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을 많이 받아야만 제대로 클 수 있는 소나무는 저보다 훨씬 빨리 자라는 굴참나무에게 위협을 느꼈는지, 우듬지(나무줄기의 맨 꼭대기부분으로, 어느 방향으로 뻗어 나갈지를 결정한다)의 끝눈의 방향을 계곡 쪽으로 틀었다. - P19
돈을 적게 벌더라도 나무 곁에 머물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때 나는 자신이 내린 결정이 잘못된 선택임을 깨달았을 때과감히 뛰쳐나오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현재를 희생하는 건오직 인간뿐이다. 더 큰 문제는 선택 앞에서 지레 겁을 먹고 고민만하다가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다. 미래를 걱정하느라 오늘을 희생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한 번쯤청계산의 소나무를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소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았다. 방향을 바꾸어야 하면 미련 없이 바꾸었고, 그 결과 소나무는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덕분에 사람들 눈에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었지만 그럼 어떤가. 소나무가 왜 ㄷ자 모양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나면 그 지독하고도 무서운 결단력에 혀를 내두르게 될 뿐이다. 내일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오늘 이 순간의 선택에 최선을 다해 온 소나무. 천수천형+形. 천 가지 나무에 천 가지 모양이 있다는 뜻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가진 유일무이한 모양새는 매 순간을 생의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과다. 수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무의 선택은 늘 ‘오늘‘이었다. - P21
마음은 수술을 받기 전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척도는 내게 달렸고, 정말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 보는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최소한 나를 옥죄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옮겨 간 곳에서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 P27
복잡한 인간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이쪽 일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얼마 안 가 포기하는 사람들을 꽤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나는 걱정을 거둬들였다.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해요. 에너지가 다 떨어진 다음에 그만두면다음을 기약할 수가 없잖아요. 멈추는 데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일단 잘 멈추는 것부터 하겠단다. 여태까지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면 사고가 나지 않겠느냐며 웃는다. 몇 해 동안 틈이 날 때마다 산에 다니더니. 어느덧 그의 모습이 나무와 많이 닮아 있었다. - P37
하늘에 자리한 무수한 별들이땅에 내려와 꽃이 된 건 아닐까.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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