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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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울림, 그 보드라운 설렘에 대하여..

 

‘두근두근?’ 그 단어를 쳐다보며 가만 생각했다. 이런 느낌을 받은 지 한참 된 거 같은데.. 이 책의 주인공은 인생에 어떤 점이 그리도 두근거렸을까? 그런 마음으로 책을 펼치고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이 책은 단숨에 날 사로잡았다. 원래 기억에서 금방 날아가 버리는 단편을 선호하지 않아 김애란 작가의 책을 따로 읽지는 않았었는데 장편인데다 사람들이 침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소리에 이 작가와의 첫 대면을 했는데 김연수나 로맹가리를 알게 됐을 때처럼 너무 뿌듯한 느낌이 든다.

 

‘부모는 왜 아무리 어려도 부모의 얼굴을 가질까?’-p77

 

부모는 부모라서 어른이지. 어른이라 부모가 되는 건 아닌 모양이라고. 그러고는 사진 속 두 사람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눈도 어리고, 목도 어리고, 머리카락도 어린 내 부모. 그들은 어딘가 불량해 보이고 가슴이 시리도록 젊었다. 나는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를 향해 손을 뻗듯 손가락을 들어 그들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p78

 

자식은 왜 아무리 늙어도 자식의 얼굴을 가질까?’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p79

 

 

소재 자체는 좀 슬프다. 조로증에 걸린 가장 늙은 자신과 17살 그 꽃다운 나이에 부모가 된 가장 어린 부모의 만남. 투박하지만 순수함과 솔직함이 매력적인 미라와 대수! 아직 자신들의 진로결정도 하지 못하는데 덜컥 임신이 됐고 그들은 학교도 포기하고 미라의 부모님 밑에서 살며 튼튼한 아름이란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생뚱맞은 유머다. 아름답게 묘사되는 문체와 더불어 시도 때도 없이 유머가 공격해 오는데 오랜만에 정말 시원하게 웃고 펑펑 울었다.

 

 

그 뒤로도 어머니는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긍정과 부정 사이를 오가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축축하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 내 몸은 자꾸 자라났다. 주위에선 쉴 새 없이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귀가 아닌 온몸으로 들었다. 그러고 지하 벙커에서 모스부호 해독에 열중하는 병사처럼 내 주위를 감싸는 그 ‘떨림’의 실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 암호는 다음과 같았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p31

 

 

'두근두근‘은 엄마의 심장소리를 아이가 온몸으로 느낀 단어다. 마냥 평범했던 아이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늙는 병에 걸리고 그 아이의 나이는 17세! 바로 부모님들이 자신을 가졌던 그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동네 할아버지와 친구를 하며 말이 통하고 또래와의 접촉은 기대하기 어렵다. 남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늘 타인의 시선을 받아야 했고 아직 성숙하지 않은데 노인의 뼈와 피부를 갖고 있어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 거기에 동네 할아버지의 불쑥 튀어나온 한마디가 어찌나 웃기던지. 섬세하면서 유쾌하고 따듯한 소설이다.

 

 

아버지는 인생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어른이란 단어에서 어쩐지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건 알았다. 그건 단순히 피로나 권력, 또는 타락의 냄새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막연히 그럴 거라 예상했는데, 막상 그 입구에 서고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어른이란 말 속에서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 그것은 다른 아닌 외로움의 냄새였다.-p67

 

 

아름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책을 가까이 한다. 책으로 다져진 내공은 마치 작가의 내공으로 비춰진다.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동네 할아버지에서는 평범함과 편안함을 선사하고 아름이의 생각과 말에는 아름다움과 해박함이 있다. 한 마디로 울리고 웃기고 쥐었다 폈다 편했다가 금세 멋진 말들을 마구 뱉어내어 불쑥 놀라게 한다.

 

 

 

슬픈데 아름이의 다름과 고독 그리고 뜻하지 않은 성숙함에 가슴이 시리지만 한없이 가라앉는 절망감이 아니라 그 안에서 느껴지는 순수함과 귀여움 그리고 가족의 사랑..순박하기만 한 희망이 느껴지는 책이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서 봇물이 터지듯 울음이 나왔는데 이상하게 펑펑 울고 나니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 아름다운 이별이 안타까워 손을 놓고 싶진 않아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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