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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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나이와 구두 굽의 높이는 반비례해야 하는 법인데, 이 여자들은 나이와 아파트 평수, 구두 굽이 정비례로 상승해야 한다고 믿는 종족 같다. 가만히 보다 보면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양반네들 걸음걸이가 저런건가 싶다.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잃는 사람이 있다면 당사자에게서 직접 빼앗은 것이 아니더라도 그만큼을 얻는 이가 존재할 거라는 단순한 셈을 하고 있었다.
 
그 집 안에 있는 것을 그대로 갖고 싶다고 다 나에게 달라고 하면 결국 그 집의 불행이나 숨겨진 무언가까지 딸려 오게 되지는 않을까? 겉으로 번드르르해 보인다고 해도 집집마다 사연은 있다.
 
고등어나 금붕어나 식용과 관상용의 차이일 뿐 다 같은 생선인데 그 둘을 다르다고 여겼다. 식용은 먹으면 배나 불렀을 텐데. 죽어서 둥둥 떠오르면 어항 밖으로 건져내어 버리는 것이 끝인 금붕어를 택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지독히도 식견 좁은 과거의 나 말이다.
 
나는 대책 없이 임신부터 하는 여자들이 과연 정말로 대책이 없어서 임신부터 한 것인지 진지하게 궁금해졌다. 대책 없는 철부지라는 이미지는 거짓이고 사실은 남자를 잡고 싶어서 계획적으로 임신한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 여자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고도의 머리를 쓸 줄 아는 교활한 여자들은 아닐까? 다행스러운 것은 남편과 나는 결혼한 사이였기 때문에 나의 행위가 어느 정도의 당위성은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부니까 임신도 출산도 당연한 거다. 하지만 나의 언행을 합리화할수록 나 스스로가 한 단계 낮아진 느낌이 진해져 갔다.
 
머릿속에 안착해 있던 계획은 단 한 가지도 실행할 수 없었고 현실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도 이미 늦어버린 느낌이었다.
 
하루하루가 이른 봄 햇살을 받고 있는 빙판길처럼 느껴져서 불안에 떨면서 살아왔다. 햇빛이 조금만 더 내리쬐면 얼음이 깨지고 그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호수 괴물의 목구멍으로 나와 아이들은 삼켜질 것만 같았다. 나는 완연한 봄을 원하면서도 혹독한 겨울이 계속되기를 바라고 바랐다.
 
진짜 사는 게 팍팍한 사람들은 죽을 생각 따위 할 겨를도 없다. 평화롭다는 건 평범하다는 거다. 평범할만큼 평화로운 게 세상에 있을까.
 
그가 나에게 묻기 전에 아이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한 것은 분명 배려임에는 틀림없다. 아이들이 받을 충격이나 거부감을 상쇄시키려는 배려였을 거다. 좋은 의도가 깔려 있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나는 배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노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저어서 어딘가로 가려고 하는데 나에게만 노가 없다. 그들이 저으면 젓는 대로 나는 어딘가로 실려 간다. 내 손에 노가 없으니 나는 선장도 아니요, 선원도 아니다. 나는 바닷길 위에 표류하다가 운 좋게 배를 얻어 탄 봇짐 진 여인네에 불과했다.
 
나는 의사 결정권도 없이 방치된 쓸모없는 노인이 된 기분이었다. 오히려 쓸모없는 노인 쪽이 나보다 낫다. 나는 걸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상태인데도 이런 취급을 받고 있다. 내 신세를 조금이나마 덜 추레하게 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낫겠지.
 
 
✍️이책은 스릴러의 소설이라고 한다.
내용에서는 극도의 긴장감은 없지만 비밀스러운 두가족의 이야기가 퍼즐을 맞추어가듯 이어져 읽는 재미가 소소하다.
읽다보면 아파트 단지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데 우리네의 생활속에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속 모습이 스릴이 있다.
거기에 내밀한 부부의 일상과 자식과 부모간의 모습, 이웃간의 모습, 직장에서의 모습에서도 스릴을 맛볼수 있다.
또 언제, 어떻게, 누가 그랬는지 궁금함에 책을 덮을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책속에 찌질한 남편을 앞집남자의 처리가, 전체적인 소설의 분위기가 기분나쁘지 않게 이어진다는게 이 소설의 묘미였다.
하반기에 갈수록 반전에, 개인적으로 기분좋은 엔딩을 선호하는데 그소설이 이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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