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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2 : 사랑 편 -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하지만 늘 외롭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주고 싶은 시 90편 ㅣ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2
신현림 엮음 / 걷는나무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2 : 사랑 편
사랑의 감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말’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사랑한다.” 고 말하는 것!
하지만, 직접 말하는 것 못지않게 상대에게 설렘을 주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글‘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 중에서도 ‘시‘처럼, 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동서고금, 시인들은 많은 사랑의 시들을 남겨 놓았고, 지금도 쓰고 있다.
그리움, 외로움, 고독이라는 느낌과 감정들은, 사랑을 찾는, 사랑하고 싶다는, 다른 표현의 단어들이 아닐지!
신현림 시인은 같이 사는 딸을 위해서, 미숙한 사랑에 고민하고 방황하는 이 시대의 딸들을 위해서, 90여 편의 주옥같은 국내외 시인들의 사랑노래를 구구절절 펼쳐 보인다.
시인은 말한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영영 다시 못 만날 때가 오니 주저하지 말고 깊이 사랑할 것.)
(나도 누군가를 마음을 다해 사랑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그 사랑이 떠나 버렸을 때 너무 슬퍼 제정신이 아닌 듯이 헤맸어도 나는 사랑한 걸 후회하지 않았단다. 사랑해서 기뻤고, 사랑받아서 경이로웠고, 사랑할 수 있어 행복했었다.)
(사랑은 볼 수 없는 걸 보게 하고 갈 수 없는 곳을 가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통해 인생의 신비와 통찰을 맛본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며, 속수무책일 때가 많은지, 아무리 사랑의 마음이 깊어져도 그것을 성장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쉽지 않기에 사랑이 인생 최고의 가치인지도 모른다.)
실연은 크나큰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사랑의 아픔을 극복하고 나면 우리는 한 뼘 더 자란다.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들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그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꺽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흰 부추꽃으로, 박남준-
사랑이란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전문]
-밀물, 정끝별-
나도 그렇지만, 나이 든 부부들은 말한다. “사랑? 사랑은 무슨! ‘정’으로 사는 거지.”
무덤덤하게 말들 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을 뿐, 무표현 속에는 깊은 사랑이 담겨있다.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후략]
-늙어가는 아내에게, 황지우-
누구에게나 그리운 사람 하나씩은 가슴 속에 있지요!
상대방이 나를 알든, 모르든, 어떻게 생각하든지...
나에게도 나 몰래 나를 그리워하는, 그런 사람 하나 있다면,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단 두 번쯤이었던가, 그것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지요
그것도 그저 밥을 먹었을 뿐
그것도 벌써 일 년 혹은 이 년 전일까요?
내 이름이나 알까, 그게 다였으니 모르는 사람이나 진배없지요
그러나 가끔 쓸쓸해서 아무도 없는 때
왠지 저절로 꺼내지곤 하죠
가령 이런 이국 하늘 밑에서 좋은 그림엽서를 보았을 때
우표만큼의 관심도 내게 없을 사람을
이렇게 편안히 멀리 있다는 이유로 더더욱 상처의 불안도 없이
마치 애인인 양 그립다고 받아들여진 양 쓰지요
당신, 끝내 자신이 그렇게 사랑받고 있음을 영영 모르겠지요
몇 자 적다 이 사랑 내 마음대로 찢어
처음 본 저 강에 버릴 테니까요
불쌍한 당신, 버림받는 것도 모르고 밥을 우물대고 있겠죠
나도 혼자 밥을 먹다 외로워지면 생각해요
나 몰래 나를 꺼내 보고는 하는 사람도 혹 있을까
내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복할 리도 혹 있을까 말예요...)) [전문]
-엽서, 엽서, 김경미-
젊은 날, 플랫폼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 있었는가!
기차는 몇 번이나 지나가는데, 대합실은 텅 비어가고...
그러다 어느 덧 젊음도 훌쩍 지나가버렸네.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트리고,
담배를 피웠다...[중략]
.....봄은 다 가고 ─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내 아내도 그럴 것이다.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세상에서 제일 가까우면서도 세상에서 제일 먼 남자,
누구? 바로, 나!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는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전문]
-남편, 문정희-
그동안 시인들의 개인 시집만을 읽다가 신현림 시인이 정성스레 엮은 ‘사랑‘ 시집을 읽으니
좀 헐겁다는 느낌은 있지만, 지난 날, 옛사랑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가슴에 번져온다.
내 사춘기 딸에게 이 시들을 읽어주고 싶다. 싫다면, 그냥 책상에 가만히 놓아두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