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마음에 남아 - 매일 그림 같은 순간이 옵니다
김수정 지음 / 아트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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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순간 그림같은 시간이 왔다.그림은 마음에 남아.'
저자 김수정의 말을 따라 해본다. 파스텔빛 그림 에세이집 <그림은 마음에 남아>가 지난 주말 고성 거진항 여행의 동반자가 되었다. #달리는도서관 이 장거리 출장을 떠난 셈이다.

일렁이는 바다가 요람이었던 듯,이틀 내내 출렁이고 철썩였다. 이리 통렬히 바다를 껴안아본 적이 있었던가?13 여년전 쯤 부산 달맞이 고개에서 바다빛에 취해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추억을 불러오듯 오롯하게 바다에 묻혔다. 한동안 주말이면 한걸음 줄달음쳐 가서 쥐죽은 듯 파도와 뒹굴대며 자다가만 왔다던 그녀를 이제야 이해할 듯했다. 깊은 수면으로 다시 다음 일주일을 살아내는 힘이었다고 했다. 설레임으로 미열을 앓듯 웅웅대며, 밤새 뒤척이는 파도와 함께 <그림은 마음에 남아>에 젖었다. 전전반측 잠못 드는 순간을 아끼고 아꼈다.

도시에 기생하여 바쁜 회로속에서 뿌리를 깊게 드리우지 못하고 허둥대는 나,관계 속에서 급속도로 피로도를 느끼며 지쳐가는 나,합리화와 효율성의 논리로 극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나,관습과 편견의 벽에 가로막혀 말길을 내지 못하는 나. 그 외에도 많은 모습을 한 내가 내 안에서 복닥대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 모습은 다름아닌 너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 나와 너가 김원숙 화가의 '외줄타기'(그림1)에서 아슬아슬 경계를 넘고 있었다. 슬픔마저 숨죽인 고요로 그 팽팽한 긴장을 맛보았다.

'슬픔은 거대한 것이다.감히 평가할 수없는 크기이며,감히 참견할 수 없는 깊이이며,감히 조언할 수 없는 복잡함이며,감히 직면하기 두려운 세상의 불합리함이다.누군가의 슬픔에 참견하지 않는 것,그 슬픔 곁에 그저 머무는 거,그의 슬픔을 존중하는 것만이 한낱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162쪽

그래서 저자는 윌터 랭글리의 '슬픔은 끝이 없고'(그림2)를 가만히 배치해뒀다. '아침 슬픔을 저녁까지 입지 말라 했건만 가슴은 쪼개지는구나'라고 자신이 해석한 느낌의 언어를 덧붙여서......공자는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忠과 恕로 정리했다. 자신에겐 흔들림없는 적중한 마음(중용)을 유지하길 요구하고(中心),타인에 대해선 내 마음 같게 하라고 한다(如心). 젊은 여자를 위로하는 노로의 여인의 온 태도가 내 마음처럼 여긴 측은지심을 담고 있다. 여명을 담은 바다는 냉정하리만치 부동심으로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그림을 가만 바라보며 나는 나대로 내가 오래도록 기대고 있었던 슬픔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내 슬픔이든 타인의 슬픔이든 섣부른 참견을 말아야 한다. 그저 그의 슬픔을 가만히 존중하고 하염없이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긴 슬픔끝에 깨어나는 내가 혹은 그들이 무색하지 않도록......

이스트먼 존슨의 '살짝 엿보기'(그림3)를 보다가 얼마 전 내 모습을 발견했다. 저 아가처럼 토닥토닥 나를 안아주며 위로를 아끼지 않던 울 아들 원정이. 타인의 슬픔을 대하는 태도도 여러 모습이 필요하다. 친밀도에 따라서 위로의 결도 달라야 마땅할 일이다. 어느새 훌쩍 자라 성인이 된 아들이 주던 위로는 위안으로 안착하기 충분했다.

'사람은 존재 그 자체로 기억되어야 하고,존재는 쉬이 사라지지 않아야 하기에.' 그래서 우리는 봄만 되면 그 노래,벚꽃엔딩을 흥얼대고 추억을 소환하게 되나보다. 저자는 요제프 리플로너이의 '벚꽃 만개'(그림4) 작품 속 여인의 뒷 실루엣에서 첫사랑을 부른다.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음직했던 첫사랑의 열병을,그 깊은 슬픔을,다시 순수의 기억을......만개한 벚꽃 무너미에서 가늘게 떨리는 그녀의 어깨. 가만히 안아주고프다.

'놀라운 화가의 그림을 보면 나의 눈과 그의 눈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재능과 노력은 다른 영역에 있고,세상에 재능만큼 잔인한 것이 없다. 현실의 내 재능은 부족해 슬프지만 한편으로 그의 눈을 빌려서라도 세상을 보고 싶다. 이 열망이 나를 지탱한다. 클로드 모네는 내게 그런 작가 중 한 명이다.' 245쪽

저자는 화가들의 재능을 시샘하고 있으나,난 그 화가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끌어가는 그녀의 눈밝음에 시샘한다. 매일 그림과 함께 무한한 상상력과 느낌을 물에 물감을 풀어,사람의 마음 속에고상하고 우아한 자신만의 그림을 물들이고 있다. 때로는 시어가 되고 때로는 상념이 되어 끝도 없는 천일야화를 직조하고 있다. <안목에 대하여>를 쓴 필리프 코스타마냐는 다양한 작품을 봐야 하며 직접 미술관에서 세밀하게 관찰하며 느낄 때 비로소 그림을 아는 것이라 했다. '발견된 작품은 복잡한 역사를 품고 있다'고 했다. 진품과 위작을 가려내는 일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테다. 저자의 눈에 띤 혹은 발견된, 더 나아가서는 교감한 작품들은 모두 일상성에서 비롯된 한 사람 한 사람의 서사를 품고 있다. 그녀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이랄지,사람을 향한 그녀의 수줍은 애정이랄지 결국 그녀의 안목은 그녀가 살아내고 포개고 닿은 시선과 눈빛의 함량이 아닐지......

밤을 지새고 다시 움트는 신새벽 바다는 신비로운 푸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생각을 비우고 도시의 소음과 환영들을 지우고 한껏 나태해져 책 한줄 읽다가 포말을 헤이다가 어느새 잠들었다가.....신비로운 푸른 빛을 따라 사유는 출렁이고. 후두두둑,드디어 창가에 빗금을 그어대는 물방울의 유희에 빙글빙글 어지럽다가 다시 뒹굴어진다. 존 화이트 알렉산더의 '휴식'(그림5)처럼 완전한 휴식.

청량한 빗소리가 파도와 결탁하여 연신 '나 잡아봐'를 한다. 포슬한 감자와 향긋한 과일을 배어 물며,나와 벗들은 삶을,일을,사람을,사랑을 논한다. 수용과 지지,연대를 오가며 서로 위무하고 토닥인다. 적어도 오늘 우리가 엮어낸 '관계'의 직조물은 어쩌면 안프랑수아루이 장모 작품 '영혼의 시-산에서'(그림6)를 닮아있었을지도 모른다. 발그레 물든 뺨으로 이끌고 따르며 '그 곳'을 향하는 길. 순간순간의 씨실과 날실이 그려내는 무늬는 어느새 자신만의 '만다라'를 그려내고 있다.

'당신의 인생 가운데 당신이 넣은 아름다운 것들을 기억하라.그런 당신이 아름답지 못할 리가 없다.맑고 투명한 그대여,그대에게 투명함이 주는 기쁨이 오늘도 내일도 또다른 내일까지.매일 더 새롭기를 구한다.'자,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우리가 서로에게 보낸 축원이 이러하지 않았을까?마음에서 마음으로 닿은 그림들에 빗대 더더욱 소중해진 그녀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향한 축원은 내 영혼마저 맑히는 순간이다. 또 어느새 단잠에 빠진 벗들을 위해 가만가만 까치발로 저자 Soo Jung Kim의 '그림마음방'(그림7)회랑을 돌아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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