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수놓다 - 제9회 가와이 하야오 이야기상 수상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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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진정 어떤 사람이길 원하는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스스로에게 묻게 될 것이다.

내 나이 마흔 하나, 70세 엄마랑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무계획 딸로 인해 비오는 날 우비를 입은 채 우리는 비자림 숲속을 거닐었다. 

"천년이 된 숲이래" 나와 엄마는 진흙 길을 걸으면서 각자의 세계를 상상했다.

숲 끝에 다다르자 전망대가 나왔다. 전망대에 오르니 우리 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나 비 오는 날 숲 처음 와봐. 이렇게 좋구나. 비 오는 날 숲은"

"응. 엄마. 우리 자주 와."

일흔이 된 우리 엄마. 입 버릇처럼 '니 아빠 놔두고 이제는 자유롭게 혼자 살란다'라를 외친다. 못한게 많다고, 젊을 때 그리 고생만 하다가, 이제 좀 다닐만 하니 몸이 말썽이라고. 


난 이 소설을 읽으며 내내 나와 우리 가족들을 떠올렸다. 

고등학생 기요스미를 통해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본다.

그리고 사쓰코를 통해 나는 어떤 엄마인가를 돌아번다.

후미에를 통해 할머니가 된 나의 엄마를 돌아본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되묻는다. '나는 어떤 사람이길 원하는가.' 



<이야기>

'물을 수놓다'는 일본의 한 가정 이야기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주인공 들이 '웨딩 드레스 만들기' 라는 우연한 사건을 통해 자기 자신을 온전히 알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족 구성원들이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환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옴니버스 소설이다. 


<등장인물>

- 주인공 고등학교 남학생 기요스미는 

바느질과 자수 놓는 것을 좋아한다.

새학기 자기소개 시간에 자수 놓는 것에 대해 공개하며 진정한 '자기 다운 것'에 대해 고민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척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척하는 것도 몹시 서글픈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자수를 그만두지 않았고 억지로 주위에 맞추는 것도 그만두었다." 

- 누나 미오는 

결혼을 앞둔 직장 여성이다. 결혼식 때 입을 드레스를 준비하며 고민이 많다. 그녀는 귀여운 것이 싫다. 왜 싫은 것인지, 자신이 싫어하는 귀여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다. 

늘 그녀는 싫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왜 싫은지, 무엇이 좋은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타인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말하는 법을 모르고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예쁜 드레스를 변태에게 커터칼로 난도질 당한 후 트라우마를 겪게 되며 자연스럽게 아름답고 예쁜 것에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그녀 역시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자기 스스로를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드레스를 직접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진짜 좋아하고 바라는 것을 알고 표현하게 된다.  


미오는 어쩌고 싶어?

곤노 씨는 자주 그렇게 묻는다. '표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우리 남매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평소 태도에 대한 쓴 소리일지도 모른다. 


"기운이 나는 것, 기운 나게 해주는 것. ..........귀여운 게 싫다, 미오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누구나 똑같은 '귀여움'을 추구할 필요는 없으니까."


- 엄마 사쓰코는

20대에 임신을 하고 젠과 결혼했지만 독박 육아를 경험하면서 남편에게 질려버린 사쓰코는 이혼을 결심한다. 울어대는 아이와 엉망 진창인 집안일으 돌보는 와중에 

"삿 짱, 이것 좀 봐" 

매화나무 잎사귀를 해빛에 비춰보는 젠의 멱살을 붙잡고 그녀는 소리 지른다. 

"몰라!" 이 자식, 너 이자식, 태평하게 잎사귀의 생명력을 느끼는 동안 아들이 휴지에 목이 막혀 죽으면 어떻게책임질 셈이야? 어? 라고 소리지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의 독박 육아가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때 멱살을 쥐어 흔들고 내쫓았어야 했어."  

아이가 태어나도 여전히 피터팬처럼 땅에 닿지 않고 붕붕 떠다니는 현실감 없는 남편, 

출산 후에도 모성애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얼마나 자괴감을 느꼈을까?


- 할머니 후미에는

70년 넘는 세월 동안 남편에게 강요당한 성역할 고정 관념에 의해 본인 스스로 많은 것을 제한했다는 거을 깨닫는다. 수영장에 갔을 때 자신을 '개'에 비유하며 웃어대던 남편으로 인해 한평생 수영장 물 속에 담그지 못했던 사연은 참 가슴 아팠다.

우리의 수 많은 엄마들은 그렇게 살았다. 남편을 떠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저주에 걸린 사람들 마냥 그들의 언어 폭력을 묵묵히 견뎠던 것이다. 이젠 그녀는 당당하게 수영장에 간다. 여행을 간다.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떤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해냈다.  

"일흔네 살이나 되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니 용기가 필요하긴 하다만. 하지만 지금 시작하면 여든 살에는 수영 경력 6년이 되는 거잖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제로 그대로지만."


<느낀 점>

이 소설 속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삶을 돌아보며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된다.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함으로서 온전히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성장 소설이다.

멋진 어른으로 성장 하고 싶은 청소년부터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은 어른이에게 추천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은 나 역시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냥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는 게 어려운가요?"


<인상 깊은 문장>

"무책임하게 친절을 베푸는 게 불친절한 결과를 부를 수도 있어"

71


본인이 입었을 때 편하지 않은 옷은 안 돼. 앉아 있기만 해도 불편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지쳐버리지. 지치면 자기 자신이 싫어져.

244


"늘 생각했어. 소중한 일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유행이나 돈이 된다는 이유로 고르고 싶지 않아."

291


* 이 게시물은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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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강수확률이 50퍼센트라고 치자. 너는 기요가 걱정되니 우산을 챙겨 가라고 하겠지. 그 다음부터는 그 애 문제야. 무시하고 비에 젖거나 감기에 걸려도 그건 그 애 인생이야. 그 애 한테는 실패할 권리가 있단다. 비에 젖을 자유가 있어.

"그런데... 네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었니?" - P146

흐르는 물은 결코 썩지 않는다. 항상 움직인다. 그렇기에 청정하고 맑다. 한 번도 더렵혀진 적 없는 것은 ‘청정함‘이 아니다. 계속 나아가는 것, 정체하지 않는 것을 처정하다고 부르는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많이 울고 상처 입을 테고, 억울한 일도 부끄러운 일도 있겠지만 그래도 계속 움직이길 소망한다. 흐르는 물처럼 살아다오. 아버지가 할 말은 이상입니다. - P285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고, 직업하고 상관없이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거든.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지 않는 다고 해서 그게 인생이 실패했다는 뜻은 아닐 거야, 분명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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