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삶의 여정이란. 밤낮으로 흔들리며 멈추지도 못하고, 의미도 모른 채 그저 이렇게 매달린 채 가야 하는, 절대 놓쳐 버릴 수 없는 여행길이었다.-177

 

칙릿 소설은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읽게 된다. 그것이 마치 꿈처럼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확률이 없는 일이라서 그런지 나는 더욱더 칙릿 이라는 장르를 읽으면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현실적이라고 외치는 소설은 어떤 느낌일까? 여자들의 이야기, 그것도 현실적인 아줌마들의 이야기는 마치 친구들과의 수다 떠는 것 같은 나 혼자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닌 친구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이제 진짜 아줌마가 되면서 현실과 이상의 경계선을 지키며 서있다. 이쪽과 저쪽의 선이 있다면 그것을 넘어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 같았다. 아직 겪어야 될 이야기 중에 하나인데 나는 [알링턴 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에 많은 공감을 하는 것일까? 이 여자들이 느끼는 모든 것들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것은 내가 경험한 것도 있겠지만 결혼한 여자들의 삶이 다른 듯 닮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친구들, 먼저 결혼한 언니들의 모습이 겹치기도 했었다. 한국이건 미국이건 다른 나라건. 어쩜 여자의 삶이라는 것이 그 울타리 안에서 느끼는 감정들, 자신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허탈함이 아줌마로써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마치 평온해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것이 삶 일 것이고 그것이 가정을 꾸려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속마음일 것인데 너무나 많은 공감을 하고 나서도 뭔가 가슴 한곳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열에 한 명 정도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한 감정을 언제나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 한 명은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마음의 한쪽 부분이 꿈틀거리기도 했고 ‘그래, 나도 알고 있고 공감하듯이 이게 현실이야.’ 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일에 대한 체념이었다. 너무나 솔직하고 사실적이라 감추고 싶은 단점을 발각당한 사람처럼 통쾌하면서도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얻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너무나 평범해진 자신의 모습에 어느 날 갑자기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그것은 자신이 보았던 어머니의 삶이었고 자신의 삶 역시 점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나를 얻었지만 그 속에 하나를 잃게 되는 묘한 경험이었다.

 

그녀들은 그대로 계속 삶이 이어질까봐 불안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이제는 다시 되돌아가기에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 예전에 자신은 무언가 크게 될 줄 알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저 그런 주부가 되어버린 현실에서 느껴지는 서글픔.

 

아줌마들끼리 쇼핑을 하고 자신의 아이를 돌보며 자신의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녀들은 만족을 모른다. 그것은 자신이 예전의 모습에 대한 추억, 무엇인가 잃어버린 듯 공허함과 허탈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좋은 집을 가졌고 남편과 아이들이 있지만 그녀들의 삶의 한 부분에서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원망과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뿐이고 자기 자신은 없어지는 아마도 아이들이 독립하고 모두 없을 때 오는 인생의 공허함과 같은 것일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족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새로 무엇을 시작할 용기도 그렇게 할 힘도 남아있지 않아 보인다.


주부들이 흔히 느낄 수 있는,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법한 감정들이 많았다. 아직 주부가 되지 않은 나도 많은 공감을 했고 주부들에게 당신 한 사람만 그런 감정들을 느끼며 혼란 속에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너무 괜찮았던 이 책은 나에게 나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말자라는 교훈을 주기도 했다. 단점이라면 너무 비관적인 부분들, 현실적인 부분들을 담았으니 그저 공감에서 끝내자는 것이다. 이런 감정들에 너무 많이 휩싸여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면 오히려 더 불행한 결과가 생길지도 모르니 말이다.

 

작가의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이 두드러졌다. 철저하게 여자의 입장에서 여자의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공허함에 많은 여자들이 공감을 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남자의 입장이었다면 그것 또한 여자들이 느끼는 것만큼 커다란 인생의 공허함을 느끼는 시기가 되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칙릿 보다는 훨씬 시원한 아줌마들을 위한 아니 여자들을 위한 소설이었다.

 

그런 물건들에 비하면 자신이 입고 있는 해진 청바지나 염주 같은 목걸이는 뭐란 말인가? 그건 지워져 버린 흔적, 비참할 지경으로 초라해진 자신의 여성성이었다. 솔리는 자신에겐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마호가니 서랍장 위에 놓인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났다. 온갖 스트레스로 부스럼과 주름과 여기저기 붉은 점들이 가득한 얼굴에, 갈색 머리는 무슨 짐승의 털처럼 보였다. 이게 현실일까? 아니면 그녀가 잘못 알고 있는 걸까? 그런 것도 공평하고 옳은 것이라고, 그렇게 설명해 주는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170

 

그래서 시간이 가는 것이 더욱 힘들기도 했다. 시간은, 강물로 유입되는 하수관처럼 그들의 삶에 끼어들어 잡동사니와 거추장스러운 짐, 찌꺼기 등을 섞어 놓았다.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그 아름다웠던 시작을 깨뜨리지 않고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의 서류 가방을 만져봤다. 지금 이층의 아이들 방에서 맨발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있는 남편이 죽거나 어디 멀리 가 버린 것처럼 눈물이 고였다. 그게 사는 것일 텐데 그녀는 왜 그렇게 슬프고 우울해지는 걸까?-247

 

2008.12.botongs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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