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든 환경의 역습
박정훈 지음 / 김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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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이상하다. 꼭 **락스를 풀어 설거지 하기를 좋아한다. 빠독빠독 씻기겠지만, 나는 우선 냄새가 역겹다. 이렇게 독한 걸 쓰면 안 된다고 몇 번 얘기하지만 쉽게 고치려 들지 않는다. 냄새보다는 성능의 유혹을 물리치기 어려운 모양이다. **락스 냄새는 하루종일 집안 공기를 불쾌하게 만든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자연적인 냄새보다 인공적인 냄새에 길들여져 그 속에 살고 있다. 그런 냄새의 태반은 화학물질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불량만두 사건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한 적이 있었다. 먹는 걸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은 죽여야 한다고 할 정도로 사람들은 먹는 것에 대해서는 광적으로 흥분한다. 그러나 우리가 숨쉬는 공기가 불량 만두보다 훨씬 우리 몸에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는 흥분하지 않는다. 개미를 잡기 위해 엄청난 양의 살충제를 뿌리고, 화장실이나 개수대 구멍을 뚫기 위해 독한 약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투여하는 현실에 모두들 입 다물고 있다. 

<환경의 역습>은 방송국 PD가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방영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새집증후군'과 '새학교증후군', '화학물질과민증' 등을 통해 실내공기와 중금속 오염 등에 대해 심각하게 얘기한다. 털어놓는 사례들 대부분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화학물질과민증 환자가 일본이나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새집이나 새학교가 그들 나라에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닌데 우리나라는 그런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단계에 있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환경의 역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화학물질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새집을 짓는 데 사용되는 건축 자재, 자동차, 치과용 재료 등이 침묵의 살인자로 돌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화학물질과민증은 '가면 쓴 질병(다른 질병으로 가장한 병)"으로 불린다. 새집증후군, 빌딩증후군, 새학교증후군 등을 오래 방치해 둘 경우 생겨나는 신종 질환이다. 건강한 사람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화학물질 냄새에도 심하게 반응하여 일상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그리고 치과용 충전재로 쓰이는 아말감은 수은을 흡입하게 해 임산부가 정신지체아나 자폐증 아이를 출산한 위험이 있다. 이유없는 편두통도 아말감에 의한 것이라 의심할 수 있다. 이런 증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그런 탓에 먹고 마시고 숨쉬며 생활하는 환경 속에 만성적인 질병을 유발하는 요인이 숨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환경의 역습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아토피나 화학물질과민증 같은 경우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은 깨끗한 공기를 쐬는 것이다. 완치는 불가능하고 철저한 자기관리로 병세가 호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소비와 밀접하게 관계 맺고 있다. 과대한 소비욕구는 필연적으로 환경을 파괴하게 된다. 그렇다고 현 시스템에서 소비를 줄일 수도 없다. 그렇지만 소비를 하더라도 친환경적인 것을 소비한다면 지금 우리가 직면한 환경의 역습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선택하는 건 정부도 기업도 아닌 우리 소비자의 몫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명한 소비만이 환경을 살릴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깨어있는 사람들에 의한 행동이 필요한 시기이다. 분별없이 마구 화학물질을 배출하고 소비하는 반환경적 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 크게 바꿀 수는 없어도 조금씩 내가 실천할 수 있는 행동부터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기필코 아내에게 설거지 할 때 **락스는 쓰지 말라고 부탁(?)할 참이다. 

 

나는 자연주의로 사는 것이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가급적 인간이 만든 도구를 가하지 않고 태양과 땅과 비를 먹고 자란 음식을 자연 상태로 먹고 사는 것이 자연주의로 사는 기본을 실천하는 것이다.(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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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계절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
도나 타트 지음, 이윤기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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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는 <픽션들> '불사조 교파'에서 비밀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 비밀은 진부하고, 천박하고, 힘들고, 허황되고, 거짓말처럼 보이지만  세상의 끝없는 변천과 전쟁, 민족대이동에도 불구하고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인간의 본능이 되어버렸다고 단정했다. 그만치 비밀은 오랜 세월동안 인간의 내면에서 생성하여 확장되고 고착되어 왔다. 비밀이 없는 인간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것이다. 

<비밀의 계절>은 버니의 죽음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런 출발은 장르소설을 표방했다면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살인에 대한 서두른 표현은 아무래도 독자들에게 흥미를 반감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헨리, 쌍둥이 오누이 찰스와 커밀러, 프랜시스, 버니, 그리고 화자인 리처드는 버몬트 주 햄든 대학의 그리스어 동아리 회원이다. 그들은 줄리언 교수의 지도 아래 디오뉘소스의 환상에 집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은 실제로 광기에 휩싸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살인을 저지르고, 그 살인을 통해 서로 죽음과 맞바꿀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비밀을 가진다는 것, 자기 손으로 세상을 다스리면서 산다는 것의 즐거움을 아는 순간, 내 마음으로 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하권, 380쪽 인용) 헨리의 말처럼 비밀을 가진다는 건 달콤할 때도 있다.

그러나 비밀은 간혹 목숨을 담보하기도 한다. 결코 입밖으로 발설해서는 안 되는 비밀은 입안에 든 독약 캡술과 같다. 언젠가는 깨물 것이기 때문이다. 버니의 죽음은 믿음을 주지 못하는 비밀을 가진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준다. 얼마나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의 기복이 살인이라는 행위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다. 반드시 극적인 동기가 있어야만 살인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것들이다. 모욕, 야유, 피해망상, 그런 것들 때문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연민이나 회한의 느낌없이 살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상권, 398쪽 인용) 러처드의 고백처럼 살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극적이지 않다. 상대에게 모욕을 되갚기 위하거나 비밀의 유지를 위해 살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지고 있다. 나를 지키기 위해 너를 죽이는 게 살인이다.  

추리소설에는 살인의 도구로 유난히 독약이 많이 쓰인다. 독약은 죽음을 상당히 비밀스럽게 포장한다.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도 제1차 세계대전 때 적십자사에 지원하여 알게 된 독약을 그녀의 작품에 많이 사용하고 있다. 도나다트 역시 약물과 독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엿보인다. 그래서일까 <비밀의 계절>은 약물 오남용 사례집(?)같다. 사람들이 시도때도없이 마약과 대마를 흡입하고 수면제와 항정신제를 남용한다. 더러는 감당하기 힘든 비밀이 수많은 날들을 불면과 알코올과 약물에 찌들게 할 것이다. 비밀이 없다하더라도 젊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한때인가 보다.  

<비밀의 계절>은 장르가 모호하다.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경계선에 있다. 천 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이지만 살인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비밀을 가진 젊은이들의 방황과 좌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순문학이라고 하기엔 그리스 고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보이지 않는다. 장르문학이라 하기에는 딱히 긴장감이나 반전도 없다. 그렇더라도 이 책은 분명 몰입하게 한다. 그 이유는 비밀(^-^*)이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자신이 지킬 수 없는 비밀은 만들지도 말거니와 설혹 알아버렸더라도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강력히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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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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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이라는 프로레슬러가 있었다. 7,80년대 배고프고 암울했던 시절 그의 박치기 하나면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일본의 반칙왕 이노키와의 대전이 있는 날이면 온 나라가 들썩였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프로레슬링이 짜여진 각본에 의한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이 눈치챘다. 시나리오만 있을 뿐 상대를 그로기에 빠지게 했던 박치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프로레슬링은 급속도로 외면당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프로레슬러라는 직업은 밥벌이가 걱정스러울 지경이 됐다. 그렇지만 미국은 다르다. WWE를 위시하여 대형 프로모션들이 프로레슬링의 황금시장을 구가하고 있다. 과장되고 트릭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이들이나 어른들 너나없이 프로레슬링을 즐기고 있다.

각설하고, <파피용>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건 프로레슬링이다. 그것도 7,80년대의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김일의 레슬링이 아니라 지금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레슬링이다. 짜고하는 걸 알고 있는 관객을 계속 붙들어두기 위해서 프로레슬링은 갈수록 화려해지고 파격적이 돼 간다. 그야말로 이것저것 총 망라된 버라이어티다. <파피용>도 그렇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관점에 따라 책에 대한 평가도 극명하게 다르지 싶다. 스토리 전개와 치밀한 구성에 중점을 두느냐 아니면 기발한 상상력에 중점을 두느냐로 볼 때, 전자에 중점을 둔 독자라면 베르나르 베르베르 전작에 비하여 엄청 실망할 것이고, 후자에 중점을 둔 독자라면 새로운 시도에 대해 만족할 만한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에 비토를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지만 그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구성이 너무 작위적이고 허술하다는 건 분명하다. 물경, 34킬로미터에 달하는 우주선에 대륙만한 넓이의 날개를 달고 우주를 항해하는 우주선이 <파피용>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는 더 이상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탐욕과 과소비, 끊임없는 전쟁은 태초의 인간과는 너무 큰 괴리감이 보인다. 이대로 있다가는 인간의 생명체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새로운 지구를 찾기 위한 <마지막 희망>이라는 프로젝트를 수립한다. 우역곡절 끝에 선택된 14만 4천 명의 사람들을 태운 파피용 호는 1,200년 동안 우주를 떠돌며 새로운 지구를 찾아 나선다. 

 

작가는 지구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지구를 지탱하고 있는 인간들에 대해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언젠가 이 책장을 뒤적이고 이 글을 읽는 눈들이 있을 것이다. 난 그들이 이것만은 꼭 알아주었으면 한다. 우리가 뿌리를 둔 행성에서 떠나온 것은 그곳에 더 이상 구원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희망은 탈출이며 인간종의 미래가 우주의 다른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321쪽 인용) , 창세기 하느님은 타락한 사람들을 홍수로 심판했다. ‘노아의 방주’에 탔던 생물을 제외하고는 모든 생물이 전멸시켰다. 베르베르도 제2의 창세기를 그리고 있다. 인간에 대한 전망 없음은 무시하고라도, 인간 모두를 없애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치명적인 시도가 어색하기만 하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또옙스키는 노름빚을 갚기 위해 지겹게 글을 썼다. 아폴리네르는 생활고를 타개하기 위해 호색소설 <돈주앙>을 썼다. 요즘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도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노아의 방주'와 '창세기'를 섞어 급조하여 1,200년 동안 항해해도 괜찮은 <파피용>호를 창조해 낸 것까지는 참아주더라도, 그렇게 찾아간 새로운 지구에서의 인간의 행동과 생각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작가 베르베르여! 거리낌없이 휘두르는 조물주 같은 상상력보다는 치밀하게 고민한 <개미>의 진정성이 많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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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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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말일지 몰라도 '몰입'이 책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양서라도 그 책을 읽을 당시 몰입할 수 없었다면 나에게는 그저 그런 책으로 각인될 것이다. 평이한 평가를 받았지만 나를 몰입하게 만든 책은 나의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이고 나에게만은 좋은 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책을 만날 때마다 몰입할 수 있는 책을 만나기를 바란다. 추리소설은 살인이나 범죄를 다루고 있어 인간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일단 유리한 조건에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추리소설 한 권 읽기 정도야 필 받으면 두세 시간만에 뚝딱 해치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슨 무협지 읽듯 추리소설을 읽는가보다. 그렇지만 내가 탐독하고 있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그렇게 읽었다고 하면 나는 적이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치밀하게 짜여진 얼개 속에서 인물들의 심리를 통해 범죄자를 알아가는 과정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순문학 읽는 것 못지 않게 여사의 추리소설 읽기에도 지극정성이 필요하다.

 <ABC 살인사건>는 A,B,C 이름을 가진 사람이 A,B,C 지역에서 죽는다. 거기다가 범인은 에르큘 포와로에게 어느 지역에서 누구를 죽일 것인지 미리 알리는 대범함도 보이며 감히 회색 뇌세포에 도전한다. 살인자는 거침없이 연속 살인에 한방 먹은 에르큘 포와로는 살인에 대해, 살인자도 일종의 도박꾼이라고 할 수 있다. 돈 대신에 생명을 걸고 게임을 하는 셈이지만, 도박꾼들은 자기가 한두 번 돈을 따면 그것이 계속될 줄 믿고 계속하게 되지만 모두 털리게 마련이다. 살인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범행이 몇 번 성공하면 계속 성공할 줄 믿고 계속하지만 언젠가는 실패하게 된다. "그도 도박꾼처럼 언제 살인을 그만두어야 할지 판단을 하지 못한다. 범행이 계속 성공하게 되면 살인자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평가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그는 확률을 무시해 버리고 자신이 매우 영리하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곧, 운이 좋아서 범행에 성공한 것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영리함만을 의식하게 된다."(184쪽 인용) 고 말한다. 끈기 있는 에르큘 포와로와 과감한 범인 간의 머릿싸움은 책의 종반까지 그 승자를 알 수 없게 독자를 이끈다.

전자에서 밝힌 그런 두 조건을 따른다면 분명 나는 <ABC 살인사건>을 엄청 재미있게 읽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두번째 읽는 탓도 있겠지만, 읽는 내내 나를 괴롭힌 건 시간이었다. 바쁜 일상이 때로는 추리소설 같이 짧은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책 읽기에 잠시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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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의 말로 편지를 쓴다
도종환 엮음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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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도종환 시인의 초청 강연이 있는 날이다. 강연장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적어 썰렁하다. 하기사 업무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시를 읽고 얘기한다는 게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이런 기회를 통해 어릴 적 읊조렸던 시를 다시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지 싶은데 여건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어쨌든 시인이 사랑받고 환영받지 못하는 사회가 안스러울 뿐이다. 

 

어머니에 대한 시극을 한 편 보니, 강사 도종환 시인이 등장한다. 어딘가 모르게 정갈한 맛이 난다.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집으로 한때 시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시인이지만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다. 강연을 많이 다녀서인지, 아니면 평생 시를 먹고 살아서 그런지 구사하는 어휘가 깔끔하다. 어디 하나 모난 말 없이 목사님 같은 톤으로 쉬임없이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꾼다.

 

<꽃잎의 말로 편지를 쓴다>는 30만의 온라인 독자에게 매주 보낸 한 편의 시를 모아서 묶은 시집이다. 일년 열두 달 속에 기념일이나 절기와 맞물려 있는 시들로 구성돼 있다. 도종환 시인은 매주 한 편의 시를 배달하는 문학집배원이다. 일주일에 시 한 편을 읽는 것과 읽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없지만, 일년 동안 매주 시를 읽는 사람과 시 한 편도 읽지 않고 사는 사람의 정서적 문화적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시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시인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시를 가까이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기를 염원해 본다. 

 

시 읽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

 

성당 부근

                     <정세기>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계수나무 한 그루가 서 있던

성당 가까이에 살던 그해 겨울

지붕들이 낮게 엎드려

소리 없이 젖어 잠들고

그런 밤에 내려온 별들은

읽다 만 성경구절을

성에 낀 창틈으로 들여다보았다

눈사람이 지키는 골목길을 질러

상한 바람이 잉잉 울고 간 슬픔을

연줄 걸린 전깃줄이 함께 울고

측백나무 울타리 너머

종소리가 은은한 향기로 울려퍼지면

저녁 미사를 보러 가는 사람들

그들의 긴 그림자도 젖어 있었다

담벼락에 기댄 장작더미 위로

쌓이던 달빛이 스러지고 사랑하라

사랑하라며 창가에 흔들리던 촛불도 꺼진 밤

그레고리안 성가의 낮은 음계를 밟고

양떼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성당 뜨락엔 마리아상 홀로 남아

산수유 열매 같은 알전구 불빛을 따 담고 있었다.

 

(이 시는 12월 네째주 추천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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