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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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탄생과 사랑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굵직한 순간 사이로 아이와 부모, 교육과 배움, 연애와 이별, 청춘과 노년, 정원과 농사, 독서와 여행, 고독과 관계 등 삶의 모든 순간이 이 한 권의 시집에 담겨있다.
 
뭔가 잘못된 것이다 / 내가 잘못한 것이다 / 10만 명이 읽었는데도 세상 사람들에 /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책은 / 그냥 간식거리거나 쓰레기일 테니
 
자신의 두 발로 생존 배낭을 지고 / 한 걸음 한 걸음 묵직이 올라서던 / 심장이 터질 듯한 그 벅찬 길이 / 자긍심이 되고 그리움이 될 테니까
 
벌은 나에게 애 그리 한 걸까 / 실수로 자기 집을 밟은 적인 나를 / 죽이지도 쓰러뜨리지도 못하면서 / 일생의 단 한 방, 목숨의 침을 쏘고 / 왜 기꺼이 죽어가기를 각오한 걸까
 
시대가 변하고 모순이 변하고 적 또한 변해도 / 저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단 하나는 / 목숨 걸고 달려드는 작은 자들의 봉기, / 무장봉기라는 것
 
사람은 자신만의 / 어떤 멋을 간직해야 한다 / 비할 데 없는 고유한 그 무엇을 위해 / 나머지를 과감히 비워내는 것 / 진정한 멋은 궁극의 자기 비움이고  / 인간 그 자신이 빛나는 것이니까
 
끝없는 열정과 시사한 재능을 함께 가진 / 시인의 성실성과 끈질김 때문에 / 다른 사람 천 년 쓸 글씨를 이미 다 썼다고, / 잉크가 조금씩 새고 매끄럽게 닳은 펜촉에 / 글씨가 조금 굵어진 것 말고는 진짜 만 년 간다고, / 백년도 못 사는 나를 바라보며 / 나는 만년필이다 위엄을 부린다
 
역사는 돌아서 보면 / 장엄하고 아름다운 연극이죠 / 선도 악도 어쩌면 하나의 배역 / 성취도 고난도, 승리도 패배도, / 하나의 낮과 하나의 밤이죠
 
얼마 전가지 우리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  / 선조들이 그렇게 살고 노동하고 저항하고 / 오늘 여기 코리아에 내가 서 있게 했다
 
그 더러운 이름을 내 몸에 담고 살 순 없다고 / 그들은 살아있어도 이미 죽어버린 자들이고 / 악의 칼잡이였으나 이미 내던져진 도구라고 / 진정한 복수는 다르게 살아 갚아주는 거라고
 
위로는 끝나버린 자의 것 / 더는 나아질 가망이 없는 자의 것 / 잉태와 소생의 힘이 고갈된 이들을 위한 / 나직한 탄식의 애도가 아닌가
 
죽은 내 어머니는 그랬다 / 사람은, 미움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 인생은, 사랑으로 살아내야 한다고 / 곧고 선한 마음으로 끝내 이겨내야 한다고
 
지가 해보니께 나무는유 / 결핍이 아니라 과잉이 죽여유 / 사람이 열 내고 하면유 나무가 죽어가유 / 사람이 죽은 듯 가면유 나무가 살아나유 / 귀한 나무일수록 무심을 좋아혀유
 
그 많은 사람 중에 / 내가 바라봐 주고 사랑해 준 사람이 없음을 알았을 때 / 내가 그 지옥이다
 
선하고 의롭게 살아온 이에겐 / 세상 끝에서도 친구가 기다린다네 / 좋은 동행자가 함께하면 / 그 어떤 길도 멀지 않은 법이라네
 
저주받은 시인이고 / 실패한 혁명가이며 / 추방당한 유랑자로 / 오늘도 멀고 높은 길들을 떠돌고 있지만, / 침묵 속에 아득히 잊힌 지 오래지만, / 누구도 나를 가련히 여기지 말라
나는 시퍼렇게 늙었고 /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고 / 나의 혁명은 끝나지 않았으니
 
🔖오랜만의 시 속으로 빠져 봄날의 생동감을 만끽했다.
이시집은 하나같이 쓸쓸함과 서글픔이 묻어있다.
내가 이 시인의 시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언제 읽어도 먹먹해지는 아른함이 좋아서일 것이다.
무심한 돌 하나에서도, 풀꽃과 나무, 책과 만년필에서도 그 존재의 전혀 다른 빛을 비춰낸다.
많은 시속에서 지나온 길을 비춰주는게 같이 지나온 세월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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