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시절 그들을 보호해주던 가정과 학교는 이제 혼란스러운 시대를 맞아 그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었으며, 대신 젊은이들에게 독립적인 사고가 싹터서, 사회 규범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점점 더 자신들의 판단에 의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질서들이 부분적 질서일 때, 즉 중심 질서로부터 떨어져 나온 파편들일 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런 부분적 질서는 형상화하는 힘은 여전히 잃지 않았지만, 중심, 즉 지향점을 잃어버린 것이다
현대의 자연과학이 원자의 형태에 대해 논하지만 형태라는 말은 여기서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만 이해될 수 있을 것이었다. 즉 공간과 시간 속의 구조로서, 힘과 대칭을 이루는 것으로서, 다른 원자들과의 결합 가능성으로서 말이다. 이런 구조는 결코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데, 무엇보다 그런 구조가 객관적 사물의 세계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학적 고찰은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이 세상의 길은 젊은이들이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단다. 젊은이들이 아름다운 것을 선택하면 아름다운 것이 더 많아질 테고, 실용적인 것을 선택하면 실용적인 것들이 더 많아질 테지. 그래서 각 개인의 결정은 자신에게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도 중요한 거란다.
내가 그 이상 무엇을 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어려움이야.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수많은 현상을 통합적으로 연관시킬 수 있는, 즉 ‘포괄할 수 있는’ 표상이나 개념을 갖게 된다는 뜻일 거야.
지금까지 물리학, 혹은 모든 다른 자연과학에서는 새로운 현상을 규명하고자 할 때 기존의 개념과 방법을 사용했어요. 새로운 현상을 이미 알려진 효과나 법칙으로 환원시키고자 했죠. 그러나 원자물리학에서 우리는 이미 기존의 개념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뮌헨 시민전쟁을 겪으면서 어떤 정치 노선을 당사자들이 시끄럽게 선전하는 목표에 따라서 판단하면 절대로 안 되고, 그들이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으로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나쁜 수단은 그 장본인들이 자신들의 명제의 설득력을 스스로 믿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여기서 한 물리학자가 상대성이론에 반대하여 투입한 수단이 비열하고 객관성을 상실한 걸 보면 이 반대자는 상대성이론을 과학적인 논지로 반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틀림없었다.
신기하게도 햄릿이 여기에 살았다고 생각하면 이 성이 아주 다른 성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물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이 성은 돌로 만들어진 것이고, 우리는 건축가가 그 돌을 짜맞춘 형태를 감상해요. 돌, 고색창연한 초록 지붕, 교회 안의 목재 조각품, 성은 이런 것이죠. 햄릿이 여기 살았다는 사실을 듣게 되어도 이 모든 것은 하나도 변하지 않죠. 그런데도 그 사실을 의식하면 이 성은 다른 성이 돼요. 갑자기 담들과 벽들이 다른 말을 하게 되죠. 성의 뜰은 넓은 세계가 되고, 어두운 구석은 인간 영혼 속의 어둠을 상기시켜요. 우리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질문을 듣게 되죠.
"목표를 정하고 어떻게 던질까, 팔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를 곰곰이 생각하면 맞힐 확률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머리를 쓰지 않고 그냥 맞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상황은 또 달라지고 정말로 맞힐 수 있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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