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신장판 1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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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해외배송으로 주문해도 금방 도착하더라.

받아본 듄 전집은 멋스러운 디자인의 표지로, 두께가 주는 볼륨감이 그 위용을 과시했다. 과연 내가 이 정도 볼륨의 대작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지레 겁이 날 정도의 볼륨이었다.

그 것도 그럴 것이, 듄 1권은 부록제외 본편만 보더라도 892페이지에 달한다. 압도되지 않는게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 아무도 보채지 않으니 천천히 너의 페이스로 읽으라며 내 자신을 타일렀다.

정말 처음엔 읽는 속도가 엄청 더디긴 했다. 근 10년 가까이 독서와 담을 쌓고 살았다가 다시 책을 잡자니 어릴 때의 그 집중력을 되찾는데 시간도 걸렸다. 즉 독서도 꾸준함을 요하는 트레이닝과 같아서, 긴 시간 않하고 살면 독서하는 감각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영화와 겹치는 초중반 부분은 확실히 아는 내용을 본다는 점에서도 복습을 하는 기분이라 재미가 반감된 부분도 없지않아 있었다.

영화와 겹치는 초중반 부분은, 읽을 수록 영화가 얼마나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는지를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는 구간이라 그런 요소의 재미는 있었다.

그렇게 영화내용을 떠올려 비교해가며 읽다보니 어느 새, 영화의 끝나는 부분 쯤까지 도달했는데, 이 이후부터 읽는 속도에 가속도가 확연히 붙기 시작했다. 대략 1권을 완독하는데 거의 40일 걸렸는데, 이 초중반 부분이 30일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 중후반은 10일만에 읽었다.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가 스틸가와 만나 프레멘의 일원으로 아라키스의 삶의 방식을 흡수하고 그들과 동화되어 가는 이 시점부터가 서사적으로도 본격적으로 에스컬레이트하는 지점이라 가속도가 붙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후의 내용은 생략하고 그렇게 완독하여 책을 덮었을 때, 말로 할 수 없는 경건함과 고양감이 덮쳐와 긴 시간 가시질 않고 진한 여운이 감돌았다.

이런 대서사를 쓴 프랭크 허버트라는 작가의 선견지명과 통찰력에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인류에 대한 이해와 성찰, 그리고 종교가 가진 습성과 폐해, 영웅이 가진 딜레마와 집단지성의 파급력을 다 담아내면서, 서사적으로도 완벽에 가깝게 창작해냈다. 그리고 듄이라는 세계관을 디자인해낸 상상력과, 세밀한 디테일은, 정말 아라키스행성에서 한 몇년 프레멘 체험으로 살다온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마치 인류의 미래, 세상의 이치를 본 것 같은 착각마저 주는 이 작품이 출간된게 1965년이다. 열역학법칙, 중력가속도 뭐 이런 것만 풀어냈다고 천재가 아니다. 프랭크 허버트가 천재가 아니라면 누가 또 천재일 수 있겠는가.

드니 빌뇌브 감독이 만들어 준 원작의 대한 기대는, 만족한 수준을 넘어서 넘치도록 충족했다. 이번엔 다시 원작이 드니 빌뇌브 감독의 속편에 대한 기대의 공을 넘겼다. 나를 포함한 원작의 팬들이 거는 파트2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고 진중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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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1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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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 감독이 만들어 준 원작의 대한 기대는, 만족한 수준을 넘어서 넘치도록 충족했다. 이번엔 다시 프랭크 허버트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속편에 대한 기대의 공을 넘겼다. 나를 포함한 원작의 팬들이 거는 파트2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고 진중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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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1 - 바이러스 밀리언셀러 클럽 45
스즈키 코지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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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 초등학생 5~6학년 쯤이 었을 거다. 외할머니 집에 귀성했을 때, 외삼촌 방 책장에서 링 바이러스, 링 스파이럴, 링 루프 전권이 꽂혀있는 걸 목격했다. 

 그 즈음부터 나는 묵향이라던지 비뢰도 같은 무협지를 탐독하던 책벌레 초기단계였기에 이 목격은 지루한 할머니 댁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다가 힘껏 뛰놀던 사촌동생들이 지친 저녁시간부터 외삼촌 방에 홀로 틀어박혀 링을 펼쳤고, 그대로 밤을 새가며 그 자리에서 1권을 다 읽어버렸다.

 책을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영상과 사운드없이 텍스트만으로 느낀 서늘한 공포때문이었다. 잠이 부족한지도 모르고 다음날도 이어서 링 스파이럴을 읽어나가다가 집에 돌아가야할 시간이 다가왔을 때, 도저히 이 책을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외삼촌 물건을 허락도 없이 집에 가져와버렸다.


 아마 이 때부터였을 거다.

내가 무협지나 판타지소설을 점차 멀리하게 되고, 일본문학만을 고집하여 탐독하게 된 것이.

일본문학 특유의 담담하고 건조하면서 미사여구가 절제된 담백한 문체에 매료되어, 북미나 유럽권 소설의 문체는 느끼하고 불친절하다며 편식하게 되고, 한국소설의 장황하면서도 미사여구를 구태여 쓰고싶어 안달난 듯한 문체를 몸이 거부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나쁜 편식과 편견이 생겨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원서를 읽은게 아니니 일본문학의 문체가 어쩌구, 영미권 문체가 어쩌구 하는 건 바보같은 생각이다. 일문학 번역작가 분들이 분위기와 작가의 개성을 잘 살려 읽기 쉽게 번역해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양억관, 김난주 번역가님 등 너무나 익숙한 이름의 그 분들에게 새삼스레 경의를 표하고 싶다.)

아무튼 링이 계기가 되어,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순으로 일문학의 늪에 빠져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링은 나에겐 더욱 상징적이고, 평생 잊을 수 없는 기념비작품인데, 1권을 친구 누군가에게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하고, 그게 누구였는 지도 잊은 채로 시간이 흘러, 지금도 실가(実家)의 내 책장엔 2,3권만이 남아있다. 다시 읽고싶어도 1권이 없어서 늘 답답먹먹했던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현재로 돌아와 서른이 넘은 지금의 나는 일본에 살고 있다.

일본문학을 좋아하게 된 계기로 일본어를 배우게 되고, 일본어를 배우다보니, 일본 드라마도 보게 되고, 그러다가 어물쩡 대학까지 일본어를 전공하고, 어느 새 일본에서 정착하여 일본인과 결혼한 걸 보면 새삼 신기하기도 하다.

되돌아보면 과장을 조금 보태 이 작품, 스즈키 코지의 링이 불러온 나비효과가 아닐까 싶다.

링에 대한 추억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20년 넘게 지난 지금 원서로 링을 다시 접하게 된 건 계획에 없던 충동에 의해서였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 들른 서점에서, 찾고있던 책(엔더스게임)이 들른 서점에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빈손으로 돌아가기가 아쉬워 SF소설 코너 근처를 배회했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일본도 SF소설의 인기는 코너 크기에서 실감하듯 불모지에 가깝다. 워낙 자국내에서도 훌륭한 작가들이 많아, 굳이 외국계 SF소설까지 가지 않아도 일본의 국내소설을 섭렵하기만으로도 벅차서 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 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일본발 SF소설은 어떤 소설이 유명할까? 였다.

그 자리에 서서 폰을 꺼내 일본 국내 SF소설 이라고 검색해보았다.

영원의 제로, 요코하마역SF, 일본침몰 등이 리스트업 되있었는데 그 중에 신세계에서라는 소설에서 스크롤을 멈췄다. 왜냐면 익숙한 작가 기시 유스케의 작품이었기 때문인데, 그는 일본소설작가중 손가락에 꼽는 내 취향 작가이다. 그의 작품 중에는 검은 집이라는 굴지의 명작이 있고 그 작품 또한 텍스트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서늘한 소름이 있었다. 이렇게 사고의 흐름이 흘러가자 자연스레 머리속에 잊고 살던 링이 떠올랐다.

링 또한 일본이 낳은 훌륭한 SF소설이 아니던가? 라센(스파이럴)부터 급격히 SF 노선을 타는 링은 오늘 내가 찾는 적격의 작품이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곧장 재고 검색대에서 링을 찾아보고 오리지널뿐이었지만 재고가 있다는 사실에 망설임 없이 그걸 사게 되었다.


 초등생 시절 이후 다시 읽은 링은 변함없이 깊은 몰입감과, 끝맺는 타이밍의 적절함이 아직도 가슴의 고동을 느끼게 하는 고양감을 남겨주었다.

시종일관 아사카와에 빙의되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일주일을 함께 보내며 살 방법을 찾아나서는 모험이 군더더기없이 스피디하게 휘몰아쳐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초조함과 무력감을 같이 공유했다.

그 정도로 숨막히는 전개와 감정묘사가 출중한 작품이었고, 납득 할 수 밖에 없는 과정과 결과가 거기에 있었다.

사다코를 만난 남자들 모두가 그러했 듯 사다코에게 묘하게 끌리는 연모감이 어느새 독자인 나에게도 생기게 되는 묘한 리얼함과 어떠한 말로도 위로하기 힘든 비참한 그녀의 생애를 알게되면, 무차별적 살인바이러스를 퍼트리려는 그녀의 극악한 의도를 마냥 비난할 순 없을 것이다.

작중 초반 젊은 남녀 넷의 동일동시 심장마비로 죽은 것에 대해 바이러스를 의심한다던지, 류지와 아사카와의 대화에서 바이러스는 절멸시킬 수 있냐는 대화내용이라던지, 공식적인 천연두 바이러스의 마지막 감염자에게 강간당한 비공식 마지막 감염자가 사다코라던지, 바이러스에 대한 복선을 계속 깔아둔다.

"바이러스는 절멸시킬 수 있는가?"

바이러스의 생존욕과 증식욕이, 더 이상 타인에게 증식될 수 없는 밀실속의 숙주를 만났을 때, 그 숙주가 하필 세상에 대한 헤아리기 어려운 원한을 가진 초능력자일 때, 바이러스는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고 어떻게 증식할 방법을 찾을까? 이 질문에 대한 스즈키 코지의 대답이 바로 링1권이다.

아직 사다코가 전개하려는 빅픽쳐의 원인과 동기를 알게된 빌드업 부분만 읽은 거나 다름없는데, 이 빌드업만으로도 이 정도의 몰입감을 뽑아내는 그의 필력에 인정박고 또 인정이라며 박수 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내 모습을 보며 실소를 머금은 채 리뷰를 마무리 하려한다.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빨라진 전형적인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어진 불쌍한 어른의 시기에, 점점 쌓여가는 책장을 보면 라센과 루프를 또 언제 읽고 리뷰할 수 있을 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라센 리뷰로 다시 돌아오길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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