 등장하지만, 누구 하나 우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며 세대를 건너고, 서로의 삶이 촘촘하게 이어지며 하나의 거대한 역사가 완성된다.

이제 마지막 한 권만이 남았다.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해방된 조국의 땅에서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열아홉 달 동안 함께 걸어온 이 긴 여정의 끝이 가까워질수록, 마지막 한 권을 펼치는 일이 더욱 기다려진다.

* 이 글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서평단을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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