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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범죄
칼 마르크스 지음, 이승은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은 저자의 이름 자체가 무척 혼란스럽다. 이게 소설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책 표지를 넘길 사람이 꽤 많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칼 마르크스의 일기를 소재로, '칼 마르크스'가 썼다. 실제 저자와 소설 속의 화자의 직업과 상황도 일치하는 듯하다. 픽션의 모든 요소를 다 갖추었노라고 자신만만하게 서두를 여는 이 작품은, 알 수 없는 암호문으로 미스터리물의 출발점에 선다.

우연히 발견한 의문의 일기와, 그것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현재의 노숙자가 된 마르크스의 때로 시니컬하고 때로 격렬한 일기의 내용은 분명히 매력적이고,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를 그에게 좀더 가까이 데려간다. 쓰레기통을 뒤지다 발견한 빈 지갑 속의 신분증 같은 것을 주인에게 찾아줄 때의 유형별 공략법과, 은행강도가 쓰레기통에 현금보따리를 숨겨놨을 확률을 계산하는 복권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재기가 넘치는 부분이다.


인류의 보편적인 물리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생' 개념 위에서 짜여진 이 이야기는, 설정 자체에서 어쩔 수 없는 무리를 보이기도 한다. 내가 완고한 독자여서일까? 그리고 '신'을 이야기하는 유물론자 마르크스는 너무 낯설다. 자신의 상황을 너무나 잘 받아들이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의 결코 자랑할 구석이 없는 사생활에 관한 절정부의 고백도, 오히려 나는 현재의 그를 과거와 연결하는 에피소드 쪽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픽션은 어디까지나 픽션, 하지만 개연성을 충분히 보여주어야 한다는 내 굳은 생각에 동명이인 칼 마르크스의 이 재기발랄함은 상상 과잉으로 느껴졌다. 이래서야 상상 예찬을 하며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내 참. -_-;; 내 안에도 '마르크스'가 어떤 우상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 소설이 불경하게 느껴진 걸까? 무신론자이고 유물론자인 나의 취향에 영 안 맞았던 걸까? 모르겠다. 다른 독자들의 의견도 듣고 싶어진다.

 

그리고 덧붙여, 스페인 계단이라는 영생의 계단(좋은 건 아닌 것 같지만)을 내려올 권리는 어느 정도의 유명세와 인류공헌에 따라 결정되는 걸까? 역시 신만이 아시나? 책에 언급된 많은 독일계 유명인들 이름들을 난 당최 모르겠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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