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리아스의 뒤를 이은 교황 스테파누스 2세stephanus II는 이러한 절실한 마음을 담아 AD 754년 피핀에게 기름을 한 번 더 부어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양동이째 퍼부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피핀은 정성 어린 기름을기쁘게 뒤집어쓴 뒤 확실한 대가를 지불했다. AD 755 년 롬바르드족으로부터 교황을 지켜준 데 이어 동로마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던 것이다. 윈-윈Win-Win이었다. 이때부터 교황은 이탈리아 중부 지방 일대를독자적으로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교황령Papal State의 시초이다. 성스러운 왕이 세속의 왕과 점점 차이가 없어지는 과정이다. - P486
봉토를 받은 봉신들은 그 땅의 생산물로 먹고살며 기병을 육성해야 했다. 즉 자급자족하며 힘도 기르는 독립적인 권력자였던 것이다. 칼 마르텔은 이 독립적인 권력자들에게 각각 게르만식의 충성서약을 하게 만들었다. 개별적인 계약을 한 것이다. 봉토는 마르텔에 대한 군사적인 의무를 이행하는 데 대한 대가였다. 봉신들은 토지를 받으면 봉사를 해야 했고 봉사를하지 않으면 토지는 몰수되었다. 이것이 바로 중세 봉건제가 만들어지는과정이다. 마르텔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봉신들이 많아야 대규모의 기병을유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기병을 늘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토지가 필요했고, 토지를 얻기 위해서는 전쟁을 멈출 수 없었다. 전쟁이 곧 비즈니스였던 것이다. - P492
황소의 난은 당을 멸망으로 이끈 사건이다. 이는 안사의 난과 곧잘 비교되는데 안사의 난이 당의 정치제도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황소의 난은 사회제도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사의 난이 절도사라는 지배 세력의 반란이라면 황소는 농민이라는 민중 세력의 저항이라 할 수 있다. 당의 전반과 후반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두 사건은 이렇듯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 P546
분열 시대와 통일왕조 시대의 가장 큰 차이는 갈등의 형태라고 할 수 있PET다. 전자의 갈등은 국가 간의 경쟁, 즉 전쟁을 말하고 후자의 갈등은 내부자들 간의 경쟁, 즉 권력 투쟁을 말한다. - P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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