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이 지닌 양가성을 다룬 소설 <마더 나이트>를 읽고 있었다. "우리는 우기가 흉내 내는 그 사람이 되므로, 어떤 사람을 흉내 낼지 신중히 골라야 한다."라고 보니것은 썼다. - P24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 사이에 수많은 잡음이 끼어들었다는 사실이 정말 슬프다. 문득 발을 미끄러뜨리는 시커먼 바위가 솟아나 우리 둘을 아래로 넘어뜨린 거다. - P53
아버지를 용서하기는 그만큼 쉽지 않았다. "당장 토론토롤 가서 네 엉덩이를 걷어차 주마." 자기 자식이 보호를 필요로 했을 때, 자기 자식이 사랑을 필요로 했을 때, 그는 폭력을 가하겠다고 위협했다. 미성년자인 내가 겁도 없이 성인 남자와 인터넷으로 교류했다는 이유로 노여워했다. 그 순간에 내게 돌봄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 순간에 내게 안전과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영영 그런 것을 얻을 날은 없지 않을까? 아버지의 그 한마디 말은 그 남자의 위협보다, 그의 집착보다, 내 팔을 훑던 그의 손가락보다 내 몸속에 더욱 오래 머물렀다. - P89
"그럴 줄 알았어, 넌 동성애자잖아!"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렇게 반응했다. 마치 이런 노력을 애써 사소한 것으로 일축하고자 하는 듯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경험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그 경험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권력을 여기저기에 과시하고 다니면서, 자신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없었다. 나는 숙이고, 받아들이고, 그저 마음속에서 삭일 뿐이었다. - P109
내가 퀴어라는 것 때문에 벌을 받는 와중에도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대놓고 학대하면서도 보호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뒤틀린 체계에서 잔혹성은 보편적이며 평범하게 보이고, 이를 해소하고 전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도리어 이상해 보인다." 꼭 읽어 볼 만한 책인 세라 슐먼Sarah Schulman의 <끈끈한 유대감: 가족 내의 호모포비아와 그 결과>에 나오는 구절이다. - P163
로스엔젤레스의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거나 그들이 영영 읽지 않을 책을 사 주면 대체로 무시당하곤 했다. 자원 이용, 기후위기, 기후위기가 얼마나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지, 그것이 가장 취약한 이들부터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 대가는 상상하기도 힘들만큼 클 것이라는 이야기, 얼마 남지 않은 사회의 붕괴와 그 속에서의 우리의 역할 같은 주제로 논의를 하려 들면 그들은 너무 드라마틱한 거 아니야? 하며 나를 향해 킥킥 웃었다. 대부분은 "너 오버하는 거 같아."라는 반응을 보였다. "넌 레즈비언 히피야." 이렇게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면 난 답답했고,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으며, 관심과 공감을 얻지 못해 기운이 빠졌다. 부유함은 자격이 있다고 여기게 되는 마음을 부추키고, 자격을 얻으려면 무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독선적이며 타인을 재단하는 나의 성정은 로스엔젤레스에서 불필요한 소비를 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의 죄책감을 경감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 P178
성장과 확장을 멈추고 싶지 않았고, 멈추게 될까 봐 겁이 났다. 더욱 성장하려고 애썼고, 독선을 버려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언제나 배워야 할 게 더 있었다. - P188
좋아, 이번에는 말하는 거야. 이번만큼은 내 목소리를 내는 거야.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왜 저한테 그런 식으로 말씀하세요?" 연습했다. 이것도 연기인가? 그러나 당연하게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온 힘을 다할 수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계단 위아래를 향해 인사를 건네고 나면, 스니커즈를 채 벗기도 전에 등이 아프고, 불안해지고, 배 속에는 가스가 차고, 가슴 속에 벽돌을 품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본능적인 기부느 재단하는 눈길들. 그 기분은 여태 한 다짐을 낚아챈 뒤 린다가 크럼블에 넣는 피칸처럼 가루로 만들어버린다. 끈을 당겨 자동적인 반응만 되풀이하는 인형처럼, 진짜조차도 아니었다. 이제와 돌아보면 나는 린다에게 사랑받고 아버지를 흡족하게 하려고 내가 소진될 때까지 온 힘을 다했다. 아버지가 내 편을 들어 주지 않는다면 분명 내가 문제일 테니까, 또, 언젠가는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안전한 기분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결국 나는 집에 발길을 끊게 됐다. - P223
세상은 우리가 트랜스가 아니라 정신병자라고 말한다.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수치스러워 내 신체를 훼손했다고, 나는 영영 여성일 것이라고 말하며 내 몸을 나치의 실험에 비유한다. 병에 시달리는 것은 트랜스가 아니라 이런 혐오를 길러내는 사회다. 배우이자 작가 젠 리처즈Jen Richards는 이렇게 표현한 적 있다.
10년 전에 트랜지션을 한 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고 건강하며, 친구와 가족들과의 관계도 좋아졌고, 더 나은, 더 참여하는 시민으로 살고, 그뿐 아니라 더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다가…… 모르는 사람들이 내 선택을 병적인 것이라 말하는 모습을 보면 초현실적인 기분이 든다. 내가 트랜스라는 걸 생각할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것은 나를 사회 정의에 더욱 공감하고 참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는 것 외에는 내 현재와 거의 관련이 없는, 내 과거에 관한 사실일 뿐이다. 어떻게 그것이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는가? 어째서 나의 평화에 독설, 폭력, 보호가 필요한가? - P289
이 푸른색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색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 된다.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그 속에 자리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의 여지 없이. - P327
자신의 존재가 끊임없이 논쟁과 부정의 대상이 되는 일은 우리를 고갈시키고 만다. - P385
자신의 진실을 묻고, 확인하고, 자신에게 그리고 나아가 세상에 말하는 일이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일임을 그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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