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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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이 특이하다. 일본어로는 '가오리'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어로 가오리는 웃고 있는 귀여운 물고기인데. ㅎㅎ

내겐 재미있는 이름의 작가로 다가왔지만 여러 사람들, 특히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께는 추억의 작가인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이 작가를 처음 접했는데, 표지 날개의 설명처럼 청아하고 세련된 감성 화법의 작가인 것 같다. 동화부터 소설, 에세이까지 집필하신다니 다만 그 풍부하고 왕성한 창작 능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오랜만에 읽으려니 그새 문해력이 떨어졌는지 단편집으로 이루어진 이 책이 참 고마웠다. 작가님의 문체와 구성 방식이 흥미로워서 금방 읽었지만 말이다. 이 책은 전진, 또는 전진이라 여겨지는 것, 뒤죽박죽 비스킷, 열대야, 담배 나누어 주는 여자, 골, 생쥐 마누라,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 걸, 주택가, 그 어느 것도 아닌 장소, 손,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잃다 의 12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름을 모두 열거한 이유는 특이하고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읽기 전, 뒤죽박죽 비스킷, 담배 나누어 주는 여자, 생쥐 마누라가 특히 궁금했다. 이렇게 제목을 흥미롭게 짓는 것도 작가의 숙제인데,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제목과 동명의 "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서 맘에 들었던 구절을 작성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한 남자를 진정 좋아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일이다.

177p

우리는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고, 겁나는 것도 없었다. 아니 무엇엔가 두려워하는 것만이 겁났다.

우리는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싶었다. 또 언젠가 어느 한쪽의 마음이 변하면 무조건 용서하고 떠날 수 있으리라 믿고 싶었다.

185p

나는 다카시의 친절함을 저주하고 성실함을 저주하고 아름다움을 저주하고 특별함을 저주하고 약함과 강함을 저주했다. 그리고 다카시를 정말 사랑하는 나 자신의 약함과 강함을 그 백배로 저주했다.

191p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은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의 첫 문장이었다.

나는 혼자 사는 여자처럼 자유롭고, 결혼한 여자처럼 고독하다.

108

일전에 리뷰했던 프랑스아즈 사강이 했던 말이 있다.

나는 인간 모두가 자기 의지대로 커다란 몸짓으로, 자기 인생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렷하고 결정적인 방법으로.'

209p

이 말은 이 책의 주제를 관통한다. 모든 사람의 행위는 늘 이 세상에서 처음 있는 일이고 한 번뿐인 것인 것. 그리하여 놀랍도록 진지하고 극적인 것. 이 소설의 제목인 "울 준비는 되어 있다"의 의미도 거기에 있다. 과거에 있었던 것과, 그 후에도 죽 있어야 하는 것들의 단편집이 되기를 바란다는 저자 에쿠니 가오리의 철학이 내게 큰 울림을 준다.

여러 여성에게 사랑과 결혼이 변주되며 희구와 절망의 반복이 이루어진다. 옮긴이의 말이 던지는 물음. 우리는 사랑의 끝에는 언제든 고독한 자기 자신만이 남는다는 비극적 진실에 "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일까? 나의 생각은 이렇다. 울 준비는 곧 나아갈 준비이다. 비극적 현실에 절망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은 곧 이를 극복하고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삶이라는 큰 수레바퀴의 한 단계.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울 준비"를 마쳤고 삶의 또다른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희망이라는 사탕을 볼에 한 움큼 문 채로.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일본소설 #울 준비는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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