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하지만 짧은 순간 엄청나게 넘쳐난 돈과 모더니즘의 유혹이 만들어낸 이 시대는 저항할 수 없이 아름다웠고, 피츠제럴드는 돈을 위해서 돈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그 치명적인 돈의 아름다움을 그 누구보다 훌륭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탐욕과 환멸, 타락을 시인하면서도 이 전무후무한 과잉의 시대에만 가능했던 사치의 일장춘몽, 젊음과 쾌락에 덧씌워진 우아하고 세련된 스타일, 그 자기 파괴적인 매혹에서, 중산층의 무료한 일상을 뛰어넘는 어떤 판타지, 일종의 미학적 시적 황홀경을 읽어낸 것이다.-403


어떤 말로 시작해야 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단지 영화가 나온다기에 영화와 원작을 동시에 비교하면서 보는 것을 좋아해서 선택한 책이었다. 저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 유명한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였다. 4개의 출판사에서 거의 동시에 나왔던 책 중에 출판사의 인지도가 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학 동네의 책을 고랐다.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단순히 재밌겠다. 기대된다. 정도였지만 작가를 보고 기대치가 더 올라간 것도 사실이다.

 

그럼 왜 어떤 말을 해야 될지 난감한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단편이 이렇게 많이 수록되어있는 줄 예상하지 못했다. 제목처럼 영화처럼 그저 한 가지 내용에 대한 소설이라고 당연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와는 너무나 다른 원작이었다. 단지 시간을 거꾸로 살아가는 노인이 있다는 것뿐 그것 말고는 비슷한 느낌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훨씬 더 많은 감동을 받아서 그런지 이 책에 단편으로 실려 있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실망스러웠다.

 

몇 가지 단편들 중에 어이없기도 하고 심지어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것도 있었다. 반대로 짧은 글속에 많은 공감을 자아내고 따로 적어 놓고 싶을 정도로 맘에 드는 글귀들도 있었다. 한 책에서 이렇게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했던 적은 처음인 것 같았다. 무지 복잡하고 어려운 책 한권을 읽어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그런 느낌일 경우 주로 아예 그 책은 나하고 맞지 않으니 포기한 반면 이 책은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충동은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 이후 처음이었다. 그것은 책이 별로다 라기 보다는 내가 뭔가 이 책을 이해하는데 아직은 조금 부족함을 느끼는 그런 기분이었다.

 

책 소개와 여러 가지 작가의 이야기 번역자의 이야기들을 읽고 보니 조금 내가 느꼈던 감정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책을 읽다보면 조금은 억지스럽기도 하고 뭔가 방방 떠다니는 느낌. 뭔지 모를 가득차서 넘치는 느낌을 받았다. 화려함과 부유함을 강조하기도 했고 그 반대의 모습도 거침없이 표현했다. 솔직히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기분도 들었다. ‘이게 뭐야’ 할 정도로 유치함이 있는 반면 저 깊은 곳의 기분을 끄집어내는 듯 그런 진지함이 동시에 있어 도대체 이 사람의 스타일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1920년대 미국의 재즈시대를 표현했다는 문장을 읽고서는 조금이나마 이런 어수선함에 공감을 했었다.

 

이런 혼란스러움을 느끼면서도 참으로 묘한 것이 그의 작품을 더 읽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른 출판사 책도 비교해가면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영화의 감동을 받고 싶었고 영화를 보면서 그를 천재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그 느낌을 찾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책꽂이에 그동안 미뤄왔던 [위대한 개츠비]를 읽게 할 것이다. 그리고 한 작가를 알고 이해하는 하나의 과정을 경험할 생각을 하는 것은 기분 좋은 상상이었다.

 

서른다섯에서 예순다섯까지 세월은, 수동적인 사람의 앞에서 불가해하고 혼란스러운 회전목마처럼 빙빙 돌아간다. 그렇다. 그것은 처음에는 파스텔 색조로 칠해졌다가, 나중에는 흐리멍덩한 회색과 갈색 칠을 덧입으며, 흉측해지고 풍상에 닳아빠진다. 그것은 유년기나 청소년기에 타던 회전목마와는 전혀 다르게, 혼란스럽고 참을 수 없이 어지럽다. 노선이 정해져 있으며, 신나는 젊은 시절의 롤러코스터와는 딴판이다. 대부분의 남녀에게 이삼십 년의 세월은 삶으로부터의 점진적인 후퇴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319

 

2009.02.botongsara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