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빙하기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오기와라 히로시는 [유괴 랩소디]라는 책을 통해서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참 재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웃음이 몸에 베어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쉽게 몰입할 수 있고 거기에 빵빵 터지는 웃음이 있어서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신작 소식을 들으니 궁금해졌다. 감동의 청춘 소설이란 단어가 그와 매치되지는 않았지만 읽으면서 감동에 늘 빠지지 않는 그만의 마스코트인 유머 역시 등장한다.

 

주인공 와타루는 아버지가 없고 남들보다 성장이 빠르며 머리색, 눈 색깔도 약간 다르다.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늘 뛰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곳에서는 모르겠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시골에서 살고 거기에 남들과 다른 외모라면 필요 이상의 소문과 관심을 달고 다니게 된다. 거기에 연구소 일에 늘 바쁜 엄마를 두어 친구도 없고 집에서도 늘 혼자다. 성장기 과정을 다루다 보니 몸의 변화를 자세히 묘사한 부분이 많은데 너무 재밌다. 웃음이 팡 터진다. 정말이지 오기와라 히로시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이 녀석에게 짠한 마음이 들다가도 이렇게 웃게 만드니 대책이 없다.

 

그렇게 정리하고 보니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왜 내가 지붕이 있는 장소를 견디지 못해 고함을 지르고,

들과 산을 마구 내달리면 마음이 가라앉는지.
숲에서 동물을 잡으면 왜 가슴이 두근거리고 행복한 기분에 젖어 드는지. 왜 가재나 개구리까지 먹어 치우는지.
어린 시절에 코끼리를 노란색으로 칠한 것도 설명이 가능했다. 나는 현대의 코끼리에 색깔을 입힌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빙하기 시절 태양 빛을 받아 온몸의 털을 번쩍이던 매머드였다. 이상 검증 끝.
시베리아의 빙하가 녹듯 사실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나는 크로마뇽인의 자식이다.-p51


 

특별하다는 단어를 와타루에게 붙이면 딱 좋을 것 같다. 외모가 남들과 다르고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안 후 고민하고 알아본 결과가 (어머니가 러시아 연구소에도 있었기 때문에) 크로마뇽인의 자식일 것이라는 것이다. 나름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결론을 내렸다. 그 후로 산에 혼자 가서 돌을 깎아 무기를 만들고 낚시를 하고 어머니가 오기 전 그는 자신만의 세계를 즐기며 살았다.

 

그러던 중 사치라는 여자아이를 만나고 둘은 친구가 된다. 씩씩한 모습이 와타루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늘 혼자라고 생각하고 살아 왔는데 그에게도 진짜 친구 둘이 생기고 자신의 크로마뇽인의 습성을 살린 달리기를 하며 점점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가게 된다. 그러다 숨이 떡 막히는 두근거림을 느끼는 창던지기 보고 그것을 하게 된다.

 

아버지가 있지만 늘 폭력에 시달려 없었으면 하는 사치와 애초에 얼굴도 보지 못한 와타루, 불량스럽기 짝이 없지만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친구, 우리가 성장하면서 고민했던 부분들도 많이 담겨져 있었다. 나는 누구인지, 친구들과의 관계 형성, 하고 싶은 것을 정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 , 그리고 나타나는 몸의 변화, 이성문제 등 그 시절 누구나 했을 법한 일들을 읽고 있으면 ‘아, 그랬었지!’ 하면 살짝 미소를 띠게 된다.

 

아무리 어리지만 자신이 크로마뇽이라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흥미로웠다. 잘못 했으면 엄청 어이없게 되어버릴 소설이 작가의 솜씨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물론 사실은 아니고 본인도 커서 아버지가 러시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이야기가 술술 넘어가고 공감하고 빠져들게 된다.


좋은 성장 소설이 많지만 이 책은 읽고 난 후 슬픈 느낌이 남아있지는 않는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느낌이 마음에 든다. 물론 어머니와의 이별이 담겨져 있고 아버지와의 재회가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다 읽고 나면 희망과 포근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훈훈하면서 참 재밌는 소설이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적정선을 지키며 작가는 현란하게 글 솜씨를 발휘했다.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워 아끼던 성장소설에 하나 추가시키고 싶다.

 

botongsaram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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