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가 바뀌면 국가도 바뀌는 것이 보통인 동양과 달리 로마는 지배자의 혈통이 국가와 정부를 이루는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세습과는 거리가먼 공화정이 종말을 맞이한 후 세습이 권력 이양의 주된 방법으로 자리 잡은 것이 로마의 제정이다. 따라서 세습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자연스럽게 선출이라는 뿌리 깊은 과거의 방식으로 위정자를 만들어냈다. 물론 여기서 선출이라는 과정은 공화정에서처럼 절차를 따르는, 건설적인 것이 아닌 특정 집단의 무력과 협잡으로 이루어졌음을 말한다. 그래서 초대 황제아우구스투스 이래 로마 제정의 정권 창출은 ‘세습‘과 ‘기형적 선출‘의 반복이었다. - P45

왕망은 여론이라는 것의 힘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조작하는방법 또한 알고 있었다. 미디어에 대한 현대적인 이해를 가진 인물이었던것이다. 그는 여론이 곧 민심이고 민심이 허락해야만 대권이 허락됨을, 그리고 그것을 인력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함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이 모자라던 시절은 철저히 명성을 얻기 위해 행동했고, 힘을 얻고 난 뒤에는 재물을 풀어 여론을 조작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수십만 명의 백성이자신을 지지하고 자기 뜻대로 청원을 하는 등의 성과를 얻는다. 큰 그림을위한 지난한 과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이다. - P59

현대의 인재 선발제도가 과거보다 무조건 낫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뽑아놓고 후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보다 나아졌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공정성이다. 신분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과 공정한 선발 과정……아, 아닌가. - P97

중국 역사의 고질적인 병폐는 외척과 환관의 정치 개입이다. 이 두 세력중 하나에 의해 황제가 무력화되고 국가가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후한은외척에 의한 부작용과 더불어 이후 당이나 명에서 등장하는 환관정치병폐의 초기 버전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은 먼저 화제가 9세의어린 나이에 등극했다는 것이다. 황제가 어린 탓에 태후 두씨가 섭정을하게 되었고, 덩달아 두씨 가문이 요직을 차지하고 횡포를 부렸다. 이는 외척이 나라에 폐를 끼치는 전형적인 시나리오이다. - P103

왜 로마는 이와 같은 비생산 시설을 이토록 큰 규모로, 그것도 지속적으로 건설하였을까. 이 질문은 정치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콜로세움과 같은 대규모 경기장은 로마시민들의 오락시설인 동시에 매우 정치적인 시설이기도 하였다. 경기장뿐 아니라 신전이나목욕장과 같은 대규모 시설은 정치인들을 비롯한 많은 유력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황제 또한 정부의 업적을 보고하고 자신의 치적을 선전하는장소로 이러한 곳들을 활용하였다. - P123

로마의 평화 시대 또는 오현제 시대라고 하면 대개 평화와 번영만을올리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시기에도 무수한 전쟁이 벌어졌다는것이다. 인류사에서 전쟁은 거의 생활이었다. 오히려 전쟁이 없는 시기를찾는 것이 더 빠를지 모른다. 로마 또한 마찬가지다. 로마의 평화란 국경에서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루어진 내부의 고요함이었다. 평화의상징으로 불리는 오현제가 칭송을 받았던 이유가 군사적 업적에 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시대와 비교해도 전쟁의 숫자가 적지않았다. 이렇듯 힘을 바탕으로 이룩한 평화의 시대에 로마는 평화를 누렸지만 인접국은 억압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진정한 평화란 자신의힘으로 주도한 역학관계에서 쟁취한 평화인 것이다. 이것이 팍스 로마나의
‘Pax‘ 이며 그 주도적인 힘이 헤게모니이다. - P136

충신은 간신을 이기지 못한다. 그 이유는, 충신은 나라를 돌보느라 바빠 간신에겐 관심이 없으나, 간신은 나랏일 따윈 관심이 없고 자신의이익을 위해 충신 때려잡는 데에 온 힘을 쏟기 때문이다. - P144

도덕성과 지능이 떨어지는 집단에 거대한 권력이 주어졌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로마근위대는 잘 보여주고 있다. 그저 로마라는 곳에 이런 집단이 계속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이며,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수백 년을 지속했다는 것은 더 불가사의하다. - P159

군사력만 놓고 보면 동탁은 가장 강한 군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정권을 잡고 천하를 흔들 수 있었던 것은 황제를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허울뿐인 황제라 해도 그는 여전히상징이었다. 중국에서는 이를천자라 하였는데, 고만고만한 세력들 사이에서 천자의 확보는 정통성과 직결되었다. 즉 자신이 정부이고, 자신의 사병이 정부군이며 이에 대항하면 반란이 됨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황제는 이 게임에서 최고의 ‘아이템‘
이었던 것이다. - P163

절차를 무시한 집권은 ‘한탕‘과 ‘요행‘
의 표본이 되어 장기적으로는 반드시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한번 쿠데타가 일어난 나라에서 그런 일이 계속반복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군인황제 시대가 되기 전까지 천 년이나발전해 왔던 로마가 군인황제 시대 이후 200년간 쇠망의 길을 걸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P187

역사는 발전하는가‘라는 어려운 명제를 놓고, 만약 역사가 발전한다고가정하면 통일기보다 분열기가 그 발전의 속도가 빠르고 힘도 훨씬 강하다. 진통은 성장의 필요조건이고 혼란은 안정을 향한 동력이 된다. 역사란그것을 반복하는 과정인 것이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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