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이매진 - 영화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미리 말해두지만, 여기 모은 글은 ‘비평’이 아니다. 더러 작품성에 대한 평도 없지는 않으나, 그것은 이 책의 문제의식과는 별 관계없다. 영화의 선별 역시 작품의 예술적 수준이 아니라 이론적 흥미라는 기준에 따랐다. 그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있다면, 아마 ‘우연’일 게다.-6

 

처음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에서 진중권을 처음 봤다. 어찌나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던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말을 잘하는 것만큼이나 인터넷 상에서 글을 읽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고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책을 몇 권을 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루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영화에 관한 이야기라면 다른 책들보다 작가와 좀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어 제일 먼저 읽게 되었다.

 

일단 영화에 대해서 뭐 다른 잡지나 책을 많이 챙겨보지는 않는 편이다. 일요일에 하는 영화를 소개해 주는 채널 정도만 보고 있다. 영화보기를 즐겨하는 것 같으면서도 책에 대한 열정보다는 덜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영화를 본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진중권이라면 아무래도 귀가 솔깃하는 편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아는 것이 많아서 그런지 어려운 단어들이 낯설기도 했다. 그러면서 영화를 다시 본다면 꼭 이 책을 다시 펼쳐들 것만 같았다.

 

처음 시작하면서 영화비평이 아니라 영화 담론이라는 말도 참 재치 있게 느껴졌다. 비평이었다면 너무나 흔한 말이었을 텐데 그것을 담론의 놀이로 표현해 내다니. 물론 너무 나와는 상관없는 듯 옛날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글과 같이 호흡하기가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그가 느꼈던 것 생각했던 부분들에 대한 공감이 전혀 생기지 않아 그런 부분들은 낯선 책 읽기였다.

 

영화마저도 예술적으로 표현해냈다. 정말이지 다방면으로 관심이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렇게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것인지 신기하기만 하다. 어렵게만 이야기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무조건 똑똑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진중권씨는 그 어려움을 대중적으로 풀어보려 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눈높이에 맞는 독자가 있는 반면 그 내용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독자도 있는 것이다.

 

[슈렉]을 단순히 웃고만 봤는데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생생함도 현실만큼 뜨거울 수 없고 뜨거운 것을 차가운 디지털 매체를 통해 표현했다는 것이 모순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던진다. [매트릭스][스파이더맨][터미네이터]등 너무나도 친근한 영화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같이 공감하는 부분도 생기고 전혀 다른 곳에서 바라 본 시각차이도 느끼게 된다. 외국영화와 비슷한 한국영화와의 비교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어떤 부분이 다른지 그리고 그때의 그 장면을 떠올리며 상상하는 것이 가장 재밌는 시간이었다.

 

베냐민의 말대로 영화는 시각적 지각을 촉각적 지각으로 바꾸어놓는다. 가령 숏들이 서로 충돌하며 빠르게 교체되는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는 시각적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촉각적 충격의 주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그토록 인상적인 것은, 그것이 영화 매체의 고유성을 제대로 드러냈기 때문이 아닐까? 예를 들어 <지상 최대의 작전>이 전투의 장면을 ‘눈’ 앞에 보여준다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그것의 충격을 관객의 ‘몸’속에 새긴다. 전자가 시각적이라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촉각적이다.-125


어렵게 느껴지면서도 이 책을 다시 읽고 싶고 또 반 이상은 흥미롭게 읽었던 것은 바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근하고 유명한 영화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대작을 그저 한 시각으로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표현해 낸 것이 아마도 이런 영화를 다시 볼 때 처음에는 알아채지 못한 여러 가지 느낌을 좀 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여러 가지를 눈치 채고 스토리를 풍성하게 알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영화의 마지막이 끝나면 그저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 사람도 있다. 전에는 잘 잊었다면 이제는 그 감흥을 조금이나마 길게 갖고 있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2009.02.botongs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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