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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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출판사 홍보문구에 속았다.  홍보문구보다는 그래도 이것 저것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는 문구에 그래도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파친코를 읽을 때도 그랬다. 미국에 살던 친구가 미국에서 아주 인기라며 괜찮았다고 추천해 줘서 읽었는데, 어딘가 모르게 겉도는 거 같은 느낌에 그저 그런 소설로 기억되었는데, 드라마로 제작이 되고 보니, 이건 거의 책내용을 업그레이드한 수준의 드라마라 난 주위 사람들에게 책보다는 드라마를 추천했다., 


그래도 우리 나라의 역사를 소재로 자꾸 이런 작품들이 나오는 게 반가워서 선택을 했지만, 역사를 좋아하는 본토한국인이 읽기에는 매우 어설픈 소설이었다. 


공녀라는 주제선택은 신선했으나, 15세기 쯤 조선 초기 배경에 19세기 말 쯤 사람들을, 그것도 노란머리 외국인에게 검정가발을 씌워 찍은 영화 같은 느낌이랄까?

식상해도 차라리 일제 강점기 때라면 이해가 될 텐데.....


우선 등장인물 들의 이름 문제. 영자 순자 처럼 ~자가 들어간 이름은 최소한 내가 알기로는 일제강점기 영향으로 생겨난 이름들이다. 차라리 영이 순이 덕이 이런 식이라면 덜 위화감이 들 텐데... '자'로 끝나는 이름들이나, 양반이 아닌 일반 백성인데 서현이라는 너무 현대적이거나 고급스러운 이름들은 자꾸 눈에 거슬려 몰입을 방해했다. 

또, 양반... 아니면 못해도 중인의 신분인데 자매의 이름이 다르다는 것도 이상했다. 물론 여자는 집안의 항렬을 사용안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주인공 이름은 환이인데, 동생도 비슷한 돌림자를 쓰지 않았을까? 아니 백번 양보해서 신내림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무당으로 사는 설정이라 이름을 바꿨다고.. 해도.. 매월은 거의 기생 이름으로 많이 들어봐서 영 어설픈 느낌이었다. 


그리고 왜 하필 제주도를 배경으로 했을까?????? 작가는 인천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생을 캐나다에서 보냈다는데... 

15세기 무렵의 제주도는 그야말로 오지 중의 오지였다.. 왜 중죄인의 유배지로 쓰였겠는가?

(사실 제주도 유배는 거의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처럼 아니 최소한 일제강점기는 되어야 오가는데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 된다. 그런데, 무슨 요즘의 페리선 타고 들어오듯이 양반집 마님이 조카딸 잡겠다고 제주도로 쉽게 올까??


조선 초의 공녀제도는 생각보다는 많은 인원이 아니라서 오가기도 어려운데 굳이 제주도에서까지 처녀들을 데려오지 않았을 거 같다. 그냥 충청도나 경기도 어드매쯤이면 차라리 현실적인데...설혹 제주도에서도 데려갔다해도 13명은 너무 많지 않은가.. 그래서 일제 시대 배경을 추천하는 게, 일제 시대에는 제주도에서도 강제동원이나 위안부를 많이 데려갔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소녀가 말을 타고 이동하는, 그것도 치마 저고리 차림으로 말을 탄다는 설정도 너무 웃겼다. 말은 지금으로 치면 전쟁용 물자라서 제주도에 말 목장을 두고 나라에서 관리한 것으로 안다. 아무리 말이 많은 제주도라지만, 양반도 아닌 서민 그것도 무당의 집에 말을 한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씩이나 있다는 설정은 당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촌장의 딸의 외모가 출중해서 세자빈 간택 후보가 되었다는 설정도 우리 나라 역사를 너무 어설프게 아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전 나라에 금혼령이 내렸다지만, 세자빈 후보를 제주도에서 낸다???? 느낌 상 문 촌장의 집안이 무슨 대단한 위세가 있는 것도 아닌 지방 향반 같은데...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헛웃음이 났다. 세자빈 후보 쯤 되려면 최소한 한양 근처의 내로라 하는 현직 고위 관리나 명문가의 여식이어야 할 텐데... 아무리 양반이라도 그 당시에는 목숨 걸고 가야 하는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세자빈 후보를 올리지는 않았을 거 같다. 


또한 종사관이라는 품계는 무과 급제자가 처음 받는 관직이라 젊은 사람이 하기에 적당했다고 하는데 (이건 인터넷 검색만 해도 알 수 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말단직이라는 말이 된다. 주인공 아버지 쯤 된다면 그당시로는 30대 말 40대 초반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종사관보다는 높지않을까?(드라마탓이다!) 그리고 말단직인데  단독으로 수사하는 나라에서 내노라하는 수사관이라면 한참이나 어설픈 설정이다. 


마지막으로 어사가 주인공 환이에게 똑똑한 여인이니 궁궐로 들어오게 해줄 수 있다는데.. 궁궐로 들어간다는 게 무슨 관리가 되는 것도 아니고 결국 궁녀로 들어간다는 건데.... 이것 또한 이해불가다. 고모가 양반집으로 시집을 갈 정도고 더군다나 조선 초대 왕비를 낸 민씨 집안인데 궁녀로 들어간다?? 그리고 궁녀로 들어간들,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궁녀는 중인 출신이 많았다 한다. 애초에 궁녀로 들어갔는데 똑똑해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설정이라면 모를까... 똑똑한 여인이라고 궁궐에 들어간대도 할 일은 다른 궁녀랑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 같다. 


나도 역사 전문가는 아니지만 역사를 좋아해서 꽤 많은 책과 관련 역사 드라마, 역사 강연 프로그램등을 챙겨보는 사람이라 이런 몇가지들이 자꾸 거슬려 끝까지 읽어내는데도 힘이 들었다. 


역사소설의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 자칫, 우리 역사를 널리 알리려다 조금은 잘못된 사실을 전파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요즘의 트렌드에 맞춰, 또는 애국심의 발로로 자신의 모국의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면 조금이나마 더 한국스러움과 역사적 사실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많이 아는 내용으로 작품을 써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소설이다. 다음 소설은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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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23 2023-01-31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북으로 저도 읽고 틴에이저 딸에게도 권할까 고민하던 중에 이 리뷰를 보았습니다. 요란만했던 파칭코의 허접함에 많이 실망 했던 터라 이 책도 어떨지 짐작이 가네요.
저도 20대에 유학와 미국에 와서 사는 교포가 되었고, 한국 문화가 문학 분야까지도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지길 바랍니다. 왜 교포 작가분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 과거 역사를 배경으로 자꾸 쓰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뼛속까지 고통스러웠던 한국역사를 풍요로운 외국에서 자라서 이해를 잘 못하시는거 같아요.
그래도 한인 작가들이 자꾸 나오시다 보면 언젠간 찐작품도 나오겠지요.

루디아 2023-11-05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였군요~어색하다고 느끼신 부분들이 제가 생각한 부분들과 어느 정도 일치합니다 마치 노란 머리 외국인에게 한복입힌 것 같다는 감상까지...이름도 섬 아이들 치고 너무 세련된 것 등등...배경을 제주도로 설정한 것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문이 들었습니다만, 고립된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야 더 긴박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것 같다 정도로 이해했네요~그래도 후속작인 ‘붉은 궁‘은 고증면에서 특별히 거슬리는 부분은 찾아보기 힘들더라고요~작가님도 점점 더 나아지시겠죠~

dnscully 2023-11-06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궁은 보자마자 걸렀는데.. 한번 님 믿고 읽어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