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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나무 아래 - 시체가 묻혀 있다
가지이 모토지로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1년 4월
평점 :

이 책은 분홍색의 표지와 "벚꽃"이 들어가는 제목만 보면 흡사 로맨틱한 연애소설처럼 보인다. 하지만 "벚꽃나무 아래"라는 제목 옆에 붙여진 부제목 '시체가 묻혀있다'를 보게 되면 왠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진다. 나는 제목과 표지에서 이 책의 전체적인 주제인 평화롭고 행복해보이는 겉모습과, 그 이면에 서린 고통과 회환을 정말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했다.
가지이 모토지로라는 다소 생소한 작가의 단편집인 이 책은, 31세의 짧은 생을 살다 간 한 천재 작가의 작품이다. 어렸을 때 부터 병약했던 작가는 병원과 요양시설을 오가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집필활동에 전념하여 이처럼 아름다운 작품을 남겼다.
책에는 총 12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책의 본제목인 '벚꽃나무 아래'를 비롯하여 '태평스러운 환자', '어느 벼랑 위에서 느낀 감정', '레몬' 등 찬연하면서도 왠지 모를 스산함이 느껴지는 독특한 매력의 작품들이 들어있다.
주변에서 걱정하지만 본인은 정작 태평스러운 환자, 아름답게 피어난 벚꽃나무를 보고 그 밑에 시체가 있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엉뚱한 사람, 방 안에 갇혀있는 파리를 보며 마치 병약한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인물이 나오지만 그 인물을 종합해보면 결국에는 글을 쓰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힘든 몸의 고통 속에서도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가 조금만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았더라면 생전에 더욱 멋진 작품들을 많이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힘든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처연하고 빛나는 작품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까지 소설을 읽을 때 이야기의 서술에 중심을 두면서 읽었는데 이 책은 그 전과는 다르게 마치 시를 읽을 때 처럼 묘사와 표현력에 중점을 두고 읽었다. 그러다보니 작품 본연의 느낌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느낌이어서 책을 다 읽고 나서 더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정말 책 다운 책을 읽은 것 같다. 그의 다른 작품도 꼭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