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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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의 타고난 성품이 긍정적이고 강인한 면이 있었고 이것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성향이다. 이 가족을 알고 있는 주위 사람들은 모두 어머니와 지현을 함께 평가하며 그들의 긍정성과 강인함을 얘기했다. 여기에 더해서 가난하고 불우했지만 어머니, 동생과 똘똘뭉쳐서 서로를 돌봐주었던 결속감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고전적인 얘기이고 교과서 같은 얘기이지만, 가족 내 결속이 여러 가지 역경을 극복하는 힘이 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런데 이런 외적인 조건 외에도 지현에게는 분명 다른 힘이 더 있었다. 나는 이를 ‘성찰하는 힘‘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수많은 청소년 인터뷰이 중에서 성공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친구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다. 성찰하는 힘은 인간이 사회적·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덕목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외적인 지식(예를 들어, 학력)과 외형적모습(예를 들어, 재산, 직장)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평가하면서 자신을 돌보고 스스로 자기 욕망과 사회적 위치를 사고하고 판단하는 내면적 성숙도, 즉 성찰하는 힘에 대해서는 참 소홀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우리의 교육체계는 청소년에게 이 성찰하는 힘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교육과정 안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저 단어를 외우고 문제를 풀어서 시간 내에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내는 점수를 받아야 성공하는 교육체계를 ‘공정’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성공적으로 빈곤을 극복한 청년들은 이런 교육체계 안에서 성찰하는 힘을 기르고 자신의 가치체계를 만들어냈다. 성찰하는 힘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그들은 자신의 시각과 신념을 구축했다. 이 빈곤 청소년들은 학업성취가 낮고 당장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일 수 있지만 자신만의 단단한 핵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생존’을 넘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를 인식하면서 성찰하는 힘을 길러왔을 것이다.
이러한 힘은 짧은 기간 안에 만들어질 수 없고, 단순하고 안전한 삶의 궤적 안에서 형성되기 어렵다. 다양한 경험과 시도, 좌절, 고통, 성취 등의 단계를 거쳐야 서서히 쌓여가는 내면의 힘이 된다.

가난 때문에 의식주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없다는 것은 그냥 불편한 정도를 넘어, 사회적 개체로서 ‘나’의 위신과 존재가 부정당하는 일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자아는 자신감을 상실하고 사회적 존재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끼고 자신의 욕구에 대해 둔감해진다. 흔히들 빈곤층은 왜 미래를 위해 저축하지 않고, 왜 절박한 순간에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고, 왜 자신의 계급적 이해와 배치되는 선택을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가난하다는 것ㅇ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재화가 없음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고 사회적 존재가 일상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에 대처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한다. 즉, 생존 자체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합리적 판단을 하고 미래 지향적 사고를 할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빈곤층이 전략적 사고나 내면의 강인한 힘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빈곤 정책을 고민할 때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나 기회 제공을 넘어서서 다른 차원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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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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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을 창피해서 감추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지현의 태도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더욱이 지현 나이 또래의 친구들 중 빈곤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태도였을 것이다. 가난을 증명하는 글을 써서 장학금을 받는 일이 왜 부끄럽지 않은가. 왜 저렇게 당당하며 가난이 자신의 강점으로 둔갑하는가.
나는 지현이 긍정적으로 살아오며 빈곤을ㄹ 극복한 진짜 힘이 여기에 있다고 보았다. 가난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일 뿐이지, 내 잘못도 죄도 아니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지현은 간파하고 있었다. 다만 가난에 대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시선에 맞서 싸우는 일이 버거웠을 뿐이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지현의 전략이 영리하고 훌륭했던 것은 세상의 편견과 시선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해나갔다는 점이다. - P82

낙인감을 얘기할 때 고려해야 할 것:

우리 사회에는 현재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을 도와주는 인프라가 다양하게 구축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한국사회의 공공영역 지출은 여전히 매우 적다.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을 도와주는 대부분의 인프라는 종교시설, 개인 독지가에 의한 사회복지시설, 사회단체 등이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공공부문보다 민간부문이 많다 보니 ‘사회복지’는 보편적이고 제도적인 시스템이라기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선별해서 ‘시혜적’ 시선을 담아 도와준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런 구조는 빈곤층이 직접 ‘가난을 증명’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사회 풍토를 만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한 존재이다.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신과 자존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정체감)이 삶에 필수적인 바탕이 된다. 그러므로 이를 훼손하면서까지 경제적 도움을 얻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가난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 표현’과 ‘도움 요청’은 자칫 위신과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장하는 청소년의 경우에는 이러한 행위가 교우관계나 자아정체감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떤 계층, 어떤 연령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표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가 가난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특성도 한몫 거든다. 한국사회는 100년 가까운 근현대사 동안 독립과 내전, 산업 부흥을 겪어왔다. 국가라는 공적 시슽템이 약했기 때문에 그 격동기를 ‘가족-우리’라는 사적 공동체와 ‘우수한 인력 양성’으로 버텨온 내성이 있다. 덕분에 한국사회는 현재와 같은 경제대국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약자에 대한 공격, 과도한 경쟁체계, 승자독식에 관대한 사회가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우리 사회에서 ‘가난’은 사회적,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약한 개인의 문제이며, 개인이 게으르고 똑똑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한국의 사회복지 제도가 발달하지 못하고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이유가 여기에 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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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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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한 가정을 갖고 싶다는 가난한 청소년들의 소망은 정상가족 프레임 밖에 있었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반응이다. 이들은 정상가족을 지키지 못했어도 부모님에게 잘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한다. 이것은 그 프레임 밖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했고,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지켜준 존재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영성이 부모님께 더 잘해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을 갖는 것도, 부모님이 힘들게 정상가족을 지켜서 주류질서로 돌아온 데 대한 감상인 셈이다. 그 마음은 아름답지만, 반대 편에서 멍들고 있을 많은 청소년들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정상가족’보다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더 얘기하고 관심을 모아야 한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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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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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견디는 게 삶의 힘

네 번째 만났을 때, 소희는 스물네 살이었다. 겉으로는 어느 대학생과 같아 보였다. 처음 봤던 열일곱 살 때보다 안정되어 있었고 자신의 길을 찾은 것 같았다. 또 지금껏 자신이 찾은 길로 열심히 매진해왔으니 이제 마무리만 잘 지으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속내는 달랐다. 여전히 관계 맺기가 어려웠고, 학교라는 환경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정신없이 바빠서 감정을 돌볼 수 없을 때는 몰랐지만 그러지 않을 때는 두려움과 불안이 스멀스멀 엄습했다. 소희는 스스로 "견디는 삶"이라고 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는데 안을 깊이 들여다보면 청소년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요. 이걸 극복해야 하는데 안 되니까, 나아가야 하는데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감정이 폭발할 때와 다시 잠잠할 때, 다시 폭발할 때, 이게 너무 들쭉날쭉하다 보니까 굉장히 힘들더라구요. 근데 다들 그래요. "너는 괜찮아졌다." "잘 살고 있다." "잘 사는 것 같다." 제가 저 스스로 굉장히 불안한 상황인데 다들 괜찮다니까 표현을 못 하고 있어요. 계속 견뎌내는 게 삶의 힘인 것 같아요. 포기하지 않고 이 힘듦을 견뎌내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것. 포기하지 않게끔 다른 데서 힘을 얻어야 하는데 그럴만한 곳이 없어요. 저 스스로 힘을 내야 하는데 이제 지치더라고요.

소희가 대인관계에서 불안을 느끼는 또 하나의 원인에는 끝없는 죄책감과 자신의 이중성에 대한 환멸이 있었다. 가출과 동거를 반복하던 시절, 비행을 저지르던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의 모습과 지금 대학생으로 변화한 자신의 모습에서 간극을 경험했고, 그 괴리감 속에서 자신이 가식적이라는 생각, 본래의 모습을 찾지 못하는 데서 오는 소외감 등을 느끼고 있었다 소희는 사회적 규범을 넘나들었던 과거와 화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단 이 문제는 소희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소희가 혼자서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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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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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상상을 하는 이유는) 실질적으로는 죽는 것보다 누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게 더 크겠죠? 그런데 안 풀리더라구요. 그래서 아직도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답답할 때도 있고… 왜냐면 얘기는 어떻게 됐든 할 수 있잖아요? 근데 제가 갖고 있느느감정들까지는 전달이 안 되잖아요. 아, 나 힘들어 그것뿐이잖아요. 사람이 보통 다른 사람이 힘든 것보다 내가 힘든 게 더 크게 느껴지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얘기해도 별로… 더 우울해져요.

소희의 우울함은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자신을 잡아주고 힘든 삶에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절박함 속에 있었다. 소희는 친밀한 누군가와의 관계를 그리워하고 사람들이 무섭지만 끊임없이 누군가의 애정을 갈구했다. 그것은 다 자신이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그렇다고 했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삶


소희네 가족은 가난이 대물림되는 양상을 잘 보여준다. 조부모의 가난과 병력이 부모의 양육 조건을 부실하게 해서 어머니는 교육과 돌봄이 결핍된 성장기를 보냈다. 그 결과 어머니는 학력과 노동 능력이라는 사회적 기반을 얻지 못했고 한부모가 되어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자녀들을 양육했다. 게다가 우울증까지 앓게 되면서 이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나 바람까지 약화되었다. 의지할만한 다른 가족도 없이 정신적,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만성적으로 빠졌다. 어머니는 소희에게 ‘신경을 안쓴’ 게 아니라 ‘신경을 쓸 수 없었’던 셈이다.
소희는 어머니의 취약성 때문에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성장하였다. 소희가 말한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삶"은 이런 교육과 돌봄의 공백 속에 위치한다. 사실, 소희에게 잡아줄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소희 어머니도 누구도 잡아주지 않는 외로운 삶이었다. 소의내 가족의 대를 이어온 가난은 전형적으로 환경에 의해 축적되어온 양상을 띤다. 한 개인의 힘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고 볼 수 있고, 오히려 이 열악한 상황에서 어머니를 지탱하게 해 준 것은 소희와 소희 오빠였는지도 모른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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