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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빛 아래
황수영 지음 / 별빛들 / 2022년 3월
평점 :
표지의 그림도, 종이의 재질도, 제목까지도 마음에 들었던 책.
요즘 책 제작을 앞두고 있어 부쩍 이런 요소들에 관심이 많아졌다.
종이는 그린라이트일까? 표지는 인스퍼에코일까? 그리고 이런 걸 보고 친환경 인쇄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나도 이런 재질로 만들고 싶은데... 도대체 누가 알려줄 사람?)
별빛들의 산문 시리즈가 이런 형태로 계속 제작된다면 모으고 진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병률 시인의 감상도 한몫 했다! 책을 읽기 전 내용에 많은 기대를 했고, 기대가 충족됐다.
나에겐 내부적인 요소와 외부적인 요소 모두 완벽한 책이였다.
0806. 나는 여름 아이다. IMF의 여름에 태어나 여름을 사랑하는 취미를 가졌다.
그러나 여름 빛 아래, 나는 얼마나 여름을 사랑했나, 또 살아왔나.
작가님의 말처럼 여름을 사랑한다고 믿는 것이 착각이어도 좋을 것 같다.
그마저 여름의 산물일 것 같으니.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잠깐 써 본다.
(내가 매우 딸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골랐다.)
겨울딸기를 한 상자 들고 돌아오는 밤. 즐거운 것도 아니고 따뜻한 것도 아니고 설레는 것도 아닌데 그 모두가 섞인 밤. 그러면서도 묘하게 서글픈 밤.
겨울 때문인지 딸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작은 딸기 상자가 든 봉지가 가볍고 무겁다. 향긋하기도 하다. 왼손으로 딸기를 붙잡고 오른손으로 칼을 들어 딸기를 작게 다진 뒤 지그시 누른다. 반쯤은 두유에 섞어 마시고 반쯤은 요거트에 넣어 먹는다. 손을 씻은 지 한참 지났는데, 그 손으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했는데도 손을 코앞에 대면 딸기 향이 은은하다. 글도 그렇게 써야 할 텐데. 돌아서도 남는 것으로. 한참 다른 길 걷다가도 떠오르는 것으로. 사실 그것은 쓰는 사람의 몫이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상하다. 그 이상한 것을 붙잡고 산다. 마음과 마음을 엮어볼 수 있다면......
요즘의 시간은 이렇게 흐른다. 기찻길에 기차가 지나가는 간격으로, CD플레이어 위의 CD가 한 바퀴를 도는 만큼씩. 시계의 숫자도 힘이 없고, 밝고 어두운 것으로 시간을 알아차리기엔 온종일 너무 밝다.
적고 나면 사라지는 마음이 있고, 적고 나면 더욱 힘이 세지는 마음이 있다. 죽음에 대해서는 한 줄도 적지 못했다. 슬픔에 대해서는 겨우 흉내만 내는 수준이다.
가장 자주 그리워하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 꿈을 꾸고 일어날 때면 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을 온몸으로 붙잡고 있는다. 웅크려 누운 채로. 그게 얼마나 아픈 것이든 그 사람의 흔적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기지개를 켜거나 마른세수를 하거나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털어낼 수 없다.
나도 나만의 까만 개와 함께 서점으로 출근하고 싶다.
작가님처럼 글을 잘 쓰고도 싶고,
앞으로도 많은 책을 만들고 싶다.
이병률 시인님의 말처럼 좋은 작가이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신 것 같다.
'황수영'이라는 작가를 새로 알아서 좋고, 인스타가 있으신지 궁금하다.
아,
계절 뒤에 숨을 생각일랑 버리고,
나도 나만의 삶, 거처, 일터를 이끌고 가꾸고 싶다.
여름이 온다.
내가 앉았던 자리가 매년마다 달라진다.
그러나 나는 안다.
모든 나는 여름 빛 아래 있으리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이루어진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