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발명된 신화 - 기독교 세계가 만들고, 시오니즘이 완성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
정의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유대인이란 말을 들으면 무슨 단어가 떠오르는가? 한국이라면 탈무드, 소수 민족임에도 세계를 주무르는 지혜로운 민족이라는 선망어린 이미지를 많이 떠올릴 것이다. (적어도 필자가 어릴 때는 그런 느낌이었다. 요즘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히 해둔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유대인들이 단순히 지혜롭고’ ‘근면하다는 것보다는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대표되는, 세계를 배후에서 주무르는 음모론적인 시각에도 상당히 힘입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본다면, 유대인에 대한 이미지는 실질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유대인을 그리 접할 일이 없는 (물론 이것도 요즘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한국과 달리 더 극단적인 것으로 치닫곤 한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의 이미지에서 20세기 유럽을 지배한 상반된 두 음모론인 유대 볼셰비즘과 월가 유대 자본에 이르기까지 반유대주의는 유서 깊고 광범위한 것이었으며, 비단 나치 독일 뿐만 아니라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났던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그리고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 이르기까지 이념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반유대 편견에 기인한 박해와 정치적 사건이 벌어졌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대인 하면 지금도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피해자라는 이미지 역시 강하다.

역으로 이스라엘 건국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동 분쟁 때문에 유대인하면은 ‘2천년만에 나타나 팔레스타인을 강점한가해자의 이미지 역시 강하다. 2차례의 인티파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분쟁, 레바논 전쟁, 그리고 네타냐후 내각 하에서 우경화되는 이스라엘의 사회 등 가해자 이스라엘에 대한 담론들은 오늘날에도 질리도록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양쪽으로 극단화되는 담론은, 모든 극단화가 그러하듯이 맥락과 사실보다는 이미지 소비로 이어지고, 결론을 정해놓고 심도있는 논의를 거부한다. 유대인 문제는 가장 감정적이고, 정치적으로 소비되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고리타분한 찬양과 유대인만 없었으면 세상에 문제도 없었다라는 히틀러의 꼬리들을 한국 인터넷에서조차 모두 골고루 접할 수 있다. 샤일록이 외친 유대인은 눈이 없는가? 손도 없고, 장기도, 신체도, 감각도, 감정도, 열정도 없는가?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무기에 상처 입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가?”라는 절규는 두 극단적인 시선에 모두 적용된다. 모든 역사적, 사회적 문제가 그러하듯이 유대민족에 대해서도 다층적이고 심도 있는 접근은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대인에 대한 신화에 대한 진중한 책이 나온 것은 대단히 환영할 일이다. 한겨레 기자 출신의 정의길이 집필한 <유대인, 발명된 신화 - 기독교 세계가 만들고, 시오니즘이 완성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는 무려 500쪽에 가까운 분량과 더불어 총 14장에 걸쳐 유대민족에 관한 다양한 주제들을 탐독한다. 고백하건데 필자는 이 책을 받기 이전까지 이 책의 지향과 접근방법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었으며, 저자에 대한 지식도 없었다. 다만 근래에 중동전쟁에 관련된 논저들을 읽으면서 그간 피상적으로 알려졌던 문제들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느끼며 중동문제에 대한 몰이해가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따라서 이스라엘 건국을 포함한 현대 중동사의 뜨거운 감자들도 다루는 이 책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고 서평을 신청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이사와 여러 개인 사정으로 인해 책을 수령하고도 펼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으나, 하루만에 완독하는데 성공했다. 완독 후 느낀 것은, 필자의 관점에 동의되지 않는 부분도 있으나, 이런 책이 한국 인문도서 시장에 나온 것 자체가 상당한 성과라는 것이었다. 본서는 이스라엘의 기원, 성서학의 기원, 유대인 추방 문제, 유대인 공동체의 확산 등 유대인 신화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서 탐구하며, 이 과정에서 기존에 출판된 저서들에선 거의 다루지 않거나, 못한 주제들을 소개하였는데, 가령 예멘 유대인의 문제, 1차 중동전쟁 시점 팔레스타인의 분열과 붕괴, 요르단 국왕 압둘라의 야망으로 대표되는 각축하는 아랍 세력의 역학 관계, 아민 알 후세이니의 강경론의 파국 문제 등을 소개한 책은, 국내 저서 중에서는 이것이 처음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저 필자의 지적 게으름의 문제일수도 있다. 만약에 이미 다룬 책들이 있다면, 그 책의 저자분들께 겸허히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몇가지 문제점 역시 보였다. 21세기 초, 기존 역사적 상식에 대한 딴지 걸기가 대유행한 적이 있었다. 사실 어떤 물건은 아무개가 발명한 것이 아니고, 성군으로 알려진 아무개는 사실 비루한 인간이었으며, 이러한 명언은 사실 누군가 말한 적이 없다는 류의. 이러한 역사 딴지걸기는 어느 정도 지적 유희는 제공했지만 무리수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 책 역시 어느 정도 그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가령 저자는 아서 쾨슬러가 제시한 하자르족이 아슈케나지의 실제 조상이었다는 주장을 인용하면서 해당 주장이 반유대주의 주장으로 매도당했다는 것만 지적하지만 적어도 필자가 알기로 해당 주장은 유전자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사장되었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은 없이, 유대교가 퍼지면서 없던 유대인들이 만들어졌다는 담론에 집착하는 면모가 책 전반에서 확인된다. 이러한 경향은 무려 500쪽에 달하는 긴 책을 쓰면서도 참고문헌이 지나치게 적은 것과도 연관이 있는데, 저자는 슐로모 산드의 <만들어진 유대인>에 상당수 출처를 의존하고 있다. 지나치게 적은 참고문헌 활용은, 일부 신선한 사실의 소개에도 불구하고 정작 핵심적인 내용들을 놓치는 결과로 이어졌는데, 가령 예멘 유대인을 소개하면서 중동 각지에서 벌어진 포그롬과 미즈라힘, 세파르딤에 대한 이스라엘 건국 세대들이 겪었던 딜레마(사실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들을 받아들이는데 그렇게까지 열성적이지 않았으며, 따라서 모로코 유대인들은 상당수 돌아가기도 했다)에 대한 문제는 너무나도 빈약하게 설명된다.

또한, 아민 알 후세이니를 소개하면서 그가 영국 통치에 부역하다가 자신의 통치권 유지를 위해 반영운동으로 갑작스럽게 전향했고, 이후 히틀러와 협력하면서 홀로코스트에 참여하고 발칸반도에서 학살을 자행한 것은 언급하지 않았으며, 벤구리온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지고 있던 팔레스타인 인종청소문제가 근래 이스라엘 학계에서 지적되고 있지만 정작 이러한 연구 경향에 대한 소개가 없다. 영국과 중동에 대한 문제도 어느 정도 탄탄하게 근거를 갖추고 접근했으나, ‘기만적인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라는 기존의 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책이 결론을 정해놓고 쓰여진 것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며, 첫 시도로는 의의가 있지만, 그 완성도가 탁월하다라고까지는 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책의 후반은 네타냐후 정권 하에서 우경화되는 이스라엘에 대한 경계를 주로 담고 있으나, 흥미로운 주제이되 정작 90년대부터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퇴조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음에도 이러한 연구를 인용하기보단 그저 네타냐후 정권이 얼마나 극우인가를 비판하는데 집중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주제가 유대인 신화 해체보다는 이스라엘 비판으로 전환되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이 정치적인 이유로 소비되는 민감한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 도서가 나왔다는 것은 대단히 환영할 일이며, 전체적인 책의 완성도는 중동에 대해, 유대인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 보기에 나쁘지 않다. 또한, 하루 만에 읽었다는 필자의 부연에서 알 수 있듯이 문체 역시 이해하기 쉽게 잘 쓰였다. 여러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