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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페이지 저자, 송섬별 역자 / 반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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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이 지닌 양가성을 다룬 소설 <마더 나이트>를 읽고 있었다. "우리는 우기가 흉내 내는 그 사람이 되므로, 어떤 사람을 흉내 낼지 신중히 골라야 한다."라고 보니것은 썼다. - P24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 사이에 수많은 잡음이 끼어들었다는 사실이 정말 슬프다. 문득 발을 미끄러뜨리는 시커먼 바위가 솟아나 우리 둘을 아래로 넘어뜨린 거다. - P53

아버지를 용서하기는 그만큼 쉽지 않았다. "당장 토론토롤 가서 네 엉덩이를 걷어차 주마." 자기 자식이 보호를 필요로 했을 때, 자기 자식이 사랑을 필요로 했을 때, 그는 폭력을 가하겠다고 위협했다. 미성년자인 내가 겁도 없이 성인 남자와 인터넷으로 교류했다는 이유로 노여워했다. 그 순간에 내게 돌봄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 순간에 내게 안전과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영영 그런 것을 얻을 날은 없지 않을까? 아버지의 그 한마디 말은 그 남자의 위협보다, 그의 집착보다, 내 팔을 훑던 그의 손가락보다 내 몸속에 더욱 오래 머물렀다. - P89

"그럴 줄 알았어, 넌 동성애자잖아!"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렇게 반응했다.
마치 이런 노력을 애써 사소한 것으로 일축하고자 하는 듯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경험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그 경험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권력을 여기저기에 과시하고 다니면서, 자신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없었다. 나는 숙이고, 받아들이고, 그저 마음속에서 삭일 뿐이었다. - P109

내가 퀴어라는 것 때문에 벌을 받는 와중에도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대놓고 학대하면서도 보호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뒤틀린 체계에서 잔혹성은 보편적이며 평범하게 보이고, 이를 해소하고 전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도리어 이상해 보인다." 꼭 읽어 볼 만한 책인 세라 슐먼Sarah Schulman의 <끈끈한 유대감: 가족 내의 호모포비아와 그 결과>에 나오는 구절이다. - P163

로스엔젤레스의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거나 그들이 영영 읽지 않을 책을 사 주면 대체로 무시당하곤 했다. 자원 이용, 기후위기, 기후위기가 얼마나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지, 그것이 가장 취약한 이들부터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 대가는 상상하기도 힘들만큼 클 것이라는 이야기, 얼마 남지 않은 사회의 붕괴와 그 속에서의 우리의 역할 같은 주제로 논의를 하려 들면 그들은 너무 드라마틱한 거 아니야? 하며 나를 향해 킥킥 웃었다.
대부분은 "너 오버하는 거 같아."라는 반응을 보였다.
"넌 레즈비언 히피야." 이렇게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면 난 답답했고,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으며, 관심과 공감을 얻지 못해 기운이 빠졌다. 부유함은 자격이 있다고 여기게 되는 마음을 부추키고, 자격을 얻으려면 무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독선적이며 타인을 재단하는 나의 성정은 로스엔젤레스에서 불필요한 소비를 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의 죄책감을 경감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 P178

성장과 확장을 멈추고 싶지 않았고, 멈추게 될까 봐 겁이 났다. 더욱 성장하려고 애썼고, 독선을 버려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언제나 배워야 할 게 더 있었다. - P188

좋아, 이번에는 말하는 거야. 이번만큼은 내 목소리를 내는 거야.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왜 저한테 그런 식으로 말씀하세요?"
연습했다. 이것도 연기인가?
그러나 당연하게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온 힘을 다할 수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계단 위아래를 향해 인사를 건네고 나면, 스니커즈를 채 벗기도 전에 등이 아프고, 불안해지고, 배 속에는 가스가 차고, 가슴 속에 벽돌을 품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본능적인 기부느 재단하는 눈길들. 그 기분은 여태 한 다짐을 낚아챈 뒤 린다가 크럼블에 넣는 피칸처럼 가루로 만들어버린다. 끈을 당겨 자동적인 반응만 되풀이하는 인형처럼, 진짜조차도 아니었다. 이제와 돌아보면 나는 린다에게 사랑받고 아버지를 흡족하게 하려고 내가 소진될 때까지 온 힘을 다했다. 아버지가 내 편을 들어 주지 않는다면 분명 내가 문제일 테니까, 또, 언젠가는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안전한 기분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결국 나는 집에 발길을 끊게 됐다. - P223

세상은 우리가 트랜스가 아니라 정신병자라고 말한다.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수치스러워 내 신체를 훼손했다고, 나는 영영 여성일 것이라고 말하며 내 몸을 나치의 실험에 비유한다. 병에 시달리는 것은 트랜스가 아니라 이런 혐오를 길러내는 사회다. 배우이자 작가 젠 리처즈Jen Richards는 이렇게 표현한 적 있다.

10년 전에 트랜지션을 한 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고 건강하며, 친구와 가족들과의 관계도 좋아졌고, 더 나은, 더 참여하는 시민으로 살고, 그뿐 아니라 더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다가…… 모르는 사람들이 내 선택을 병적인 것이라 말하는 모습을 보면 초현실적인 기분이 든다. 내가 트랜스라는 걸 생각할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것은 나를 사회 정의에 더욱 공감하고 참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는 것 외에는 내 현재와 거의 관련이 없는, 내 과거에 관한 사실일 뿐이다. 어떻게 그것이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는가? 어째서 나의 평화에 독설, 폭력, 보호가 필요한가? - P289

이 푸른색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색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 된다.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그 속에 자리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의 여지 없이. - P327

자신의 존재가 끊임없이 논쟁과 부정의 대상이 되는 일은 우리를 고갈시키고 만다. - P385

자신의 진실을 묻고, 확인하고, 자신에게 그리고 나아가 세상에 말하는 일이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일임을 그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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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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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문화와 갈등하면서도 자신 있게 살아가려면 우리의 직접적인 환경에서 작동하는 가치체계, 우리가 사교적으로 어울리는 사람들, 우리가 읽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 - P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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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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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 접근방법의 장점은 심리적인 면에서 드러난다. 누가 우리에게 반대하거나 우리를 무시할 때마다 상처를 입는 대신 먼저 그 사람의 그런 행동이 정당한지 검토해보게 되기 때문이다. 비난 가운데도 오직 진실한 비난만이 우리의 자존심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며 자학하는 습관을 버리고 그들의 의견이 과연 귀를 기울일 만한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 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러졌다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점차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철학저거 염세주의의 중요한 모범을 보여준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묻는다. 정말로 그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할까? 우리의 자존심을 카드놀이 하는 집단에게 내맡기는 것이 분별력 있는 일일까? 이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존중한다 해도 그 존중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일일까?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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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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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존심 역시 다른 사람들이 부여하는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우호적인 시선을 받고 싶은 강렬한 요구는 과거와 다름없이 우리 생각을 지배한다.

이성의 규칙에 따르면 주어진 결론은 타당성 있는 최초의 전제에서 출발하여 일련의 논리적 사고를 거쳐 도출되었을 경우에만, 오직 그런 경우에만 참으로 간주된다.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167)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성품이나 업적에 대하여 하는 말 때문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며, 먼저 이성으로 그런 말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품위는] 다른 사람의 증언에 좌우되지 않는다."

"칭찬을 받으면 더 나아지는가? 에메랄드가 칭찬을 받지 못한다고 더 나빠진다더냐?" 마르쿠스는 칭찬을 받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고, 모욕을 당했다고 괴로워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파악하라고 권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경멸하는가? 경멸하라고 해라. 나는 경멸을 받을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비난이나 질책이 무조건 근거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가치 평가를 지적인 양심에 맡기는 것은 무조건적 사랑을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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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사회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 더 넓은 의미에서는 세상의 눈으로 본 사람의 가치나 중요성 - P6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다. - P12

사랑은 일종의 존중이라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존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정의해볼 수도 있겠다.

낮은 지위가 끼치는 영향은 물질적인 맥락에서만 볼 수 없다. 낮은 지위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들을 낳기 때문이다. - P16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람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자신의 인격을 신뢰할 수도 없고 그 인격을 따라 살 수도 없다. - P22

속물이란 하나의 가치 척도를 지나치게 떠벌이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 지나치게 물질적인 것만 탐내고 과시하는 사람만 속물인 것은 아니다. 자신의 지식을 지나치게 과시하는 것도 속물이다. 매사에 속물이 되지 말자 - P31

속물은 독립적 판단을 할 능력이 없는 데다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갈망한다. 따라서 언론의 분위기가 그들의 사고를 결정해버리는데, 그 수준은 위험할 정도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다 보면 결국은 두려움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우리 자신이 속물적 전술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기도 힘들다. 이 병은 애초에 집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 속물근성에 분개했다고 해서 그 뒤에 점차 스스로 속물이 되어가지 말란 법도 없다. 거만한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자 하는 갈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눈에 두드러지는 집단의 속물근성은 모든 사람을 사회적 야심의 방향으로 유도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런 야심을 못마땅해하다가도, 어느새 그것이 사랑과 인정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하게 확실한 수단인 양 쫓아다니게 된다. - P34

서양 문명 2000년의 장점은 이제 익숙하다 무엇보다도 부, 식량, 과학 지식, 소비 물자, 신체적 안전, 기대 수명, 경제적 기회 등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상적인 물질적 발전은 서구의 보통 시민에게 지위로 인한 불안의 수준이 높아지게 만들었다. 즉 자리, 성취, 수입을 높고 걱정이 늘었다.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외려 늘어나기까지 했다.

어떤 것이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심리를 생각해보면 이런 박탈감도 그렇게 이상할 것은 없다. 어떤 것-예를 들어 부나 존중-의 적절한 수준은 결코 독립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준거집단, 즉 우리와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조건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하여 결정된다. 우리가 함께 자라고, 함께 일하고, 친구로 사귀고, 공적인 영역에서 동일시하는 사람들만큼 가졌을 때, 또는 그보다 약간 거 가졌을 때만 우리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 - P70

훌륭하고 똑똑하고, 유능한데도 왜 여전히 가난한가 하는 문제는 새로운 능력주의 시대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이 답을 해야 하는(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더 모질고 괴로운 문제가 되었다.

부와 가난의 분배가 정의롭게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19세기의 사회진화론 철학보다 분명하게 표현한 사상은 없을 것이다.

사회진화론자들은 모든 인간이 처음에는 돈, 일자리, 존경이라는 빈약한 자원을 놓고 공정한 경쟁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 경쟁에서 일부는 우위를 차지하는데, 그것은 부당한 이점이나 운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뒤처진 사람들보다 본질적으로 나은 데가 있기 때문이다.

부자는 생물학적 원리가 강해서 부자가 된 것이고, 빈자 역시 생물학적인 원리가 원했기 때문에 빈자가 된 것이다.

사회진화론의 관점에 직접 동의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도 이 철학의 핵심적인 가정 하나는 지지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불필요하고 어쩌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할 힘이 있다면, 하층 계급들을 지원하는 정치적 행동은 그저 실패에 보상을 해주는 일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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