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예비평 2012.가을 - 통권 제86호
산지니 편집부 엮음 / 산지니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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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문예비평’(이하 오문비)의 가을호가 나왔다. 오문비 여름호를 읽어보고 지역의 비평 세계에 관심이 생겨 가을호도 읽어보게 되었다. 

  특집이 ‘치유의 불가능성’ 이었다. 반가웠다. 사실 출판계에 작년을 전후하여 너무 많은 힐링 관련 책이 쏟아져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나 역시 재작년엔 삶에 지친 개인을 위로해주는 책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군 복무중이었던 나의 개인적인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만해도 서점에 가면 불과 몇 권 없었던 힐링 관련 책들이 요사이 들어선 서점 한쪽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에서 물건의 공급은 수요에 따라간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과잉된 공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은 이후로 비슷한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 양에 질려버려 누가 썼든 간에 ‘힐링, 치유, 위로’라는 키워드가 있는 책이라면 쳐다볼 생각이 들지 않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문비의 치유의 불가능성에 대한 특집을 읽고 많이 공감할 수 있었으며 왜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인가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오길영 교수는 ‘치유담론의 빛과 그늘’이라는 글에서 현 상황이 “사회구조의 벽에 부딪치면서 개인들이 좌절한 후 좌절감을 메우기 위해 자기계발의 또 다른 표현인 힐링 담론이 득세하는 모양새.”라고 진단하면서 개인의 고통과 좌절감을 두루뭉술하게 넘겨서는 안 되고 “한국자본주의의 구체적 실상과 그 안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의 실체를 정확히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힐링, 치유에 관한 글 이외에도 구모룡 교수의 ‘후쿠시마와 재난의 사상’의 관한 글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건을 통해 원전의 위험성을 말하며 완전한 탈핵화가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건은 단순한 지역의 사건이 아니라 ‘트랜스 내셔널’ 즉, 세계사적인 사건이며 이 사건 이후의 일어날 사회의 변화 양상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건을 그저 이웃나라에서 일어난 단순한 사고로 여겼던 나는 다소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탈핵화와 동아시아 정세에 대해서도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는 글인 것 같다. 이 외에도 지역의 문예비평지 답게 비평의 도시 부산을 주목하라는 박형준, 김이석의 글들도 흥미로웠다. 

  얼마전 대학교 강의를 들으면서 책의 미래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다른 여타의 매체와 차별되는 책이 지닌 최대의 장점은 사유를 가능케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은(어찌보면 조금 많이 어려운) 어려운 언어로 쓰여진 비평지를 읽으면서 더 깊은 사유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지평을 좀 더 넓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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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3 0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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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수첩 - 2012 성균관문학상 수상도서, 2012 한국도서관협회 우수문학도서
유익서 지음 / 산지니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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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그랬다. 한국소설인데, 단편소설인데.. 별 기대 안 했다. 소설을 고르는 기준에 있어서 ‘재미’를 1순위로 하는 나에게 첫 느낌이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책은 총 8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글의 부제가 ‘한산수첩8’, 마지막 글의 부제가 ‘한산수첩1’. 이렇게 역순으로 되어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과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다. 


  첫 번째 글은 다소 어려웠다. 나의 문학적 소양이 떨어져서 그렇겠지만 관념적인 내용들로 인해 가독성이 다소 떨어졌다. 하지만 그 다음 글 부터는 읽어나가기가 어렵지 않았다. 


  8개의 단편 모두 화자는 한산도에 거처하는 각기 다른 인물들이다. 아마도 한산도에 2년간 기거하며 글을 써왔다는 작가의 경험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한산도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통해 섬이라는 공간의 상징성과 해안 마을의 정서, 그리고 그 곳에서의 작가의 사색을 잘 버무린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한산도의 풍경을 소설 속에 자주 묘사하였는데 이는 때로는 사진 같이 때로는 그림 같이 작품속에 절묘하게 녹여내어, 책을 읽는 내내 꼭 가보고 싶게 만들었다. 


  처음 이 책을 펼칠 때의 우려와는 달리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덤으로 작가의 문화와 예술, 사랑과 운명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좀 더 이것들에 대한 사유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은 것 같았다. 각각의 단편마다 결말에 주목을 해보았는데 모두 아쉬움이라는 정서가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며 한산도의 풍경과 작가의 생각을 음미하며 사유해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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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3 0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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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A.M. 홈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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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라는 도발적인 타이틀은 인생의 힘든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솔깃해할 제목일 것이다. 그만큼 제목이 이 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그 때문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과연 이 책이 나의 인생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이 책을 간단히 요약하면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던 중년의 남자가 어떤 계기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변해가는 과정을 그려낸 소설이다. 이 책을 두 번 읽어봤는데 두 번째 읽을 때는 이 책의 주인공인 리처드라는 남자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세상에 자신을 내맡기는지에 대해 주목하면서 읽어보았다.

주인공인 리처드는 수 년 전에 이혼한 채 캘리포니아로 와서 혼자 살고 있다. 외부와는 거의 단절한 채 주식으로 돈을 벌면서 정해진 생활 패턴을 고집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가슴에 통증을 느끼게 되고 응급실로 가게 된다. 리처드는 그 곳에서 문득 자신이 아플 때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리처드는 그 전까지 모든 걸 정해진 틀에서만 자신의 생활에 몰두했다. 사회로부터 일종의 도피였던 셈이다. 아마도 전처와의 성공적이지 않았던 결혼 생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응급실을 갔다 온 뒤로부터는 식료품가게에서 주부로서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신시아를 만나서 도와주고, 구덩이에 빠진 말을 도와주는 등 무언가 변화하려고 애쓴다. 다음 대목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스스로를 깨고 나가려면 뭘 해야 할까? … …그는 지금보다 큰 존재가 되고 싶고,

더 많은 것을 하고 싶다. 그리고 기분이 나아지고 싶다. 인생을 뛰어넘은 영웅이

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중년의 평범한 남자가 뭔가가 될 수 있을까? (p. 90)

현대 사회에서는 바쁘게 살아가고 물질적 부는 이루었지만 정신적 공허함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리처드도 물질적 부는 이루었지만 혼자서 살아가며 물질적 부 이외에 인생에 있어서 다른 가치는 가지지 못한다. 리처드를 보면서 얼마 전 방영되었던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가 떠올랐다. 극 중에서도 지진희가 맡은 ‘재희’ 역할은 물질적 부는 이루었지만 독신으로 살면서 혼자 지내는 게 편하다고 여기며 세상과 소통하지 않으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리처드도 성공적이지 못했던 결혼 생활에서 상처를 받고 자신의 틀을 만들고 그 안에서부터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리처드가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뭔가를 하려는 모습은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이제는 지친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자신의 인생을 구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없는 일을 남들에게 선의를 베풀면서 만족을 느끼는 리처드의 경우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어가며 표현상 인상 깊었던 점은 인물들의 대화가 비논리적이었다는 점이다. 우리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땐 상황에 대해 비논리적으로 대응하면서 현실에 대해 회피하려고 한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 충격적이고 독특한 소재들을 아무 것도 아닌 듯 지극히 당연하게 담담한 어투로 풀어 쓴 문체가 이 책의 주제를 나타내기에는 가장 적합하다고 보여 졌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포기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삶이 가치가 없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이 책을 접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나 또한 그러한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른다. 힘든 사람들에겐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심리 상담사가 필요하다. 그냥 복잡한 생각 없이 이 책을 읽다보면 리처드에게 자신을 투영시키면서 고민을 풀 수 있을 것이다. 500 페이지가 넘는 어찌 보면 많은 분량이지만 책을 읽기가 부담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 책이다. 인생의 힘든 순간에 놓여있는 사람이라면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허감에 빠져 있거나 우울증에 접어들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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