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등대 이야기 ㅣ 도깨비 그림책 5
루이사 리베라 지음, 박수현 옮김 / 도깨비달밤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등대 이야기』 (2020) / En Aquel Faro (그 등대에서)
루이사 리베라 지음 / 박수현 옮김 / 48쪽 / 212*265mm / 도깨비달밤 / 13,000원
깜깜한 밤, 바다 한 가운데서 등대를 떠올리면 희망이 솟아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의 짙은 외로움도 마주할 수 있다. 그것은 희생으로 탈피한다.
표지에는 멀리 등대를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 있다. 할머니와 소녀다. 어쩐지 이들은 등대의 상징인 희망과 희생처럼 보인다. 둘 다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이 그림책에는 글이 없다. 처음, 여자는 혼자서 등대를 지키고 있다. 어느 날 몇 마리의 새가 바구니 하나를 가지고 온다. 그 안에서 여자는 아기를 안아 올린다. 아이가 성장하자 등대 열쇠를 넘겨주고 떠나는 여자의 머리는 하얗고 주름은 셀 수 없다.
『어느 등대 이야기』는 등대지기의 세대교체를 말한다. 그런데 색다른 점은 이들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어디에도 등대지기가 여성이면 안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지만 다큐멘터리 혹은 다양한 서사에서 여자 등대지기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자연물에 성별을 부여하는 관념을 살펴보면 남자는 하늘을, 여자는 땅(대지)를 상징한다. 바다 역시 남자들이 지배한다. 북유럽의 바이킹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는 지금도 여자에게 선장 자리를 주지 않는다. 지역에서 문인화가로 활동하시는 분의 따님이 선장이라기에 놀랐는데 영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영국에서도 여성이 키를 잡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한다. 바다에서 찾을 수 있는 여성이라면 세이렌 정도다. 그나마도 여자 얼굴에 새의 모양을 했다는데 그는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홀려 죽음으로 몰아넣는 괴물이다. 하지만 책 속의 등대지기는 죽음이 아니라 삶의 빛을 드리운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작가는 여성이 주체인 서사를 의도했다고 한다. 등대지기가 여성이라는 것이 이렇게 할 말이 많게 될 줄이야. 그것도 21세기나 됐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하기사 이제는 무인 등대가 더 많게 되었으니 굳이 젠더 문제를 거론할 일이 없을 수도 있겠다.
작가는 칠레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루이사 리베라. 그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오라시오 키로가, 루벤 다리오 등 중남미 출신 문학가들의 작품에 삽화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의 활동 반경을 보면 자신의 뿌리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다. 『어느 등대 이야기』에 주를 이루는 붉은 색이 칠레라는 국가를 상징하는 색이라는 점, 그림책 속의 등대가 칠레의 외딴섬(지구 최남단)에 실존하는 점 등에서 확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책을 덮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동요. 어릴 적, 노래를 부를 때 참 서글프고 쓸쓸하게 느껴졌는데 책을 읽고 난 느낌과 흡사하다. 『어느 등대 이야기』 책 면지에 이 노래 악보와 가사를 책 면지에 붙여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