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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한 유령이 조선의 소설판을 배회하고 있다. 그것은 소년주의이다. 일찍이 경부선철도가 놓일 무렵 파도를 차알싹 차알싹 맞아가며 나폴레옹, 진시황 엿먹이던 소년이 등장한 이래, 이렇게 소년들이 활개치는 세상이 또 있었던가. 갑자기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이 판을 치고 있다. 물론 간혹 중간에 죽거나 정신줄 놓아버리는 소년들도 있지만. 어쨌든 수많은 소년들이 무언가 자신만의 아이템을 들고 소설판을 배회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청소년 독서층 수요의 폭발적 증가가 아마도 이러한 현상의 1차적 원인인 것 같다. 청소년 독서층 수요의 증가는 대입시험에서의 논술 반영 비중 확대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대입시험에서의 논술 반영 비중 확대는 수능시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였다. 수능시험은 객관식 문제이기 때문에 응시자의 논리적 사고 과정을 확인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특정 사안에 대한 응시자의 사고 과정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논술시험이 수능시험의 보완제로서 적절했던 것이다. 그러자 학부모들은 논술시험에 대한 준비를 위해 아이들을 논술학원에 보내거나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연습을 시키기 시작한다. 그 결과 청소년문학은 대박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현하 소년주의의 범람이 단지 청소년문학의 대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한다. 지금부터 그 다른 이유를 생각해보자.
1.IMF: 경제가 파탄나면서 가정도 파괴되고 있다. 소년들은 방황한다.
2.2002년 월드컵: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3.노무현의 등장과 죽음: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비극적 결말은 기본
4.이명박의 역대급 삽질: 소설을 꾸밀 수 있는 다양한 세부 장식품 제공
5.용산참사
6.신자유주의의 세계정복: 더 이상 외부는 없다. 없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7.SNS: 감성 완충된 한 줄이면 충분해.
8.힉스입자 발견 임박: 우주는 넓은데,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그 다른 이유'를 생각하다보니 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작가들의 다양한 조건과 그에 대한 반응이 이처럼 수많은 소년들을 낳은 것이겠지. 다양한 조건들이 작가들로 하여금 소년을 상상하게 만들었다는 것, 이것이 중요할 것이라 막연하게 짐작한다. 소년을 상상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것, 그것은 길들여지지 않음, 끊임없는 질문이다. 김연수를 읽을 때 가끔 소년이 그려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김연수의 소년은 답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어른들도 알지 못하는 답을 소년이 알고 있는 이 상황. 김연수의 이전 소설에 등장하는 어른들이 소년같았다면 원더보이의 소년은 오히려 어른같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것이 좋은 현상인지 아닌지는 다음 소설을 통해서나 확인할 수 있겠지만 뭔가 느낌이 불길하다. 불길하다고 쓰고 나니 정말 불길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