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배진시 지음 / 책과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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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3. 일. AM 6:00.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를 읽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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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매일 마음을 정리했다.

2024. 3. 3. 일. AM 6:00.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를 읽고 기록

어떤 글들은 글 하나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의 밤이 필요했는지, 얼마만큼 가슴을 쥐어뜯어야 했는지 모른다. 지난 2년 동안 글을 적으면서 사실 나는 나를 완전히 내려놨었다. 어차피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고, 이제는 될 수 있는 것도, 가질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스스로를 벼랑으로 내몰았다.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으로 시작됐고, 그 이후로도 인생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모든 것들이 내 잘못은 아니라고 다른 곳에 탓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2년 이내 내가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감정도, 몸도 망가진 상태였다. 간절하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 더 이상 스스로 벗어날 수 없고 일어설 기운조차 완전히 사라진 그때야 나는 정신과에 방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잠들면 꿈속에서 내가 내게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된 오랜 벗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살기 위해 그분께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날들을 되밟아가며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세상에 가장 소중한 건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나는 말로는 내가 소중하다고 하면서도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법을 몰랐고, 소중하다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어릴 설정됐던 기본값 그대로, 가족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대로 나를 대했다. 오늘이 돼서야 나는 내가 소중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의 감정을 살피느라 나의 감정을 방치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됐다. 나는 차분하게 내 감정과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드디어.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책을 우연히 어떤 작가님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선물 받으면서 나는 그에게 서평 안 써도 되냐고 묻고 선물을 받았다. 서평을 쓰는 일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요구되니까. 책 안에서 나도 모르게 내면의 소리를 찾게 되고, 그것들을 글로 적는 일은 책을 읽는 일보다 열 배 이상 노력이 요구됐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의 소리와 색감을 찾을 수 있어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작년을 서평단에 참여해서 글을 강제로 쓰면서 나름 치열하게 보냈다. 그래도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이 쉽지 않다. 없다고 생각했고, 있었더라도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내가 책과 글 속에서 천천히 살아난다.

이 책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표지를 살펴봤다. 거꾸로 그려진 소나무와 하얀색 배경 아래 여덟 명의 입양인 이야기라는 글을 보고 읽기 망설여졌다. 그들의 아픔들이 내 아픔이 될까 두려운 마음이 생겨서다. 그래서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책을 정말 아주 조금씩 읽었다. 책을 읽는데 무려 한 달이 걸렸다. 책을 다 읽은 날 새벽 나는 드디어 숱하게 마음에서 외쳐대던 소리를 찾았다.

그동안 썼던 글 중 어떤 글들은 그 글을 쓰는 데만 삼십 년(30)이 걸렸다. 누가 읽어줬으면 해서라기보다 이제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남기고 싶었다. 혹자는 과거 이야기를 할 때 너무 담담해 보이는 글 속 화자를 보고 내가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대로 밝혀두건대 나는 단단한 사람이라기보다 인내심이 병적으로 뛰어난 사람이었을 뿐 보통인 보다 감정적으로 아주 여린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 나를 지키기 위해 인내심이라는 방패를 들고 오랫동안 나를 숨겨왔다. 그리고 어떤 글들은 정말 삼십 년이 넘어서야 가슴을 치며 쓴 글도 있다.

세상에서 완전히, 완벽히 보잘것없다고 스스로가 느낀 시점부터 완전히 나는 나를 내려놨다. 그제야 나는 드디어 글을 적을 수 있게 됐고, 그 순간부터 나를 천천히 찾아갔다. 영원히 감춰두고 싶었던 이야기, 감춰야만 나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까지 천천히 뱉어냈다. 뱉어낼 수 있었던 건 그 누구도 내 글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믿음 <?> 덕분이었다.

글을 쓴 건 말로 뱉어내면서 상대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말하고 나면 목이 메고, 가슴이 답답해서 오히려 일주일 동안 앓아누웠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때마침 제대로 시작되려던 정신 분석 상담료도 낼 돈이 없었다.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해 준 사람이 있었음에도(아주 운이 좋게 이야기를 들어준 언니가 있었다. ) 나는 그녀에게 속 이야기를 하고 나면 너무 몸이 아파서 자고 또 잤고 죄책감까지 느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나를 숨기고 또 숨겼다. 그러다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었을 때가 돼서야 컴퓨터 앞에 앉았다.

책을 읽어가며 태어나서 처음 만난 사람들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잉태됐기 때문에 함께 살기 시작한 아빠와 엄마, 그래서 가족을 영영 잃었던 엄마를 생각했다. 아빠와 엄마의 결혼은 그 누구도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아빠를 만나면서 소중한 구 가족을 잃었다. 나는 엄마의 가족을 서른다섯이(35) 되어서야 만났다. 이 만남도 동생이 외가 식구들을 찾으면서 아주 잠깐 연결됐었다. 그 긴 기간 동안 외가 식구 누구도 우릴 찾지 않았다. 정말 당연하고, 충분히 이해가 된다. 우리는 스쳐 지나가도 모를 정도로 오랫동안 남처럼 지냈다. 그랬기 때문에 어쩌면 남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사실 친가도 남이라도 해도 무방할 정도니(차라리 남이었다면 더 다행일지도 모를 일이다.) 삼십 년(30) 넘게 만나지 않은 외가 식구들이래야 말할 필요 있겠나.

8명의 해외로 입양된 입양인 이야기를 읽어가며 다행이다 싶은 사례도 있고, 너무 아프고 속상한 사례도 있었다. 해외로 갔기 때문에 인종차별을 당연하게 겪게 되고, 만난 가족들이 좋은 사람들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래서 오히려 인생이 망가지고 감정까지 부서진 사례도 있다. 어떤 사례 중에는 정말 좋은 가족을 만나 좋은 교육을 받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분도 있었다. 정말 행운이라고 할 만큼 희소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가난했기 때문에 너만큼은 잘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보낸 그들 부모님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도 어린 시절 보육 시설(고아원)에 있으면서 입양인으로서 살게 될 뻔한 적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나의 입양도 막았을뿐더러 동생 입양까지 막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그 누구도 나의 생떼와 온갖 행동과 소리 지름을 보고 데려갈 사람이 없었다. 물고, 때리고, 소리 지르고, 바닥에서 구르는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아마 나를 보고 나와 동생을 데려가면 인생이 망할 거라고 누구든 생각했을 거다. 그렇게 나와 동생은 무지막지한 내 성격 덕에 지켜지고, 지켜지다 각자의 집으로 배정됐다.

배정됐다고 한 이유는 새엄마가 되신 분이 아버지와 만나면서 네명(4)의 자식을 데려왔고, 그러면서 새엄마가 단 한 명만 키울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그녀의 입김으로 분리되어 자랐다. 내가 자랐던 아버지의 동생 집은 원래 동생이 자랐을 수 있는 곳이었지만 동생이 사람을 너무 피해 다닌다며 나를 강제로 떠맡은 어머니께서 바꿔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번 운명이 바뀌면서 각자의 집에서 자랐다.

해외 입양을 가지 않아 다행이었던 건 타국의 인종차별을 겪지 않았다는 점과 언어로 인한 장벽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내 감정을 이야기하면 맞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 한국에서 언어장벽을 겪었다. 해외로 입양된 입양인들 이야기들 속에서 그들이 성인이 돼서도 자랄 수 있었던 대한민국이라는 곳의 향수를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뿌리를 갖게 해 준 부모님을 영원히 그리워하면서도 양가감정을 갖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버지 형제에게 입양되면서 타국살이의 외로움과 대한민국에 대한 향수, 언어장벽을 겪지 않아도 됐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책을 다 읽은 새벽 생각했던 것들이 있다. 동생은 나를 만나면 항상 자신이 엄마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엄마가 없는 건 매한가진데 동생은 그래서 당연하게 내가 자신을 챙겨야 한다고 말했고, 엄마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동생은 내가 그녀를 챙기지 않았을 때 내게 어렵고, 불쾌하고, 아픈 일들을 감당하게 했다. 그 일 중 몇 개는 정말 말도 안 되고,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녀는 당당하게 내가 그녀를 챙기지 않아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그랬다는 말만 반복적으로 했다.

나는 억울하면서도 동생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일들이 숱하게 반복되자 마음에 앙금이 남았는지 함께 같은 침대 위에서 잠들 때면 꿈속에서도 동생 앞에서 울고, 소리 지르고, 발로 차고 때렸다. 왜 꿈에서 동생을 만나면 때려야만 했는지 그때는 몰랐다.

‘나는 엄마가 없으니까. 언니가 나를 챙겨줘야지.’ 그 말을 들었을 때 예전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내가 동생을 챙기지 못해서 미안하고, 속상하고, 안쓰러웠다. 그래서 유난히 동생에게 약했고, 손해를 보더라도 동생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몇 년 전 그 말을 다시 들었을 때 (시험에 실패 후 방구석 폐인이 됐을 때) 나도 모르게 분노의 감정이 일어났다. 나도 저도 엄마가 없긴 매한가진데 왜 동생은 엄마가 없다는 이야기를 굳이 하면서 내게 죄책감을 씌우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그제야 든 것이다. 오랫동안 종교 싸움으로 동생과 연락을 끊었다. 그러다 외가 식구들이 나를 만나고 싶다며 연락해 오면서 동생을 다시 만나게 됐고, 동생은 또 그 말을 내게 했다. 그 말을 다시 들은 날 동생에게 너도 해 준 것 없지 않냐. 내가 힘들 때 너도 마찬가지라며 화를 냈다. 그런 나를 보며 동생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냐며 나를 탓했다.

이 책을 읽어가며 나는 동생에게 왜 죄의식을 갖게 됐는지 드디어 알게 됐다. 왜 나는 동생의 일과 말에 유난히 약하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드디어 찾았다. 책을 읽고 나는 동생과 보육 시설에 있으면서 나뿐 아니라, 동생의 입양까지 막았던 기억을 드디어 떠올렸다. 그 기억 속에서 드디어 죄책감과 죄의식의 근원을 찾았다. 동생이 좋은 곳에 입양됐더라면 지금처럼 이상한 <?> 종교에 심취할 일도 없었을 거고(동생은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친척에게 작업 돼서 오늘도 그 종교에 속해있고, 같은 종교를 가진 가족 구성원과 결혼까지 했다. ),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부모님을 만나 좋은 인성을 가지고, 멋진 인생을 살게 됐을 텐데 내가 그 기회를 빼앗았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래서 나는 동생에게 숱하게 당하면서도 내가 나쁘다고, 동생을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잘못된 거라고 도리어 나를 아프게 했다.

동생은 내가 살인사건 피해자가 됐을 때도 응급실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젖어 서 있는 나를 보고 내가 이렇게 된 건 자신의 종교에 오지 않아서 이런 일을 당한 거라며 세 번이나 말했다. 그런 동생의 말에도 나는 오히려 동생이 아니라 내가 이런 일을 당해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이해 안 되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인물 성격이다. 나는 그날 했던 동생 말들이 나를 걱정해서 그리 말한 거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오늘이 돼서 되짚어보니 그게 아니었다는 걸, 그동안 동생이 나를 어떻게 나를 대했고, 생각해 왔는지 제대로 보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죄책감과 죄의식의 근원을 찾았고, 그 죄책감의 소지자는 내가 아니라 아버지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동생이 입양을 가서 그곳이 좋은 집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걸 이제야 인정하게 됐다. 그러니 동생에게 환상적인 인생이 주어졌을 거라는 것도 잘못된 판단이다. 그리고 성인이 돼서 지금의 삶들을 선택한 건 오로지 동생이었다. 운이 좋아 좋은 부모님이었을 수도 있지만, 운이 나쁘면 생부처럼 알코올중독에, 폭력적이고, 극단적 나르시시즘을 가진 가족 구성원이 됐을 수도 있다. 다행스럽다고 느끼는 건 오늘의 나도 그렇지만 동생도 아버지에 대한 환상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오랫동안 동생에게 느낀 죄책감만큼 아버지가 겪었던 어린 시절과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효를 다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받지 못해서 주지 못하는 거라고 내가 많은 사랑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말을 들어도 그에게 사랑의 말을 하고, 그가 원하는 것들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결국 내면의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났을 때 나는 완전히 망가졌다. 그제야 아버지와 동생, 나를 키워줘서 고마워해야 한다는 친가 식구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드디어 남들이 보는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오랫동안 꿈속에 갇혀있는 것처럼 살았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남을 위해 살았다. 왜 내가 그래야만 행복을 느끼고 살아있다고 느끼는지 알지 못하면서 멈추지 못하는 기차처럼 잘못된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오늘 완전히 모든 것이 멈춰진 오늘들을 살아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이제야 숨이 쉬어지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이제는 타인의 삶과 감정을 온전히 타인이 책임질 수 있도록 내버려 둘 수 있게 됐다. 누군가를 책임져야만 살 수 있었던 삶에서 이제는 나를 온전히 책임지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 오늘들을 살아가며 만난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책은 내게 죄책감의 늪에서 나올 수 있도록 밧줄을 던져줬다. 이 글을 쓰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이 생각만 정리하는데 2주가 걸린 것 같은데. 지금도 계속 정리 중이다. 가볍게 살자라고 매일 마음먹어도 정신과잉인인 나는 매일 혼자만 있어도 감당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 내 걸음에 맞춰 천천히 삶을 음미하며 걷는다.

이제는 그 누구도 필요하지 않다. 이제는 나에게 내가 정말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니 천천히 내가 나를 아끼는 것만큼 아껴주고 사랑해갈 사람들을 삶에 들여가련다. 앞으로는 모든 선택에서 총체적으로 건강하길 기도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앞으로 나는 나와 정말 잘 살아가기로 했다. 그런 오늘에 만난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책은 내게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줬다.

“당신들의 삶과 감정은 이제 당신들이 제대로 책임지고 살아가 주세요. 각자의 삶과 감정을 책임질 힘과 능력이 내게도 당신들에게도 충분히 있으니 까요.”


책을 보내주신 이시헌 작가님 고맙게 생각해요. 이번에 두 번째 책 내신 것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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