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나관중 본의 첫 구절인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의 의미대로 중국의 역사는 분열과 통일을 거듭한다. 춘추시대는그 분열의 첫 장이었다. - P190
존왕양이는 주양이尊周라고도 하는데 주나라를 보존하며 오랑캐를물리친다는 것이고, 계절존망은 글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잇고 끊어짐과 존재하고 망함을 뜻하는데 단절과 멸망을 함부로 결정하지 않았다는것이다. - P193
이들 사상 중에서도 신상필벌과 엄벌주의의 엄격한 법체계를 이용해 빠르게 질서체계를 세우는 수단으로 법가가 그 효과를 인정받았다. 특히 전국시대를 끝낸 진이 채택을 하면서 효과를 검증받아 가장효율적인 통치사상으로 떠올랐다. 뛰어나지도 못했고 촌스럽기 그지없었던 진이라는 학생이 법가라는 빨간펜 학습법으로 전국 수석을 한 셈이다. 이후 중국의 모든 제국들은 유학을 표면적으로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인 통치수단으로는 법가를 채용하게 되었다. - P206
도편추방제는 오랫동안 아테네의 민주정을 대표하는 제도로 알려져 왔다. 이 제도는 언뜻 보기엔 민주주의라는 이념에 잘 맞는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허점이 많은 제도였다. 흑색선전과 선동으로 얼마 되지 않는 시민들의 눈을 흐리게 만들면 얼마든지 왜곡된 결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 P213
AD 21C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Ben Ber-nanke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경기부양을 위해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겠다고 해서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아테네에서는 2500여 년전에 이미 ‘헬리콥터 페리‘가 있었던 것이다. - P217
춘추오패는 시간 순으로 등장하여 차례로 세를 과시했던 반면 전국칠웅은 한꺼번에 존재하여 난전을 펼쳤다. 종적인 개념과 횡적인 개념의차이이다. 그래서 전국시대는 춘추시대보다 더 대등한 세력들의 헤게모니싸움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치열해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모든 역사서에서 전국시대는 본격적인 약육강식의 시대로 표현한다. - P227
합종연횡은 합종책과 연횡책의 결합으로 후에 종횡가라 하여 제자백가의 반열에 들어가는 사상으로 발전한다. 합종책은진 강성함에서 비롯되었는데 2강이었던 초를 중심으로 6개국이 연합하여 진에 대항하는 책략이다. 반면 연횡책은 진이 6국의 각국과 하나하나 관계를 맺고 공존하자는 것으로 합종책을 깨뜨리기 위한 책략이다. - P232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은 유구한 역사의 흐름에서 볼 때 순식간에 지나간존재였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알렉산드로스와 그의 제국은 헬레니즘 문화라는 큰 영향력을 남겼다. 알렉산드로스 이후부터 로마에 의해 이집트가 멸망하기까지 300여 년 동안 헬레니즘 문화는 동서양을 융합하고다시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 하나로 간다라 미술은중앙아시아와 중국과 한국,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서양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그의 정복은 그리스 문화를 확산시켰고 시각을 세계로 넓혀 수많은 민족이 보편주의를 갖게 되는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다. 물론 정복당한 민족은 죽을맛이었겠지만 말이다. - P255
현재 중국 최대 민족인 한족은 한나라가 성립할 시기에 중원의 질서와 문화에 편입되어 있던 사람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집단이다. 한의 카테고리는 결코 혈통이나 DNA의 문제가 아니다. - P271
그렇다면 왜 중국의 대표는 진[China] 이 아니고 한漢일까. 그것은 한이 실질적인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이기 때문이다. 진은 15년 만에 멸망했고, 그기간이 너무나 짧았기에 진의 통치 아래에서 중국인들은 어떠한 소속감도동질성도 느낄 수가 없었다. 한, 그것도 전한 200년의 치세 동안 중국은 처음으로 통일되어 안정된 천하를 체감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한은 중국의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 중국인의 의식 속에 이상향은 주, 정신적 고200향은 한漢, 가장 성했던 때는 당으로 자리 잡고 있다. - P272
많은 학자들은 유방이 자신을 제대로 파악한 점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사실 유방은 자기가 별다른 능력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분수를넘지 않고 각 분야에 능력 있는 인재들을 기용했고 그 사람들의 말에 귀를열었다. 스스로 엄청난 용력을 가져 남을 무시했던 항우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던 것이다. - P275
고대로부터 승전국은 패전국의 민중을 노예로 삼거나 재산을 약탈하며 군림했다. 하지만 로마는 패전국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로마의 일원으로 만드는 정책을 펼쳤다. 자치를 인정하고 자존감을 손상시키지 않는전략으로 아군을 만들었다. - P290
마리우스의 군제개혁은 시기적으로 적절했고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 한마디로 단기적으로는 로마에게 큰 이익을, 장기적으로는 큰 폐단을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마리우스는 자신의 개혁으로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고, 로마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사병처럼 소유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를 독재자로 변질시킨다. 이러한 때에 마리우스의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다. 바로 술라sulla이다. - P347
아우구스투스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예수는 아우구스투스가 권력으로 세상을 지배할 때 믿음으로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흔히 로마는 세상을 세 번 정복했다고 말한다. 한 번은 영토로, 또 한 번은 문화로, 마지막한 번은 종교로.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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