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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카, 짖지 않는가 ㅣ 미스터리 박스 2
후루카와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133회 나오키 상 후보작, 2006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7위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나온 작품이다. 그러나 추리소설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슨 장르일까? 딱히 말하기가 어렵다.
매우 특이한 작품이다. 이 책은 '개'의 역사이다. 이것이 이 책의 특징을 가장 잘 말해주는 표현이다.
이 작품은 두 가지-정확히 말하면 세 가지 관점에서 전개된다. 하나는 개의 시점, 하나는 '대주교'의 시점, 다른 하나는 스트렐카의 시점이다. 그렇지만 세 번째는 스트렐카뿐 아니라 앞의 두 시점 외의 모든 사람의 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개의 이야기는 1940년대부터 시작한다. 2차 대전 당시, 알류산 열도의 한 섬에 주둔한 일본군이 미군의 공격을 받고 철수한다. 일본군이 키우고 있던 군견 네 마리가 버림받아 남는데, 이들은 혈통이 좋고 충성심이 강한 개들이었다. 그러나 주인에게 버림받은 후 혼란에 빠지고 다시 들어온 미군 손에 키워지다가 각기 미국, 러시아 등으로 퍼지게 된다.
이들은 많은 후손을 남겼고 그 후손들은 또 각기 다른 개들과 교배하며 우수한 혈통과 야성의 본능, 잘 훈련된 군견으로서의 기능을 갖춘 개들로 자라난다. 그들은 각기 이름을 가졌고 인간의 손에 키워지거나 야생에 떠돌며 질긴 잡초처럼 살아간다. 이 책은 이들 혈통의 연대기를 매우 끈질기게 그려낸다. 제각기 가지를 치며 다른 이야기로 가다가 어느 순간에 하나로 합치는 등, 매우 장대하고 복잡한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주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한 노인의 이해할 수 없는 암살 행각을 보여준다. 그는 이미 70에 가까운 노인이지만 혼자 몇십 명의 마피아를 학살하는 등의 괴력을 갖고 있다. 그의 행각은 무정부주의적인 암살 행위와 함께 개를 훈련하는 것으로 압축된다.
이러한 역사는 2차 대전 이후 소련, 미국, 중국의 정치사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작가의 주장에 의하면 개의 역사가 바로 이들 냉전 시대의 역사인 것이다. 우주로 올라간 최초의 생물 라이카는 흐루시초프의 신념의 산물이었고 지구상의 수많은 개의 역사를 바꾼 존재였다. 그뿐 아니라 정치적 권력 다툼과 정책 변화의 와중에서도 라이카는 초기 소련의 이념을 일깨워주는 상징이었다.
그리하여 몇십 년에 걸친 개들의 끈덕지고 피로 얼룩진 투쟁사와 초기 공산주의 이념을 가슴에 간직한 냉전 시대 유물 인간의 투쟁사가 한 점으로 모이는 것이다. 사실이 어떠하든, 참신한 시각으로 현대사를 재구성한 작가의 노력은 가상하다.
수많은 폭력과 잔혹한 살인 장면(묘사가 잔혹하다는 뜻이 아니다)으로 점철되어 있으나 특별히 스릴러나 서스펜스물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너무나 진지한 현대사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서술방식은 해설에 나와 있듯 매우 경건한 서사시에 가깝다. '전장의 개들'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지만, 이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전장의 개들'을 그리고 있다. 2차 대전, 베트남 전쟁, 동남아와 동유럽, 중국, 한반도의 여러 전쟁의 한복판에서 인간에게 이용되다 버림받고 죽어가는 개들의 이야기이다.
다 읽고 나면 기묘한 감동이 남는다. 하지만 그 정체를 확실히 알기 어렵다. 작품 자체가 매우 모호한 분위기를 띠고 있는 탓이다. 개들의 심리를 자세히 그리는 반면 인간의 심리는 매우 불친절하게 그린다. 하지만 오로지 생존본능과 모성본능만으로 온갖 역경을 헤쳐가는 개들의 모습은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