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청산가리는 언제나 감방 안을 쉴새없이 쓸고 닦았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닦아내는 거나 다름이 없다‘는 철학적인 말로 단순한 죄수들의 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왜 두 딸과 남편을 독살했는지에대해서는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사라지기 며칠 전문득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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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복은 일렁이는 불꽃 속에서 취한 눈으로 스크린을 응시하고있었다. 불길이 치솟는 가운데서도 영사기는 멈추지 않고 돌아가스크린에서 계속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평생을 죽음의 공포로부터 도망치던 금복은 마침내 자신에게도 죽음이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은 자들의 모습이 스크린 위에 겹쳐져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본능처럼 문득 자신의 딸, 춘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춘희가 아직도 공장에서 벽돌을 만들고 있는지 궁금했다. 자신이 한 번도 제대로 보듬어주지 않았던 딸에 대해 걷잡을 수 없는회한이 밀려왔다. 하지만 곧 모든 게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침내 스크린에까지 불길이 옮겨붙었다. 한때 보잘것없던 산골의 한 소녀였던 그는 자신의 손으로 이룩한 거대한 영화가 눈앞에서 모두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몸이 점점 따뜻해졌다. 그의 눈앞엔 오래전 그가 고향의 언덕에서 맞이하던 적막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낙조 속에서 마을은 한없이 평화로워보였다. 언덕엔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으며 세상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모순, 숨가쁘게 굴곡졌던 영욕과 성쇠는 스크린이 불에 타 없어지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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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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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생명가 그렇게 덧없이 고깃덩어리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사람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내장을 다 드러낸 채 해체되어는 고래의 처지가 마치 걱정과 자신의 처지처럼 여겨져 저도 또게 설움이 북받쳐올랐다. 그녀는 애써 울음을 삼키느라 손으로을 틀어막고 구경꾼들 틈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주저앉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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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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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가끔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자기 꿈과 깨끗이 작별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엄마는 ‘그저 다음 - P129

단계로 간 것뿐‘이라며, ‘작별한 건 맞지만 깨끗이 헤어진건 아니라고 했다. ‘대부분의 어른이 그렇게 사는데 그건꼭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아니‘라면서.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요즘에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재능은 있되 그게 압도적인 재능은 아님을 깨달아서였다.
사실 그걸 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당장학원 친구들의 그림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소리는 궁금했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계속하는 데 필요한 재능은 얼마만큼인지. 그 힘은 언제까지 필요하고 어떻게 이어지는지.
손에 이상을 느낀 뒤로 소리는 그림에 대한 자신감을 더 잃어갔다. 그림이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 아닌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수단이 되다보니 그랬다. 그런데 최근 지우에게줄 선물을 준비하며 소리는 자신이 오랜 시간 잊고 지낸 재미와 기쁨을 느꼈다. 내가 특별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과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 그리는 그림은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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