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강유원이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진행한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강의를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이 강의의 기본 목적은 “인문학 고전이 어떤 시대에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것은 인간의 현실적인 삶과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 그러한 고전은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 하며 그것들끼리는 또한 어떻게 관련 되는가를 알아보는 것(13쪽)”이다. 아마도 첫 번째 구는 고전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려는 것으로 보이며, 두 번째 구는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있는 것 같다. 세 번째 구는 앞의 전제가 받아들여진 상황에서, 그렇다면 어떻게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 나름의 ‘현실적인’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고전은 무엇인가? 그는 고전을 “당대의 삶의 모습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그 시대를 넘어서서까지 통용되는 메세지를 주는 것(17쪽)”이라고 간단히 정의하고 있다. 또 하나 그에 따르면 고전은 사실상 오늘날 우리가 통상적으로 구분 짓고 있는 학제의 테두리에 한정되지 않는 일종의 “통합교과적 텍스트(10쪽)”이다.
서문에 따르면 고전을 읽는 이유는 교양인이 되기 위해서이다(7-8쪽). 그가 교양을 무엇으로 정의하고 있는지, 또 왜 교양을 쌓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결문 ‘정치사상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이후의 공부’를 보면 위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전을 읽는 이유는 한마디로 “진정으로 잘산다는 것에 대해(183쪽)” 고민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강유원에게 ‘잘산다’는 것의 의미는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고전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맑게 하는 것, 혹은 고전을 통해 자신의 삶에 깊이를 더해주는 것이다(177-178쪽). 이를 통해 강유원은 고전을 읽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목적이 가지는 일종의 함의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정치사상 고전이 다루고 있는 핵심 주제는 “개인과 그 개인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사이의 관계(181쪽)”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사상의 고전은 강유원이 말한 정치의 핵심인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에 이르는 절차와 행위(177쪽)”에서 설득을 위한 “궁극적인 근거(177쪽)”를 생각해 볼 여지를 제공해 준다. 다시 말해 공동체 속의 인간들에게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갈등을 보다 잘 조정해 궁극적으로 “공동체에 사는 모든 이들이 행복한 삶을 두루 누릴 수 있게 하는”(184쪽) 길을 모색하는 데 고전이 일정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는 이 외에 몇 가지 현실적인 이유도 덧붙이고 있다.
그렇다면 고전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내 식으로 말하자면 과연 어떻게 고전을 읽는 것이 ‘가능’한가?) 사실 이 부분이 나에게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이었다. 그에 따르면 고전을 읽었다는 것, 혹은 고전을 읽는 다는 것은 단지 읽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고 요약문을 써보거나 주제를 정해 보고서를 써보고 더 나아가 자신의 주장을 담은 소논문 정도까지 쓸 줄 아는(13쪽)” 것을 포함한다. 이를 전제로 그가 먼저 제시하고 있는 기본적인 자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저자와 그의 시대를 철저하게 이해하기, 저자가 그 책을 쓰던 순간을 상상하기. 둘째, 전체를 통독하고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해보기. 셋째, 구조를 파악하기. 넷째, 독특한 표현과 비유들을 찾아내기. 다섯째, 소리 내어 읽기. 여섯째, 문장 다시 써보기. 일곱째, 핵심만 추려내어 써보기(11-12쪽). 그에 따르면 1-2번은 기본적인 몸 풀기에, 3-4번은 책을 본격적으로 읽어 나가면서 내용을 파악하는 과정에, 5-6번은 책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 해당한다(12쪽).
책은 본론은 이 7가지 사항을 실제 ‘고전’ 텍스트를 예로 들면서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1장 ‘고전을 읽을 때 유념할 점’에서는 1-2번을 다루고 있으며, 2장 ‘플라톤의 『국가』와 『정치가』’에서는 특히 요약문 쓰는 법과 보고서 쓰는 법을 다루고 있다. 3장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는 요약문과 보고서에서 나아가 자신만의 나름의 문제의식이 담긴 소논문을 쓰는 법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강유원의 책은 말 그대로 고전을 읽어가는 ‘방법’에 대한 글이지만, 그 방법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책에서 인용되고 있는 고전의 내용들을 그가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도 엿볼 수 있다. 사실 고전에 대한 해석의 여지는 무궁무진함으로 그의 책에서 중요하게 살펴 볼 대목은 바로 ‘고전을 읽는 방법’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다음은 그가 제시하고 있는 요약문, 보고서, 소논문 쓰는 법이다.
1. 요약문 쓰기
그는 글을 읽을 때 무엇보다 요약을 해보는 것이 무척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요약을 하려면 먼저 열심히 읽어야 하고, 그것 자기 나름대로 정리하려면 여러 번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50쪽).
요약문 만드는 법(55쪽)
1) 책 읽을 때 계획을 세워라
- 서문을 꼼꼼하게 읽어서 책의 주제, 주제를 다루는 방법, 서술의 순서를 파악해 두고, 바쁠 때에는 서문의 내용이라도 노트에 정리하라. 저자, 제목, 출판사, 출판년도와 같은 서지정보도 함께 적는다.
- 목차를 보고 책읽기의 계획을 세워라.
- 꼼꼼하게 노트할 부분과 대강 읽을 부분을 구별하라.
- 이런 계획들을 목차에 써두는 것이 중요하다.
2) 요약정리하는 순서
- 한 장(章)을 읽는다.
- 읽으면서 핵심적인 내용을 담은 문단에 체크하라.
- 읽으면서 중요한 개념들을 체크하라.
- 핵심 내용을 담은 문단을 노트에 정리하는 것과 개념을 나누어서 정리한다.
- 직접인용, 풀어서 재정리하는 것으로 노트 정리하라.
- 노트 정리한 것을 읽어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여백에 적어라.
- 참조할 책들도 적어두면 좋다.
- 더 해야 할 일 등도 적어라.
2. 보고서 쓰기
그에 따르면 보고서는 “책에 근거하여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정리한 것(85쪽)”을 일컫는다. 보고서는 요약문과 마찬가지로 글쓴이의 독창적인 생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요약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요약문과 보고서의 차이점은 보고서의 경우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요약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제는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강유원에 따르면 바로 이 지점에서 책 전체를 스스로 요약한 요약문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86쪽). 다시 말해 그게 있어야 어떤 지점을 공략할지가 보인다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주제선정의 형식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첫째는 주제는 가능하면 좁아야 한다는 것이다(87쪽). 둘째, 주제는 자신이 정말 관심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88쪽).
세부주제를 정한 다음 필요한 것은 목차 짜기이다. 그는 A4 용지 1매 분량의 보고서 작성 시 어떤 목차가 가능한지 예시하고 있다.
“A4 용지 한 매를 쓰려면 기껏해야 다섯 문단이다. 첫 문단에는 내가 정리하고자 하는 것을 세 문장으로 요약해서 쓴다. 이것이 서론이 된다. 이것만 읽어도 전체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본론에는 서론에 쓴 문장을 상세하게 풀어서 적는다. (…) 여기에 세 개의 문단이 할당된다. 마지막 문단에서는 지금까지 서술한 것을 한 문단에 집약해서 서술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른바 ‘다섯 단락 글쓰기’이다(88쪽)”
그 다음으로 할 일이 참고문헌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목차가 나와야만 참고문헌을 찾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89쪽).
3. 소논문 쓰기(112-118쪽)
그에 따르면 소논문은 “보고서와 달리 자신의 주장이 들어가는 글”이다. 하지만 쓰는 방식은 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소논문을 쓸 때 다음과 같은 점을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첫째, 섣불리 비교하지 마라. 가령 플라톤이 국가를 전체주의적 국가로 파악했다면서 독일의 나치즘과 연결시키는 것은 범주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초보자들의 경우 비교 자체가 위험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둘째, 증거가 많고 결론이 간결해야 한다. 본문의 내용과 많이 벗어난 멋있는 말을 마지막에 하지 마라. 그에 따르면 어설픈 느낌을 적는다던지 거창한 메세지를 주려는 시도는 읽는 이에게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한다(115쪽). 나머지는 앞서 제시한 보고서 쓰는 요령과 동일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객관적인 사실만 있는 그대로 서술해서 전제와 결론의 균형을 맞추는” 글만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그의 다음 말에서 최고조로 강조되고 있다. “인문학 공부하는 사람이 글을 쓰는 데 창의력은 중요하지 않다(117쪽).” 결국 그가 강조하고 있는 ‘사실에 기반한 주장’을 담은 소논문을 쓰기 위해선 ‘뻔해 보일 수’ 있는 요약문과 보고서 쓰기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 그의 글이 가진 미덕은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이 듣고자 하는 말을 에두르지 않고, 분명하게 제시한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그 수준도 두루뭉실하거나 추상적인 일반론이 아니라 구체적이고도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그가 제시하고 읽는 고전읽는 법은 많은 도움이 되었고(물론 직접 읽고 써봐야 하겠지만), 그만큼 그동안 내가 해왔던 글 읽는 방식과 쓰는 방식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