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의 찬탈은 그가 궐후(後)에 아무리 좋은 정치를 했다 한들, 정당화될수 없는 것이다. 세조의 찬탈로 인해 훈구파와 사림의 대결구도가 심화되었고, 조선의 지식인 전체에 비굴한 생존의 자괴감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사림의 경직적 사고를 초래하였다. 결국 조선왕조는 세조의 찬탈로 인한 도덕성의 상실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불운한 역사를 그려갔고 경술국치에까지 이르렀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죄악의 뿌리가 친일파에까지 이어지고, 오늘날 대의(大義)를 생각치 않는 체제아부형의 지식인 · 정치인 상에까지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비굴한 생존보다는 역시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의 절개가 우리에게 더 절실히요청되는 것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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