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욜로욜로 시리즈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by 수지소희 움쭈쭈 


 
  "문학을 배워 본 적 없는 이 젊은 작가는.." 으로 시작되는 작가의 약력이 인상적인 이 책은, 연극 극본 형식을 빌린 M의 구직 혹은 면접기다.
 
「 그러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입사 지원서를 낼 수 있는 세상은 M이 태어나지도 않았던 몇십 년 전에 이미 끝나 버렸다. 지금은 아무리 과자를 싫어하는 사람도, 과자 회사가 사원 모집 공고를 낸 이상 거기에 지원하는 것이 의무가 된 세상이다.」- P25
 
  이미 오래전부터 일상화 된 극심한 취업난과 불안한 고용시장이라는 배경에, 여러번의 구직 실패로 불안에 시달리는 M이라는 인물이, 취향과 적성은 제쳐두고 취업을 위한 면접을 보는 일련의 사건이 엮여져 하나의 이야기가 구성된다.
 
사람들은 수장쩍어 하는 눈초리로 M 주변을 비켜 가기만 할 뿐 말은 걸어오지 않았다. 당혹. 실망. 모멸.」- P7 
 
「 부품. 알고 있다. 어딜 가나 한 개의 부품일 뿐이다. 그 자체만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면 어떤 목적의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아주 작은 부품 한 개. …(중략)… 전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까진 신경 쓸 것 없다. 제자리에서 잘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순정 부품 마크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작은 부품의 생산성, 대수롭지 않은 운명이다. 그 대수롭지 않은 운명을 위해 마흔여덟 번의 면접을 봤다. 마흔일곱 번의 거절을 당하면서.」- P81~82
 
  전체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는 불안함은 한 개인으로서의 자아와 자존감을 벗어던지고 기꺼이 전체의 부품이 되겠다는 순종으로 이어진다. M의 입에서는 거슬리리만치 '생산성'이라는 단어를 쏟아낸다. 다소 강박적이기까지 한 저 말을 계속 듣고 있자면, 마치 무언가를 생산하지 못하는 존재는 존재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자기 다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격한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나의 조직이 구성되고 그 조직이 다시 더 큰 조직의 하부 조직으로 편성되어, 최상위 조직에서 고도의 전략에 따라 수립한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굉장히 감동적인 구석이 있다.」-P67
나는 지체 없이 잔디 위로 바짝 엎드린다.
이 자세가 좋다. 지시가 내려지고 그것을 해내는 방식이 좋다.」-P105
 
 벽돌을 한 층, 한 층, 쌓아 올리는 것. 이게 바로 나와 당신,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일이야. 벽돌이 있어야 할 곳에 벽돌을 올려놓는 것, 그것 이상으로 옳은 일이 있을까. 그것 이상으로 알아야 할 일이 있을까.」-p138

 

  M이 원한 것은 이른바 '평범한 직장인'으로, 주어진 목표에 순응하며 기꺼이 자신의 몫을 해내는 다소 지루한 보통의 삶을 꿈꾼다. 하지만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이 '밥벌이'를 위한 과정은 지난하기만 하다. 50번에 가까운 구직활동에 대한 이야기는 단편적인 반면, M의 입을 빌어 묘사되는 '면접'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직접적이고 그에 대한 생각은 노골적이라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들은 흠, 흠, 소리를 내 가며 이 도시의 빌딩 적재적소에 사람을 집어넣을 계획을 세우는 중이며, 그 작업을 위해 서류상 인간과 그 서류를 증명하기 위해 나타난 인간을 번갈아 대조하며 어느 쪽 인간이 더 나은지를 살피고 있었다.」- P29

면접관들은 지원자들의 이력서와 얼굴을 번갈아 대조하며 뜻 모를 흠, 흠, 소리를 냈는데, 그 헛기침 소리에 따라 무언가를 분류하고 걸러 내는 것 같았다. 불쾌하진 않았다. 이 자리까지 온 이상 차라리 그렇게 샅샅이 파헤쳐지는 게 나았다. M은 자신이 완전히 분석당하기를 바랐다. 불공평하게 중간 정도에서 멈출 바에야 바닥까지 가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자신의 바닥은 그렇게 지저분하지 않으니까.」- P29

 

 

왜 다 큰 어른들 여럿이 창틀 뒤에 숨어 낄낄대며 새를 구경하는 걸까. 왜 새가 투명한 창에 몸을 부딪힐 때마다 오오, 하고 연민과 환호가 섞인 탄성을 내지르는 걸까. 좁은 베란다에 갇혀서 허둥지둥하는 작은 생물을 구경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나. 방향을 틀기만 하면 뒤쪽 베란다로도 충분히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작은 머리가 우습나.」- P51
  합격과 불합격의 기준은 알려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그래서 M의 말마따나 '세상을 살아 갈 방법을 영원히 알 수도 없을 것'이고, '불안은 근거도 필요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시간동안 평범하고 이성적인듯 보이던 M이 발작적으로 모든 것을 의심하는 강박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것도 이런 연유가 아닐까 싶다. 남을 밟고 올라서려는 욕구를 그토록 가감없이 드러내면서도, 남들은 자신의 그러한 행동의 속뜻을 모른다고 믿는 것이나 몰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비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애잔해진다.
 
 M은 그날 경찰서 계단에 앉아 흐느껴 울었다. 진심을 다해 최선으로 임했지만 모든 면접관이 그를 거부했다. 아무도 그의 고백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진심과 최선 어느 것도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P231
어디를 가나 그런 식이었다. 조그만 곳이라도 자기 명의의 공간을 가진 자들은 모두 이력서와 면접을 요구했다. M은 그것에 응하지 않았다. 이젠 그런 방식으로 살기 싫었다.- P235

 

 거의 모든 사람이 장기근속을 선호하지만 M은 옛날엔 어땠는지 몰라도 이젠 단기직이면 단기직일수록 좋았다. 복잡한 계약에 따른 고용 관계는 더는 원하지 않았다.- P235

 

  신입사원 연수장에서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사고를 치고 달아난 M은 자수를 결심하고 찾아간 경찰서에서마저 쫓겨난 후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겠노라 다짐한다. 하지만 이 결심도, 연수원은 애초에 모두가 합격자로만 구성되었다는 것과, 그 날 연수원에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과 우연히 조우하며 무너져 내린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M 혼자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건 연극이므로, 곧 불은 켜질 것이고, 나는, 우리는, M을 두고 떠나야 한다. 남겨진 M은 '자신에게 응대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여러 방향으로 팔을 뻗겠지만, 미심쩍은 사람의 손길에 닿기 싫어하는 행인들의 냉담한 제스처(P11 인용)'를 취하며 우리는 일어설 것이다.

 

웃기지 마, 난 사라지지 않아. 나는 인간이야. 불이 켜진다고 해서 한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간단히 사라질 수 있겠어? 당신은, 당신은 불이 켜지면 사라지는 존재인가? 어? 그런 허깨비야? 나도 아니야. 나는 사라지지도, 어디로 가지도 않아. 길을 알아낼 때까지 영원히 이곳에 있어야 해. 그러니 제발 좀 말해 줘. …(중략)… 여기가 어디야, 응? 나는 어디로 가고 있었지?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도대체 왜 나 혼자만 이렇게 절규하는 거야? 당신들의 지금 그 눈빛은 대체 뭐냐고.- P252

 

  길을 알아낼 때까지 영원히 이곳에 있어야 한다는 M의 외침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겹친다. M을 보며 '이상하게도 자꾸만 어디서 본 적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P15 인용)'이 들기도 한다. 때로는 현실이 한없이 꾸며낸 이야기만 같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아마 M의 삶이 그러했으리라.

​  누구나 한 번쯤 맞닥드리는 면접은, 자기의 필요를 스스로 증명해 내야 하는 가혹한 과정이고, 그 속에서 연민과 환호 모욕이 범벅진 진탕같은 감정의 소모가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그 사회나 집단의 일원이 되지 못함으로서 사라질 '나'라는 존재의 가벼움. 그럼에도 '웃기지 마, 난 사라지지 않아. 나는 인간이야.'라고 끊임없이 외쳐야만 살아지는 무거운 삶.

  이 책은 3차 면접에서 돌발 생동을 보인 M에 대한 이야기인가?

  아니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자신을 부여잡고 갈 길을 찾아 헤메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 그림책이 건네는 다정한 위로
최혜진 지음 / 북라이프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설픈 충고나 섣부른 조언에 상처받은 경험이 있으신 분들께, 저자가 추천하는 그림책 속 글과 그림이 건네는 조용한 다독임과 마음속 울림을 경험해 보시길 추천드려요.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을 당신의 손을 꼭 쥐어주는, 따뜻한 온기가 담긴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랄라예나의 동화 소녀 종이인형 - 다락방에서 읽던 명작 속 소녀들을 다시 만나는 시간
랄라예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취향 저격. 문방구에서 한장씩 사던 종이인형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가위 세 개 들고 딸 둘과 함께 신나게 오리고 노는 중. 디지털 세대 꼬꼬마들에게 문화 충격을 준 책. 진짜 너무너무 신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의 맛
김유경 글.그림 / 이야기꽃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계절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다양한 맛의 우리네 음식. 제철 먹거리를 키워내 거두어 먹이는 마음,그 바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의 맛
김유경 글.그림 / 이야기꽃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가을, 꼭 함께 읽었으면 하는 그림책으로 김유경 작가의 <바람의 맛>을 소개하고 싶다. 이 책은 계절 따라 자연에서 거둔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다시금 자연에 저장하는 선순환구조를 가진 우리네 음식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개인적으론, 마냥 풍요로운, 따스해서 노곤하기까지한 책 표지 그림이 좋아서, 평소와는 다르게 굳이 서점 다섯 군데쯤 꾸역꾸역 전화를 돌려 어렵게 구한 책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먹어왔던 음식이었으면 좋겠고, 또 가능하면 다양한 맛을 담고 싶었다는 작가님이 고른 음식은

된장(간장), 감자떡, 장아찌, 곶감, 도토리묵, 홍어, 김장김치

   이렇게 일곱가지로, 한 해 동안 계절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자연의 모습과 더불어 식탁에 오르는 음식들도 달라진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수채화로 그려진 그림들이 너무나 예쁘고,

  입말로 노래하듯 적어내린 글밥도 곱거니와,

  도란도란 가족들의 모습도 흐뭇하고,

  수확하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재료에 관한 정보들도 알차다.

 

  하지만 단연 일품인 것은 작가님의 '유머코드'. 그리고 그 속의 '휴머니티'.

  깨알 같은 리얼리티의 화려한 시골패션에 빵 터지고, 평생 캐서 이제 캐기 싫다며 감자 캐는 날 홀연히 사라진 할아버지의 모습에 또 웃음이 터진다.

 

  나와 맞는 유머코드는 읽는 즐거움을 주고, 가족들 사이에 오가는 소소한 유머들은 현실적인 웃음이 된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보면, 무언가를 키워내고 누군가를 먹이는, 고단하고 지난한 두 가지 일들이 가족을, 삶을, 영위하게 하는 근본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