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소호 지음 / 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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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꼭 시인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힌다. 동시에 그를 시인이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 속에서 헤맨다. 이소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를 쓰는 사람이니 분명 시인인데 - 그렇지만 시인이라는 두 음절의 단어 속에 가두기엔 너무나 자유분방하고 놀라운 사람. 그런 사람•••. 내가 '시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가 에세이이기 때문. 하지만 과연 이소호의 글에 장르를 매길 수 있을까? 장르로 그의 글을 가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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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또한 이 작품을 '어떤 불행한 예술가가 한 땀 한 땀 손수 지은, 여러 사람에 대한 단 하나의 이야기이다. 거짓과 진실이 뒤섞여 독자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아주 불평등한 이야기'라고 묘사한다. 이 에세이가 픽션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저 '나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에세이에서 타자는 '허구처럼' 보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에세이에서 타자는 내가 바라본 '타인'으로 등장하고, 당신조차 모르는 당신의 모습이 내 이야기에서 샅샅이 토로된다. 그것은 에세이의 매력이자, 에세이의 위험한 면이다. •••위험한 것은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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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호는 진솔하고, 시적이다. 그리고 진솔해서 시적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녀의 현실적인 삶 깊은 곳에 가 닿았다가 순간 아주 예술적이고 아주 먹먹한 지점까지도 포용한다. 그녀의 에세이는 아름답지 않음을 아름답게 만든다. 투박하고 솔직하고 때론 엉망진창인 사랑 이야기는 실패담이어서 더 인간적이고 더 사랑스러우며 더 재미있다. 시인이 나와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던지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이소호는 미지였고 놀라움이었고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수많은 것들이 새로웠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세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 적어도 이해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고 - 그녀의 글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전율하곤 했다.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가 그녀의 전시회였다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녀의 스케치북이었다. 어쩌면 망작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실패한 그림들이 담긴 스케치북. 어찌 보면 초라하고 남루하다. 그런데 그 초라함과 남루함이 우습게도 아름답다. 그래서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나 보다. 그런 아름다움 탓에 우리가 사랑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일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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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출판사의 에세이가 좋다. 나는 천부적으로 에세이 읽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인데 지금껏 접한 달 출판사의 에세이들은 모두 웃고 감동하며 편하게 읽었다. •••아무래도 나는 시인들의 산문을 좋아하나 보다. 유희경 시인의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도 인상적이었는데, 박준 시인의 『계절 산문』과 이병률 시인의 『혼자가 혼자에게』도 꼭 읽어 보아야겠다.

디자인 면에서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타이포나 삽입된 디자인 아트가 모던하고 독창적인 느낌인데다 배경에 쓰인 깔끔한 분홍색이 참 귀엽다. 내지에도 디자인 요소가 과하지 않게 배치되어 있어 좋았다. 소제목이 적힌 부분에 기하학적인 디자인 요소들이 다양하게 삽입되었는데, 《모두를 찢어 붙인 모자이크》에 모자이크 기법의 무언가를 본뜬 듯한 도형들이 들어가 있어서 각 챕터 내용을 반영해 디자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품 후반부 《흑》과 《백》의 소제목 디자인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 《망한 연애 조작단》 서평단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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