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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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의 소설 속 상황 혹은 상태는 황정은 소설만의 독특함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삼 년 전부터 낙하하고 있는 상태나 늦은 밤 친척집을 찾아가는 상황, 원령으로 남은 상태, 파도를 기다리는 상황, 말하는 옹기를 숨기고 살아가는 상황, 대피명령이 떨어진 사막같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상황. 익숙한 듯하지만 조금씩 빗나가 있는 상황이나 상태.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황정은 소설의 개성은 인물의 무의미한 이름(혹은 소리)을 통해 강화되기도 한다. 여백이 많은 대화 또한 황정은 소설의 개성을 강화시킨다. 요컨대 황정은의 소설은 스토리가 아니라 상황을 도드라지게 하는 문장을 통해 구성된다. 황정은의 소설은 시적 상황를 지향한다. 따라서 황정은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문장이나 상황을 묵히고 묵혀 시적 보편성을 찾아내고야 마는 집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보편성은 현실에 대한 은유로 읽힐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 동시에 세부를 배제한 기하학적 플롯을 완성한다. 이 앙상한 플롯은 황정은이 만들어낸 세계의 물리학적 법칙이 된다. 소설에서 질서와 개성이 발현되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정은의 소설이 관념적으로 읽히지 않는 것은 황정은이 만들어낸 세계가 너무나 작기 때문이다. 황정은은 스타일리스트로서 확실한 위치를 잡은 듯하다. 여기까지가 황정은을 읽는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합리적인 독해는 재미가 없다. 

 

음산하고 쓸쓸하며 불쌍한 존재의 이름들. 그 이름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행위로서의 소설쓰기. 진부하다. 황정은 소설에 대한 평가로서 적절하고도 부적절하다. 황정은 소설 속에 순간적으로 발현되는 분노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분노에 대해 과장된 평가를 내리는 순간 황정은 소설의 질서와 개성은 무너져내릴 것이다. 황정은의 소설은 하나의 완결체로 존재할 뿐 적절한 분석 대상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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