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레레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살해된 피해자의 집에서 앨범 한 장이 눈에 뜨였다. 17세기 전반기에 시스티나 예배당 성가대의 일원이었던 그레고리오 알레그리가 쓴 <미세레레>라는 성악곡을 녹음한 앨범. 그 음악은, 아주 높은 선율을 따라가는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홀리는 마력(魔力)을 지나고 있었다. 과연 이 성악곡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프랑스 스릴러 소설의 황제라는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제의한다. 그 비밀을 풀어보지 않겠느냐고…….

 

노쇠한 형사의 비밀 풀이

 

그랑제의 장편소설 <미세레레>는 파리의 아르메니아 성당에서 한 성가대 지휘자가 시체로 발견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마침 성당 사무실에 있었던 은퇴한 경찰관 리오넬 카스단이 제일 먼저 사건 현장에 도착한다. 엄밀히 말해 경감으로 퇴직한 카스단에게는 이 사건을 수사할 권한도,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60대의 말라깽이 남자 빌헬름 괴츠를 죽인 범인을 찾는 일에 착수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말수가 적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던 사람을 누가 왜 죽었을까?’하는 의문을 지닌 채 골치 아픈 늙은 경찰의 뒤를 따르게 될 것이다.

 

소설과 음악

 

소설 속에 음악이 등장하는 경우는 수없이 많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이다. 이야기에서 소개되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나 ‘평균율 클라비아곡집’ 등은 작품의 매력을 더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루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들이 작품 안에 음악을 첨가한다. 그랑제 역시 그런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아니, 한때 음악가가 되려고 했다던 그에게 소설과 음악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검은 선, 돌의 집회……. 그의 전작들을 읽어보면 이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 소설은 아예 음악을 전면(제목부터가)에 내세웠고 그 음악은 필수 불가결한 실마리로 작용한다.

 

카스단은 플레이를 중단시켰다. 그리고는 오디오를 끄고 음반으로 덮인 벽돌과 종이 계란판을 붙여놓은 천장 사이에서 자기를 휘감고 있는 침묵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잠재의식의 신호 같은 것이 들려왔다. 잠재의식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었다. 듣는 사람을 홀리는 그 목소리, 또는 <미세레레>라는 성악곡에 살인사건의 단서가 있다는 통지였다. (1권, p. 73)

 

진리 속의 범죄

 

카스단은 자신과 비슷한 면을 지닌 후배 경찰관 세드릭 볼로킨과 팀을 이루어 사건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 괴츠를 죽인 살인자가 아이라는 볼로킨의 말, 그리고 그가 과거에 지휘했던 한 성가대 소년의 실종 등의 사실이 밝혀지며 사태는 오리무중으로 빠진다. 거기에 성도착증 환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의혹까지……. 범행 수법을 보면 아이가 살인을 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은 결코 죄를 짓지 않습니다.”라는 한 영화 속의 대사가 결정적인 공리(公理)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그 진리마저 의심해 봐야 하는 것이 두 형사들의 몫이었다.

 

괴츠와 친밀하게 지냈거나 연관이 있던 사람들이 연이어 죽임을 당하는데 그 현장들에는 어김없이 미세레레에 나오는 구절이 쓰여 있다. 볼로킨이 카스단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미세레레는 원래 속죄와 용서를 비는 구약성경 ‘시편’의 한 장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들은 ‘진정한 속죄, 용서란 무엇인가.’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범인은 살인을 통해서 그들을 단죄하는 동시에 구원하고자 한다. 그런데 과연 타인의 혀나 눈동자 같은 인체기관을 훼손시키면서까지 하는 살인을 구원이라고 합리화 시킬 수 있을까. 비록 피해자들에게 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속죄(구원)의 도구가 될 수 없다. 이 소설에 쓰인 내용들은 과장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무심히 넘기기엔 무리가 따른다. 아이들의 범죄도, 진리의 탈을 쓴 범죄도 현실의 삶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 진실 찾기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 <미세레레>가 악에 관한 하나의 설명이라고 말했다.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장르와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주제인 아이들의 순수한 목소리……. 그런데 그 목소리(음악)가 살인과 관련되어 있다면? 이런 색다른 설정과 이야기 곳곳에 보이는 치밀한 자료 조사의 흔적들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미세레레> 1권은 괴츠의 과오와 사건의 배후에 나치즘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마무리된다. 카스단과 볼로킨은 점점 검은 진실에 다가간다. 프로이드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이다.

 

“프로이드가 뭐랬는지 알아? ‘우리는 누구나 어린이와 대형사건 범죄자에게 매료된다.’ 우리가 찾는 범인은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지. 어린이인 동시에 대형사건 범죄자 말이야.” (1권, p.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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