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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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족에 대해 쓰인 책이 많이 나온다. 고령화 가족도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한 가족이 아니었다. 요즘 드라마에서 많이 사용하는 막장가족이다. 그러나 저자가 막장가족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이 이야기를 쓴 것은 아니다. 그 안에도 여러 가지 사랑과 애정이 넘쳐난다.
한 가족으로 어머니의 손에서 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잘 먹고 잘 자란 3남매. 그들은 세상에 나가서 고군분투 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다들 원투 펀치에 이은 어퍼컷에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세상을 등지고 둥지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먹고 그들은 다시금 비상을 꿈꾼다.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라 함은 바로 인물 구성에 있지 않나 싶다.
세상의 낙오자로 이혼까지 한 화자에서부터 감방만 왔다 갔다 하는 그의 형,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술집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고 이혼하고 딸을 데리고 돌아온 여동생, 자식들의 용돈을 받으며 편히 살아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자식들을 거느리는 어머니까지. 책 제목이 고령화가족이라 붙여질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간단히 웃을 수 있게 만들지 않는다. 웃을 수 없는 이야기로 우리를 웃게 만든다.
다만 그 웃음이 무슨 웃음인지는 모르겠다. 분명 환희의 웃음은 아니었다. 오함마가 약장수의 가게를 팔고 도망쳤을 때도, 미연이 근배씨와 결혼하고 잘 살 때도, 어머니가 옛 전파상 구씨를 다시 만나 살아갈 때도, 그리고 화자가 윤주를 만나고 에로영화가 잘 되었을 때도 이 모든 것에서는 웃음이 없었다. 이 책이 주는 웃음은 이런 해피한 곳에서 웃음을 주지 않았다.
이 책은 가족들 간의 유치함에 웃음이, 아니 웃음이라기보다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피자 한판을 두고 조카에게 빌붙는 오한마나 그것을 두고 버럭 하는 화자의 모습을 보면 누구나 웃음 아닌 웃음을 띠게 된다. 그리고 조카의 팬티를 두고 수음하는 오한마의 상황, 양아버지와 나눈 단 두 마디, 오한마를 따라 해외로 떠나는 수자 씨를 두고 오한마의 뒷담화 등을 보며 그 유치함에 실소가 터진다.

그러나 이 책의 진가는 책을 덮고 나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이 책은 화자 말대로 막장이다. 만약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그 어떤 드라마보다 막장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덮는 순간 막장이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바뀌어 진다. 하나의 새로운 가족의 단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피가 제대로 섞이지 않은 심란한 가족이지만 그들의 생활을 보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 는게 느껴진다. 그들은 서로를 헐뜯고 말하는 것을 보면 유치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자기희생 때문일까?(자기희생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말이다.) 그들의 상황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조각들이 조금씩 자신을 변화시켜 가족이라는 하나의 퍼즐을 완성했다. 그리고 자기희생이 바꾼 것은 책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까지 바꾸어 놓았다. ‘무슨 가족이야기가 이래?‘ 하면서 봤던 나의 마음도 조금씩 변화되어 그들의 퍼즐 끝자락에 붙게 되었다. 그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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