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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보는 서양사 ㅣ 만화라서 더 재밌는 역사 이야기 1
살라흐 앗 딘 지음, 압둘와헤구루 그림 / 부커 / 2022년 11월
평점 :
※ 본 서평은 역개루 카페의 서평 이벤트로 쓰여졌음을 밝힙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많든 적든, 인간의 역사는 전쟁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이라면 역사에 대해서 가장 쉽게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부분도 대군의 진격, 제국의 확장,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명장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 전쟁사에 대한 저작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더 정확히 말하겠다. 외국에 비하면 아주 적다고 하겠다. 한창 세계사 전반에 관심이 많았던 대학생 시절 필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지중해에서의 각축, 십자군 전쟁, 나폴레옹 전쟁 등 유명한 전쟁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자료의 부족으로 큰 좌절을 겪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중 최근에 ‘전쟁으로 보는 서양사’, 그것도 만화로 나왔다는 사실은 ‘역덕’ 입문자들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필자가 근래에 서평을 쓴 대부분의 책은 서평 이벤트를 제의받고 나서야 그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트위터를 통해 일부 원고가 소개되었으므로 출간되기 한참전부터 필자의 관심을 끈 책이었다. 나중에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주저하지 않고 서평을 신청하였고, 근래에 서평을 쓰게 된 책들 중에선 가장 기대를 하였다는 사실을 먼저 부연해둔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일까, 이 책의 가치에 대해서 어느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두겠지만 몇가지 쓴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같다.
우선 본 책은 서양사의 전쟁 중 십자군 전쟁과 2차 세계대전의 유럽전선에 대부분을 할애하며 백년전쟁, 나폴레옹 전쟁, 남북전쟁 등에 몇가지 에피소드를 할애한다. 십자군 전쟁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원정들도 모두 다루면서 정작 나폴레옹 전쟁은 워털루 전투만 나오는 등의 이 중구난방의 비중과 구성은 ‘전쟁으로 보는 서양사’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않는다. 유럽 역사의 흐름을 뒤흔든 대규모 전쟁들은 유럽사에 문외한인 본인이 아는 것들도 숱하게 많지만 이 책이 다루는 범위는 제목에 비해서 너무 적다. (그러한 전쟁들의 목록을 굳이 적진 않겠다. 어느 전투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는 식은 흥미 본연의 서술을 무릅쓸 정도로 서양사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작 필요한 내용은 없으면서 전간기 유럽의 국제정치적 위기처럼 명백히 외교사에 가까운 내용이나, 쿠바 미사일 위기처럼 단순히 ‘서양사’에 국한되지도, 그렇다고 해서 ‘전쟁사’라고 할 수 없는 사건이 들어가는 등 구성에 대해서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차라리 ‘만화로 보는 십자군 전쟁’이나 ‘만화로 보는 2차세계대전의 배경’으로 세분화해서 접근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교롭게도 두 분야 모두 김태권 작가가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와 ‘히틀러의 성공시대’를 이미 출판한 적이 있다. 그 내용에 대해서 좋은 점수를 주긴 힘들지만 말이다.
내용의 밀도로 들어간다면 역시 아쉽다. 특히 한때 필자가 큰 관심을 가지고 섭렵했던 십자군 전쟁을 읽은 후에 내용이 지나치게 얇고 ‘인터넷 드립’ 위주의 가벼운 전개가 거슬렸다. 오해는 하지 말자. 필자는 이런 드립으로 가득 찬 가볍고 재밌는 전개를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이 책의 경우에는 드립이 악영향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첫째는 내용의 밀도가 얇은 상태에서 설명이 드립으로 대체되고 있어 이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불충분하고, 입문자의 눈에는 그저 과거 어딘가에 존재했던 멍청이들의 지리멸렬한 자멸이라는 이해로 이어지기 쉬웠으며, 둘째는 인터넷 드립과 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이해하기 힘들어 ‘입문용’이라는 이점을 해칠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과거 굽시니스트의 본격 2차세계대전 만화를 처음에 읽고 느낀 것이기도 한데, 굽시니스트는 2차 대전의 유럽전선에 주목하여 설명의 밀도가 높았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지만 본 책은 지나치게 넓은 범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더욱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내용의 밀도에 대해서 다시 지적을 하자면 역시 너무 얇다. 비록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정치적 주장에 근거한 악의적인 것이었을지언정 십자군 전쟁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대해서 길게 설명한 것은 구성으로서는 훌륭한 것이었으며, 따라서 필자도 한때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의 열렬한 애독자였다. 하지만 본 책의 내용은 배경이 없는 것은 애초에 문제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쟁사의 내용 자체의 밀도가 낮다. 더군다나 해당 내용의 상당수가 나무위키의 영향을 받았단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단순히 관련 도서를 읽었다면 반드시 나와야 할 핵심적인 설명들은 없고 나무위키에서 강조된 서술은 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작가들이 조사 과정에서 나무위키에 넣은 것일 수도 있다. (필자는 자주 그런다는 것을 밝히는 바이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든 간에 실제 사건의 흐름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각 장마다 미주의 형태로 출처를 남겼으면 좋았을 것이지만 이 책에서는 그림 출처는 있지만 어떠한 내용 출처도 찾을 수 없었다.
쓴 소리를 잔뜩 적었지만 그럼에도 필자는 이 책의 가치에 높게 주목한다. 필자가 쓴 일련의 서평에서 밝혔듯이 이미 나무위키의 잘 쓴 문서조차도 장황한 헛소리 이상으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는 것이 요즘 세태이다. 전쟁사를 다룬 어려운 전공서들은 대부분 한국에 소개되지도 않았으며, 소개되었다 하더라도 도서관에서나 찾을 수 있는 절판된 책들이다. 누군가 이 만화를 읽고 역사학에 관심을 가진다면 이 책은 입문서의 가치를 톡톡히 한 것이며 필자는 앞으로도 많은 ‘역덕’들이 이렇게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