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가 두꺼워질 수록 아쉬웠던 것이 1편 ˝누군가˝에 비해 잔 묘사가 큰 서사에 밀려 홀대되는 것 같다는 점이었는데, 단편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등장인물과 사건 사이의 긴밀한 세부 서술이 살아난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이름없는 독˝과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서는 속도감과 힘이 넘치는 위기-절정부가 끌어오는 대단원이 소설을 화려하게 장식식한 것에 비해, ˝희망장˝은 발단-전개-결말만으로 다소 심심하게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각 모듈이 탄탄하게 고정되어 있고 그 안에 등장인물의 동선이 촘촘하게 끼워져있어 스기무라의 소박한 새출발에 걸맞는 단촐한 안정감을 준다.또한 최근의 다른 단편집 ˝불문율˝처럼 인물과 사건을 둘러싼 주변 군상 묘사에 너무 치중하지 않아 주인공치고는 존재감이 희미한 스기무라를 챙기는 것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미야베미유키의 에도 단편선(특히 맏물이야기 시리즈)을 현대물보다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정도 호흡이 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