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문학 146호 - 2012.겨울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비가 그쳤다. 좋은 날씨다. 청년은 죽고 아저씨들은 살아 남았다. 아저씨들은 청년의 유서를 낭독한다. 아저씨들은 혁명의 노래를 부른다. 아이는 비석을 본다. 나는 열린 창문을 사이에 두고 그들을 구경한다. 1961년 1월 19일. 1984년 5월 21일. 2011년 5월 22일. 24년을 별 탈 없이 살다가도 사는 게 문득 부끄러워지면 죽기도 하는 건가 보다. 28년 동안 잘 살아남아 함께 노래를 부르고 웃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세계를 바꾸기 위해 자살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부끄러워 죽은 것이다. 그러나 세계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은 불가해한 방식으로 세계에 파문을 만든다. 한 아저씨가 청년 시절의 유행가를 부른다. 어둠에 묻혀 노래 부르는 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아저씨들이 박수를 치고 후렴을 함께 부른다. 술잔이 돈다.

 

버려진 책들을 주워 모았다. 아깝다는 생각에 한 권씩 주워 모으다 보니 어느새 수십권이 쌓였다. 쌓인 책을 보고 있으면 이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왜 버려진 책들 중 이것들을 주워 모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쌓아놓은 책 중에 절반 이상은 읽지 않고 버리게 될 것이다. 어쩌면 전혀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워 모은 책들을 기념하기 위해, 혹은 언젠가 버려질 순간을 미리 회상하기 위해 한 권을 읽기로 했다. 이장욱의 "천국보다 낯선"을 읽었다. 촘촘하게 썼다는 생각을 했다. 복잡하지만 서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소설을 참 잘 쓴다는 생각, 이미 자신의 세계를 만들었고, 그 속에서 계속 뭔가를 일구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느낌이 좋다. 자기 세계를 만든 소설가들 중에는 간혹 그 세계가 허물어져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거나 세계의 균열을 메우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만든 세계를 좋아했기에 그것이 허물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좋지 못하다.

 

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더라. 왜 그 때 그 글을 썼던걸까. 묻고 답한다. 기억하고 싶은 것, 이대로 사라지는 것들을 붙들어두고 싶은 것, 느슨하고 오래 지속될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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