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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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과 관련된 추억 모음집이다. 대부분의 소챕터가 분량이 3~4장 정도라 짤막짤막하게 하고싶은 이야기를 건드리고 지나간다.
진하게 느껴지는 동종의 실루엣에 별 거 아니네 싶은 얘기가 반, 와 이 사람 진짜 덕후같아 싶은 게 반의 반, 이건 나인가 싶은 주제가 나머지 반의 반이었다. ‘별 거 아닌’ 이야기들은 주로 앞에 몰려있었고, 책의 큰 줄기가 작가의 성장 과정에 따라 시간 순으로 배치되어있기 때문에 아마 부장님 어릴 때 얘기를 듣고 앉아있는 기분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중반 이후로는 그 비중이 현저히 줄어드니 앞부분 읽다 이탈하고싶어진다면 차라리 3장부터 읽고 거꾸로 돌아오기를 권하고싶다.
아재 냄새에도 불구하고 내가 책에 대해 의식/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게 상당히 겹쳐서 꽤나 공감 가는 점이 많았다. 문체 취향부터 어린 시절 재미있는 장편을 발견했을 때의 두근거림, 지금은 스마트폰에 책의 등수를 내준 것에 대한 자기 죄책감 등.
그 중 가장 공감 갔던 내용은 3장의 첫 주제인 “나는 간접경험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다”다. 마음같아선 해당 챕터 전체를 밑줄 긋기하고싶지만 고르고 골라 최대한 압축해서 보관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역시 몇 장 되지도 않는 짧은 글에서 일부만 꺼내오려니 영 무미건조해져버렸다.)
작가는 자신이 성공한 덕후라고 했는데 정말로 부럽기 짝이 없다.

그때의 충격 때문인지 내게는 세상의 진짜 모습을 알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사당동 더하기 25』나 『힐빌리의 노래』처럼 빈곤이 가정과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책들, 『인구 쇼크』같이 지구 곳곳에서 인구 집단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그 배경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알려주는 책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같이 저성장시대에 절망한 젊은이들이 어떻게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는지 보여주는 책들을 읽는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 채 눈을 감고 걷고 싶지는 않다는 생존 본능

잠시라도 타인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게 해주는 책들은 나를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구원해준다.

정치, 젠더, 환경, 교육…… 거의 모든 이슈마다 양쪽 극단에서 가장 큰 소리들이 쏟아져나온다. 목소리가 크고 공격적인 이들이다. 중간에 있는 이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공격적이고, 유연하지 못하고, 비합리적이고, 시끄럽지?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한다. 지금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면, 그건 나의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때문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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