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것만 생각해
카림 르수니 드미뉴 지음, 김혜영 옮김, 조승연 그림, 곽이경 해제 / 검둥소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권정생 선생님께서 생전에 “어떤 책을 좋은 책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읽고 나서 무거워지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하셨단다. 좋은 책을 읽으면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거나, 의무감 같은 것이 생겨서 무거워지나 보다. 그런데 소설은 어떨까? 소설은 재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소설을 읽고 무거워지는 것은 좋지만, 소설이 무거워 흥미가 사라지면 좋은 소설이라 하기 어려울 게다.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으며, 읽고 나서 생각이 많아진다면 정말 좋은 소설 아닐까. 오늘 그런 소설을 읽었다. 72쪽짜리 짧은 청소년 소설 <난 그것만 생각해>이다. 

  “난 내게 몸이 있다는 걸 몰랐다”라고 시작하는 이 소설은 한편의 동화 같기도 하고, 시적 영상을 느끼게도 한다. 간결한 문장, 톡톡 튀는 대화, 그리고 돌발적인 상황과 반전이 이어지는 빠른 전개가 소설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주인공 이스마엘은 사춘기다. 성에 눈을 뜨게 된 청소년은 자신에게도 몸이 있다는 것을 안다. 

  성, 낸 눈에는 이 단어만 보였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 아니, 내가 이해한다고 믿는 단어. 왜냐하면 바로 이 순간, 처음으로 그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나는 문에 기대 앉아 내 털들을 바라보았다. 그 후로 난 그것만 생각했다.

  나도 그것만 생각했었다. 내 몸의 털을 바라보거나, 이스마엘처럼 백과사전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성’적 관심의 영역을 넓혀갔다. 어린 시절 혼자 가슴 콩닥이던 소년에게 ‘성’의 세계는 경계 밖으로 넘어가 금단의 땅에 발을 딛는 모험이었다. 소년에게 우주가 열린 것이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해 왔다.
  사춘기는 …… 성이다. 

  그렇다. 사춘기는 성이다. 성적 관심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그때가 지금이나 ‘성’은 위험하다. ‘성’은 몰래 훔쳐봐야 하는 것이고, 성적 표현은 불온하기 그지없다. 어떻게 이런 관념을 깊이 심어놨을까?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성적 표현을 하면서 살아갈 아이가 성을 깨닫고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불안과 혐오로 시작하게 하는 이 불순한 사회에서 ‘성’을 직접적으로 다룬 소설 또한 얼마나 위험하게 볼까.
  괴물 같은 중학교 2학년 되어 털이 나기 시작한 이스마엘은 친구 아맹의 놀림감이 된다. “야 너 호모야?” 친구의 짓궂은 장난에 반격은커녕 도망을 가, 다른 친구들까지 놀려대기 시작한다. 일을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이스마엘은 호모라고 따돌림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 학교에는 곤경에 빠진 사람이 더 있었다. 앙글레 선생님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사촌이고, 엄마의 절친인 선생님은 이스마엘이 소문을 퍼뜨려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그녀는 레즈비언이었다. 

  “레즈비언이라고!”
  “그게 어때서요? 여자를 좋아하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며 엄마는 눈썹을 찌푸렸다. 보통 엄마가 눈썹을 찌푸리는 것은 아주 불길한 징조다.
 
  “물론 나는 정상이지. 나는 결혼도 했고, 직장도 다니고, 아이도 있고, 이만하면 정상이고말고!”
  “당신, 정말…… 웃기는 거 알아요?
  엄마의 눈썹은 더 이상 찌푸렸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엄마 이마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같았다.
  “우리가 결혼할 때 내 부모님이 하셨던 말씀을 기억해 봐요. 아랍인과 결혼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거든요.”
  “그건…… 그게 이 일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
  “‘정상’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이곳에서 정상인 것은 다른 곳에서는 아닐 수 있고, 당신에게 정상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비정상일 수도 있다고요. 모로코에 있는 당신 가족을 봐요. 우리가 자연주의를 지지하는 걸 비정상이라고 하잖아요.”
  “그건 다른 이야기지. 자연주의자는 변태가 아니잖아!”
  “뭐라고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모하메드?”

  호모로 놀림을 당한 아이와 레즈비언 선생님. 그런데 레즈비언이 정상이라고!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지, 이 소설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 원숭이와 사촌간이라는 것도 비정상이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말도 살려둘 수 없는 범죄였다.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게 비정상이지,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을 수는 없다. 이스마엘 엄마의 말대로라면 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레즈비언을 이해하던 엄마도 이스마엘이 성 정체성을 고민하자 차갑게 굳어버린다. 
  “만약 제가 호모라면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스마엘의 질문에 포크를 떨어뜨리고, 엄마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는 한참 후에 깨닫는다. 스스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동성을 좋아하는 유전인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야 아는 것일 텐데,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전에 선을 그어 놓는 일은 옳지 않다. 그런데 내가 이스마엘의 아빠라면 어땠을까. 썩 훌륭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누구는 뼛속까지 ‘친일’, ‘친미’라고 자랑하는데, 왜 우리의 뼛속까지 이성애자만 정상이라는 편견을 심어 놓았나.
  많은 아이들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지나치고, 또 바뀌고 하면서 성장해 간다. 모든 가능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아파하면서 한 인간으로 서면 안되는 걸까? “나는 왜 이성애자인가?” 난생 처음 질문을 해본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자연스러운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동성애자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경로를 밟지 않았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남은 인생 동안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인생이 깜짝 놀랄 일들로 가득 차는 것이다. 

  선생님의 기지로 따돌림에서 벗어난 이스마엘은 목울대에 혹이 생겨나는 사춘기 지난다. 소년은 강해졌다고 느낀다. “이제 난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마침표를 찍는 소설처럼, 훌쩍 커 버린 이스마엘처럼, 우리 아이들의 인생에도 깜짝 놀랄 일로 가득 차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기원한다. 아름다운 소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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