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 명작으로 배우는 사랑의 법칙
김환영 지음 / 싱긋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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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비정치적인 것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196쪽) 】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김환영 지음, 싱긋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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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내용의 소재도 마음에 들었지만 만듦새 또한 눈에 띄었던 책이다. 머메이드지 느낌 나는 양장 표지가 빛을 비추면 광택이 돋보이는 홀로그램 박을 입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낭만적이라고 해야 할까, 제목처럼 '사랑을 읽고픈' 표지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책에서 다루는 작품은 모두 해외문학인데 그에 걸맞게 서체 또한 서양풍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책의 부제는 '명작으로 배우는 사랑의 법칙'으로, 사실 이 부제만 보고서는 책의 소재가 되는 작품들이 모두 해외문학임을 알아채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러니 책의 디자인을 통해서 힌트를 준 셈이다. 사실 이러한 부제와 디자인이 어떤 고정적인 인식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디자인과 만듦새 또한 하나의 언어이기 때문에, 일정한 사회적 약속을 따르는 것 또한 하나의 소통 방식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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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 책을 읽을 때 내용 서술의 많은 부분이 저자의 주관적인 이해와 가치관을 바탕으로 쓰였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해외 명작에 담긴 사회적 문제점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책을 통해 그에 관한 목소리를 내고자 하고 있다. 또한 여러 사랑의 양상과 인물의 행동 양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표현과 서술에서 일정 부분 정체감(停滯感)을 느꼈다. 

 

* '남자들은 "왜 여자들은 나처럼 착하고 능력 있는 남자가 아니라 늑대 같은 나쁜 놈들을 좋아할까"가 궁금할 수 있다. 여자들은 "왜 남자들은 나처럼 착하고 어여쁜 여자가 아니라 여우 같은 나쁜 년들을 좋아할까"가 궁금할 수 있다.' (27쪽) 

 

  책은 '이성 간의 사랑'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있다. 물론 우정이나 정 또한 사랑이며 우정이 사랑으로 혹은 사랑이 우정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전체적인 서술이 남성과 여성의 사랑에 한정되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성 간의 사랑'만을 다룬 책은 당연히 존재할 수 있지만, '이성 간의 사랑'만을 '사랑'의 범주에 포함해버리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 아닌가. 저자가 조르주 상드의 여성 연인을 '사랑하는 사이'나 '연인', '애인'이 아닌 '동성애 관계'로 함축시킨 것, 그리고 상드가 남성용 의복을 입고 다닌 것을 '남장'이라 칭한 것 또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앞서 인용한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듯, 저자의 주관적 판단하에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대표성을 지닌 존재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남성의 경우 능력을 강조하는 반면 여성의 경우 외모를 강조하고 있어 표현에서부터 차별적 시선이 느껴졌다. 

 

* 진보나 페미니즘이라는 오늘의 잣대로 보면 '카마수트라'에 화낼 내용도 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성희롱, 강간에 해당되는 일도 바차야나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여성의 노no, 항의, 고통 호소를 남성을 자극하기 위한 '술책' 정도로 여러 번 이해했다. '카마수트라'의 남성은 가정을 꾸린 다음 집안의 왕처럼 군림했다. 눈살을 찌푸릴 만하다. 하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카마수트라'는 이례적으로 여성을 존중한 텍스트다. 여성의 욕구를 인정했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의 성욕은 남성보다 여덟 배 강렬하다. "여성은 만족시키기 힘들다"며 남편이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아내가 남편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160~161쪽)

 

  지난 시대의 잘못을 마냥 과거의 시선으로만 평가해도 괜찮은 것일까? 여러 문학 작품을 접하면서 딜레마처럼 고민하던 문제 중 하나다. '카마수트라'는 고대 인도의 성애와 성적 쾌락에 관한 문헌이다. 대략 서기 200~300년에 완성되었고 그 원초는 기원전 5,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 당연히 현대인의 가치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차별이 만연한 지난날 이례적으로 여성의 욕구를 인정하고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하였다 해서 '카마수트라'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여성의 욕구를 인정했다는 것이 당시에는 특별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따라서 '카마수트라'는 당시에는 흔치 않게 여성의 욕구를 인정했지만, 21세기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과거 수직적이었던 남성과 여성 간 관계를 명백히 드러내는 문헌이라고 볼 수 있다. 성희롱, 강간이나 마찬가지인 일이 당연시되었던 시대, 여성에 대한 존중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닌가. 더불어 연인 관계에서 한쪽을 '만족시켜야 할', '만족시켜 주어야 할' 존재로 보는 것을 건강하고 바람직하다 보기는 어렵다. 지금은 과거의 최선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차별과 소외를 분명히 인식하고 차별 없는 세상으로 계속 나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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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존중을 바탕으로 한 동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대한 서술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음으로써 해외문학작품에 드러나는 여러 사랑의 형태를 정리해서 볼 수 있었으나 그뿐이라는 점이 아쉬웠다. 작품 속의 내용을 저자 주관대로 이야기해주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작품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책의 내용을 완벽히 흡수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여성 문제와 페미니즘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현대의 저자가 과거의 (대부분 여성에게) 불합리한 사랑의 계보를 읽었을 때 어떤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또 현대의 사랑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시는 마치 초등학생처럼 관심 있는 여학생에게 일부러 못되게 굴었는지도 모른다. (중략) 보통은 남자가 사랑에 빨리 빠지고 여성은 천천히 빠진다고 한다.' (187쪽) 와 같이 편견을 양산하는 문장 또한 존재한다.

 

  소재가 흥미롭고 문학 작품으로 사랑을 읽는다는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챕터를 읽을 때마다 이 작품에 대한 또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사랑이란 인간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며, 그것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더불어 문학 작품 내 인물 양상과 시대상에 관한 고찰과 검토, 반성은 지속해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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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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